미디어와 역사
역사적 기억으로서의 극영화  
Die Flucht; Copyright: ARD Degeto / Conny Klein탈출; 저작권: ARD Degeto / Conny Klein 오늘날에는 매스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성찰하는 가상적 „기억 공간“의 의미가 커지고 있다. 극영화는 가장 중요한 기억 공간 중의 하나다.

매스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더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에는 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성찰하는 가상적 „기억 공간“의 의미가 커진다. 이에 있어서 TV 시청률과 영화 관객수는 어떤 주제와 태도가 사회적으로 다수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지만, 역사적 계몽, 이를테면 독일 나치즘의 역사에 대한 역사적 계몽이 질적으로 어떻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가해자의 나라였던 독일에서는 전후 육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치즘에 대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매우 광범위하게 제작되었는데, 1990년대 초까지는 동서독이 분리된 예술적 영화 제작 환경에 바탕을 두었다. 1989년 통일 이후에 독일 관객들이 이제 어두운 나치 시대를 „끝도 없이 파헤치기“에 질렸고 가장 최근의 과거로 인한 훨씬 시급한 문제들이 있다는 숱한 예견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작품들, 특히 1995년과 2005년 사이의 제작물들을 볼 때 대중적 미학의 추구 경향으로 과거 작품들과 뚜렷이 구별되면서 현대사적 주제의 영화화를 위한 새로운 스타일을 형성하는 독자적 장르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자극들은 해외에서 왔다. 그 중 하나가 멜로드라마인 „쉰들러 리스트“(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로, 이 작품은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로서는 최초로 정말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학과 영화 오락의 모범적 결합으로서 지금까지도 학교들에서 상영되곤 한다. 현재 나치즘에 대한 TV 제작물들의 특징을 이루는 다큐드라마 형식의 주요 선구자는 극영화적 요소를 차용한 영국 텔레비전 제작물이었다.

새로운 향토 영화 – 보통 독일인의 시각에서 본 역사

‚가을우유’ 독일연방공화국 1988; 저작권: 독일 필름 인스티튜트 1989년 10월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 „가을 우유“(요제프 빌스마이어, 1989년)는 여성 농민 안나 빔슈나이더(1985년)의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을 원작으로 했다. 평범한 독일 여성이 전쟁 중에 겪은 일상적 경험이 최초로 영화화되었고, 독일 관객은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동일시할 수 있었다. 집단적 경험의 공간과 „보통 독일인“의 관점을 이용하는 이런 방법을 빌스마이어는 재빨리 잇달아 반복했다(1990년 „라마 다마“, 1993년 „스탈린그라드“). 그는 나치즘이라는 주제와 독일 향토 영화, 전쟁 영화의 전통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결합시킴으로써 텔레비전 쪽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고향과 나치즘“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시리즈 형식과 대조를 이뤘다. 가족 전설인 „고향“(에드가 라이츠, 훈스뤼크, 1984년), „붉은 지구 II“(루르 지방, 1989년), „사자굴“(뮌헨/서독, 1989년)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1950년대 초까지 겪은 일상적 경험을 가지고 나치즘이 개별 지역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파헤쳤다. 이 세 개의 텔레비전 시리즈는 전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이런 성공은 가족 전설 „홀로코스트“(미국, 1979년)를 연상시켰다. 유대인 바이스 일가의 운명을 그린 이 작품의 독일 방영은 기폭제 같은 작용을 했다. 갑자기 유대인 박해와 제3제국이 여론의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독일인이 희생자라고?

드레스덴; 저작권: ZDF/teamWorx, Conny Klein 그러나 최근에는 „독일인들의 관점“이 더 이상 가해자, 단순 가담자, 피박해자의 다양한 입장을 바탕으로 해서 그려지지 않고, „독일인의“ 집단적 희생 경험으로 국한되고 있다. 폭격전과 피난, 추방에 대한 공개 논쟁 과정에서 TV 드라마 „드레스덴“(롤란트 주조 리히터, 2003년)과 „탈출“(카이 베셀, 2007년)이 탄생했다. 2부작이었던 „탈출“과 나란히 독일계 주민들의 동 프로이센에서의 탈출을 그린 역사 기록물 „히틀러의 마지막 희생자들“(귀도 크노프, 2007년)의 특색 있는 제목은 나치 박해의 희생자들에 덧붙여 발생하는 경쟁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보다 앞서 외르크 그륀러는 페터 헤르틀링의 청소년 소설 „크뤽케“(1992년)를 원작으로 훨씬 차별화된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머니와 함께 동 프로이센에서 피난 나와야 했던 아홉 살배기 토마스는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삶의 기반 상실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꼭 „늑대 인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체험한다.

