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예술

독일의 조각

‚Chinesisches Pferd’, Bronzeguß aus dem Jahr 1943 des Bildhauers Ewald Mataré; Cop: picture-alliance/ dpa/dpaweb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817년 ′독일조각가협회′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든 조각이 추구하는 주요한 목적은 인간의 형상 속에 인간의 존엄성을 불어넣는 것이다. 괴테는 이로써 수세기에 걸쳐 조각이 형상화하려던 바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인간은 조각예술의 객체라는 괴테의 지론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사조들의 부침 속에서 영향을 받아왔다.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의 조각은 초현실주의, 큐비즘 및 표현주의와 같은 사조들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형식언어(Formensprache)라는 점에서 그 특징이 규정된다. 그러나 1930년대 및 40년대 독일에서 나타났던 이런 다양한 예술적 면모들은 나치주의적 현실주의를 통해 강제적으로 그 입지를 잃게 되었다.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 1870-1938) 나 에발트 마타레(Ewald Mataré 1887-1965)와 같은 중요한 독일 조각가들은 박해를 받았으며 창작활동에 있어서도 많은 제약을 받았다. 이들의 예술은 나치에 의해 ′퇴폐예술‘로 낙인찍혔다. 바를라흐가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주력한 반면 마타레의 작품세계는 주로 동물을 묘사하는데 치중했다. 마타레와 바를라흐는 그들의 작품관이 일상의 분주함으로부터 벗어나 의식적으로 인간의 본질 혹은 자연의 영속성을 추구했다는데 그 공통점이 있다. 인간에 대한 묘사는 비유적이었지만 동시에 솔직한 인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그들의 조각 작품은 완만하고 육중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마타레의 경우 특히 말년에 종교적인 주제에 헌신하여 쾰른대성당 남쪽정문에 들어갈 청동문을 제작했고 히로시마 세계평화교회의 문을 설계하기도 했다.

공간구상

Vor dem Gebäude der Verwaltung von Vodofone in Düsseldorf steht eine Rohrplastik des Künstlers Norbert Kricke; Cop: picture-alliance/ dpa50년대 및 60년대의 전후 미술은 전통적인 독일의 조각미술에 큰 변혁을 불러왔다. 이전에는 완만하고 평온한 느낌의 부피감을 강조했던 조각이 가볍고 선의 흐름을 강조한 공간을 중시하는 조각으로 바뀌었다. 건축예술의 구성수단이던 기하학의 적용이나 균형감의 강조 또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특징 등은 새로운 예술이 발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이제 조각이란 더 이상 그 자체만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간을 구상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독일의 가장 중요한 선형적 공간조각가의 한 사람으로는 노버트 크리케(Norbert Kricke 1922-1984)를 꼽을 수 있다. 크리케는 뒤셀도르프 예술가모임인 제로(Zero) 및 파리의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과 대단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50년대 후반 및 60년대 초반 뒤셀도르프를 중심으로 세계 예술계가 변화하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여기에 적극적이고 혁신적으로 동참하려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라인란트 지역은 파리나 뉴욕 또는 밀라노와 같은 대도시와 비견될 수 있을만한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노버트 크리케는 자신의 조각을 어떤 고정된 계획에 따라 설치하는 대신 철사의 움직임을 사용해서 이를 구부리거나 꺾음으로써 조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관심사는 어떠한 형상이나 재질이 아닌 움직임과 공간이었다. 조형적인 표현을 위해 필요한 경우라면 청동이나 돌과 같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 대신 금속, 유리, 시멘트, 전등, 라텍스 및 섬유유리와 같은 새로운 소재들도 적극 사용했다.

