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25년 동안의 독일회화

20세기는 회화의 ‘죽음’에 관한 주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때였다. 때때로 인기를 구가하다가도 때로는 낡은 취급을 받는 회화의 부침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미 1920년대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결정은 아방가르드를 표방한 이론교육에 반하는 결정이기도 했다. 1915~1925년 사이에는 마르셀 뒤샹, 카지미르 말레비치 또는 알렉산더 로드첸코 등과 같은 여러 예술가들이 회화의 종말을 예고했으나 20세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작품들이 그려졌다.
구상회화에서 거침없는 젊은 예술까지
1970년대 후반은 사물화에 있어서 불리한 시대였다. 구상 미술이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평면적 회색 그림을 그렸으며, 반면 형상적인 그림을 그리던 게오르그 바젤리츠, 지그마 폴케, 안젤름 키퍼와 같이 오늘날 이 장르에서 귀재로 손꼽히는 미술가들은 당시에는 아웃사이더였다. 70년대 말이 되어서야 젊은 예술가들이 관능적 열정을 갖고 형상회화에 덤벼들기 시작했다. 베를린에서는 회디케 문하의 살로메, 라이너 페팅 그리고 헬무트 미덴도르프 등이 형상회화를 추구했고 쾰른의 경우에는 발터 단과 도코우필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임인 뮐하임의 자유(Mülheimer Freiheit)가 있다.
1981년 런던 로얄 아카데미에서 회화의 새로운 혼(A New Spirit in Painting)이란 제목으로 열린 대전시회는 이런 회화의 추세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파우스트(W. M. Faust)와 드 브리스(G. de Vries)의 책 그림에 대한 배고픔(Hunger nach Bildern, 1982)은 1980년대 초반 독일에서 신표현주의 회화가 번성하는데 일조했다. 대략 1984년에 네오 게오(Neo Geo)란 이름 아래 잠깐 반짝였던 반대운동을 제외하면 일관된 화풍으로서 시장을 장악한 회화의 최후 유행은 거침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것이었다.
세상 묘사에 작별을 고하다
구상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독일의 많은 화가들이1980년대 중반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다양하면서도 개별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사진작가 및 공간예술가로 전면에 등장한 귄터 푀르그(Günther Förg)와 같은 예술가들은 폭넓은 화풍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확보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물화’와 ‘추상화’ 사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1994년에 함부르크의 다이히토르할렌(Deichtorhallen)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 깨진 거울(Der zerbrochene Spiegel)은 또 한번 회화 장르를 형식적인 문제에 제한시키고 세상 묘사에 대한 과제를 기술적인 이미지 매체에 떠넘기는 듯했다. 프랑스의 매체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에 따르면 이 다국적 화가들의 전시는 외톨이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며 그림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기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한다. 형식적인 기준으로 선별된 리히터, 폴케, 바젤리츠, 푀르그의 작품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가속화된 현실묘사: 사진은 회화의 경쟁자?
많은 젊은 미술가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묘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매체의 기술적 가능성에 관한 반향을 찾아 나선다. 기하학적으로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는 마틴 게르버스(Martin Gerwers), 형상 없는 그림을 그리는 코리네 바스무트(Corinne Wasmuht) 또는 균등한 공간미를 추구하며 강한 색채의 벽화를 그리는 카타리나 그로쎄(Katharina Grosse)는 주도적인 화풍에 억매이지 않고 장르를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현대 회화의 현황을 잘 대변한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베른트(Bernd)와 힐라 베허(Hilla Becher) 문하에서 공부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악셀 휘테(Axel Hütte),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또는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등과 같은 사진작가들은 대형작품으로 회화와 경쟁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묘사적인 질문과 맞닥뜨려야 하는 회화의 결점을 부각 시켜주었다.

1990년대 형상회화의 번성: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199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젊은 화가들이 이 도전과 맞섰다. 동독에서 출생하여 드레스덴 및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한 에버하르트 하베코스트(Eberhard Havekost), 토마스 샤이비츠(Thomas Scheibitz), 프란츠 니체(Franz Nitzsche) 또는 네오 라우흐(Neo Rauch)가 여기에 속한다. 서독 출신의 마티아스 바이셔(Matthias Weischer) 또는 토마스 헤니거(Thomas Henniger)와 같은 미술가들은 통독 이후 옛 동독(드레스덴, 라이프치히, 할레)의 아카데미에서 서독 아카데미에서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회화의 전통양식을 공부했다.
이 젊은 세대의 회화는 전통 장르는 물론 TV, 비디오,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기술매체를 통한 인간의 인식변화도 소재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회화매체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이들은 묘사 가능한 회화의 한계를 탐색하고 넓혀 나가려고 한다. 이들의 그림은 지속되는 회화의 매력을 입증하며 그림매체에 아직도 새롭고 독창적인 묘사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새천년 초기의 독일회화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이론적으로 완벽하며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입장들이 대등하게 공존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뒤셀도르프에 소재한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 재단의 현대미술부 부장.
저작권: 괴테-인스티투트, 온라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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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