습격 당한 국가들의 파괴된 고향

롤프 쉬벨은 „발러얀 브로벨의 향수병“(1990/91년)으로 전혀 다른 고향상을 제시했다.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이 영화의 중심 인물은 폴란드 청년이다. 발러얀은 하노버 근교의 농장에 강제노동자로 끌려갔다. „가을 우유“와 유사하게 이 영화는 시골에서 겪는, 전쟁으로 인한 결핍의 현실적 그림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종주의적 동기에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을 우유“의) 여성 농부의 비통함이 숙명이 되어버린 폴란드 젊은이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발러얀은 향수병으로 헛간에 불을 지르고 나서 노이엔가메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되고 결국 재판 끝에 처형당하고 만다. 1989년 10월 직후에 상영되는 바람에 유감스럽게도 관객수가 얼마 되지 않았던 이 영화는 독일에게 습격 당한 국가들의 상황을 주제로 삼은 매우 드문 독일 극영화 중 하나이다. 그로부터 거의 십 년 뒤에 쉬벨은 영화 „글루미 썬데이“(1999년)에서 무대를 부다페스트로 옮겨 독일 점령 하에서 헝가리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잔인한 박해를 조명한다. 닉 바르코브(1988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930년대 중반부터 „자살자의 찬가“로 세계적 명성을 누린 동시대의 노래를 제목으로 썼다. 독일 점령의 결과에 대한 또 다른 극영화 두 편은 유대계인 어머니를 부다페스트에서 구출해 내는 게오르게 타보리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어머니의 용기“(미하엘 버호벤, 1995년)와 룩셈부르크인 신부 장 베르나르의 회고록을 영화화한 „아홉 번째 날“(폴커 슐뢴도르프, 2004년)이 있다. 베르나르는 정치범으로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었다.

아홉번째 날; 저작권: PROGRESS Film-Verleih GmbH 영화는 그가 벨기에 주교를 독일 점령군에 협력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강제수용소에서 휴가“를 받아 나오는 그 9일을 중심 스토리로 삼고 있다. „아홉 번째 날“은 „발러얀 브로벨의 향수병“과 마찬가지로 1989년 이후에 나온, 강제수용소에서 행해진 테러의 묘사를 시도한 소수의 독일 영화 중 하나이다. 이런 소재를 다룬 가장 최근의 예는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있던 나치친위대(SS)의 위조지폐 공장에 대한 영화 „위조자들“(슈테판 루초비츠키, 2007년)이다. 원작은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오스카 부르거의 자전적 작품 „악마의 공장“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아우구스트 딜이 부르거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테러의 현실이 위폐 공장에서 일하는 덕분에 비교적 편안하게 생활했고 집단학살수용소에서의 홀로코스트를 모면할 수 있었던 죄수들의 미묘한 처지에 대한 배경으로 쓰이는 편이다.

홀로코스트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Die 위조자; 저작권: Universum Film „위조자들“은 독일 제국 한가운데서 벌어진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인 개개인의 운명을 가지고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고 모든 유대인들이 머나 먼 아우슈비츠에서 곧장 독가스에 살해당했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단절시킨다. 유렉 베커의 자전적 소설 „벽“을 원작으로 하는 작지만 매우 민감한 텔레비전 영화 „모든 독일인이 자고 있을 때“(프랑크 바이어, 서독, 1995년)는 게토에서 근처의 임시수용소로 옮겨진 유대인 아이들이 밤마다 몰래 게토로 돌아와 버려진 집들에서 많은 장난감을 꺼내간다는 이야기다. 에리카 피셔가 쓴 동명의 소설풍 기록을 원작으로 하는 „에이미와 재규어“(막스 페르버벡, 서독 1999년)는 1943년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레지스탕스 여전사와 남편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독일인 가정주부 간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독일인 감독 얀 쉬테는 영화 „잘 있어, 미국“(1993년)과 „올드 러브“(2001년)로 잊혀진 유대인들의 운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해낸다. 그는 이 영화들에서 노년이 되어서야 상실한 고향을 되찾는 유대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해 받는 유대인을 다룬 영화들을 정치범 영화와 비교해 보면 정치범들만이 독일의 영웅으로 표현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TV 드라마 „슈타우펜베르크“(요 바이어, 2004년)와 극영화 „본회퍼, 최후의 단계“(에릭 틸, 2001년)에서 그러했고, 특히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마르크 로테문트, 2005년)에서 그러했다. 로테문트의 영화는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영화 „백장미“(미하엘 버호벤, 1981년)와는 반대로 레지스탕스 그룹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던 역사적 인물 소피 숄이 잘못 평가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

가해자를 정신병환자이자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나의 지도자; 저작권: X Verleih AG 독일에서 나치즘에 대한 공개 논쟁은 점점 더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다. 독일 사회의 기억 억압과 침묵을 거의 폭발적으로 깨뜨렸던 문화정책적 최초의 사건은 함부르크 사회사 연구소가 주최한 순회 전시회 „섬멸전. 독일 국방군의 범죄“(1995-1999년)였다. 반면에 가해자와 특히 „퓌러(지도자)“에 대한 영화들에는 역사적, 정치적 계몽의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 영화평론가 게오르크 제스렌의 평가에 따르면 이런 영화들은 히틀러를 „정신병환자“ 아니면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묘사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관객 동원의 실패와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지하실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103세의 아돌프 히틀러와 미국인 역사학자와의 대화를 줄거리로 하는 영화 „야수와의 대화“(아르민 뮐러-슈탈, 1996년)는 심리학적 인격 연구를 시도했지만 영화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코미디인 „나의 지도자“(다니 레비, 2007년)도 마찬가지였다. 감독은 오로지 „어릿광대“의 이미지 구축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고전적인 모범작인 „위대한 독재자“(찰리 채플린, 1940년)와 „사느냐 죽느냐“(에른스트 루비치, 1942년) 의 전례를 따라 시도한 낯설게 하기는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에 „인간 히틀러“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극영화 „몰락“(올리버 히르쉬비겔, 2005년)과 TV 드라마 „창과 그 남자“(하인리히 브레로어, 2005년)는 광고에 많은 돈을 쏟아 부어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몰락“은 트레버 로퍼의 „최후의 열흘“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 세 번째 영화였다. 전작들과는 히틀러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희생자로 표현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헤르만 페게라인이나 알베르트 슈페어, 에른스트-귄터 쉥크 박사 같은 역사상 인물들의 나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창과 그 남자“에서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식들을 역사의 증인이자 관객을 위한 동일화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개인적 특색이 강화된다.

현대사에 대한 오스카 수상의 영예

러브 인 아프리카; 저작권: Constantin Fim슈테파니 츠바이크가 쓴 동명의 자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극영화 „러브 인 아프리카“(카롤리네 링크, 2001년)는 2003년, 가장 중요한 국제적 상인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카롤리네 링크는 삶의 기반 상실, 낯설음, 다른 문화와의 충돌을 인간의 기본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게 유대인 가족의 케냐 이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현대사를 영화의 소재로 삼을 때 현재 사회와의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 환영 받는 경향이라는 점을 가장 최근에 오스카상을 수상한, 배반과 충성, 품위에 대한 독일 영화 „타인의 삶“(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년)도 입증했다. 슈타지의 도청 전문가가 임무 수행 중에 자기가 감시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가 „가해자가 피해자 또는 영웅으로“ 변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대표 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대사 연구자들에게도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들었다는 사실은 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극영화에서는 역사적 인식가치보다는 현재의 과거에 대한 관점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관객과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이런 사정을 알게 하는 것을 유감스럽게도 소수의 영화제작자들만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네테 에벌레는 프리랜서 역사학자이자 교육가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 괴테 인스티투트, 온라인 편집부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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