1960년대 독일의 국제 미술 발전에 있어 함부르크 출신 예술가인 에바 헤세(Eva Hesse 1936-1970)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할 수 있다. 1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 에바 헤세가 발표한 조각들은 넓은 공간 안에 라텍스나 유리섬유와 같은 새롭고 생소한 소재들을 배치한 것으로 그녀는 이를 통해 뉴욕 미술계에서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에바 헤세는 케트비히 안 데어 루르(Kettwig an der Ruhr)에서 아틀리에 장학금을 지원받으며 당시 국제적으로 유명했던 한스 하케(Hans Haacke), 카를하인츠 헤링(Karl-Heinz Hering) 및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같은 조각과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펠트와 지방덩어리

뒤셀도르프 출신인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의 작품은 그의 ′사회적 조각′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이 개념은 70년대와 80년대 독일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미술개념은 이를 통해 더욱 확장되었다. 미술이란 일종의 전체적인 인식의 과정으로 여겨지며 모든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구성원칙을 사전에 인지하지 않고도 이러한 인식과정에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보이스의 조형작품 범위에는 그의 전형적인 작품소재인 펠트와 지방덩어리로 구성된 오브제나 설치작품뿐 만 아니라 정치변화를 촉구하고 낡고 오래된 사고체계를 개방시킬 수 있는 퍼포먼스 등도 포함된다.

Tiergarten Skulptur ' Herkules ' von Brigitte Matschinsky – Denninghoff; Cop: picture-alliance / Helga Lade Fotoagentur GmbH ′사회적 조각’ 이외에도 웅장함을 추구하던 조각의 경향은 70년대 및 80년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대규모 조각품은 대도시 건축물에 대한 보완이자 동시에 일종의 도전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인 조각가로는 브리기테 마친스키-데닝호프(Brigitte Matschinsky-Denninghoff 1923년 출생)를 꼽을 수 있으며 그녀는 크롬-니켈 합금을 사용하여 유기적으로 흐르는 추상적 구성물을 제작했다. 조각가 한스 코크(Hans Kock 1920년 출생)에게도 현대적 대도시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대규모로 진행되던 건축 사업들은 그로 하여금 사전 단계로써 이러한 웅장한 건축물에 어울릴 수 있는 중간적 구성물인 대규모 조각품을 제작하도록 주문했다. 조각품이 건축물과 동등한 위치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형태를 갖춘 새로운 개념의 조각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능성들의 경연

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조각은 다채로운 형태언어와 아이러니 또는 교묘함을 그 특징으로 하며 아울러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창작되거나 또는 넓은 공간을 활용한 조각품 및 설치작품으로부터 구성된다. 카셀의 도큐멘타(Documenta)에도 참석했던 토마스 쉬테(Thomas Schütte 1954년 출생)는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고, 슈테판 발켄홀(Stephan Balkenhol 1957년 출생) 및 보고미르 에커(Bogomir Ecker 1950년 출생) 등도 독일의 신세대 예술가를 대표하는 작가들로서 이들은 조각을 대단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꾸밈없이 해석하고 있다.

보고미르 에커(Bogomir Ecker)는 공공장소의 미술로서 붉은 페인트를 칠한 강철판을 소재로 삼아 14개 부분으로 구성된 귓바퀴 모양의 조각품을 창작해 냈다. 그는 함부르크의 예니쉬 공원에 있는 14개의 너도밤나무에 붉은색 귀모양 작품을 설치했는데 이는 대단히 은유적이며 시적인 연출이었다.

Stephan Balkenhol vor seiner 2005  aus einer Zeder gefertigten Skulptur ‚Großes Frauenporträt’; Cop: picture-alliance/ dpa 슈테판 발켄홀(Stephan Balkenhol)은 울리히 뤼크림(Ulrich Rückriem 1938년 출생)의 문하에서 수학한 조각가로 독일에서 조형감있는 조각으로 명망 높은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발켄홀은 떡갈나무를 소재로 2미터 이상 되는 형상들을 조각하고 거기에 색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금욕적이라 할만한 고요함을 구현해 낸다. 머리를 든 채로 시선은 깊은 사색에 잠겨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빈켄홀의 이 조각들은 뤼벡의 음악홀 지붕 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베를린에 소재한 독일연방의회를 위해 프란카 회른쉐마이어(Franka Hörnschemeyer 1958년 출생)는 파울-뢰베-하우스(Paul-Löbe-Haus)의 북쪽 안뜰에 공간구상을 고안해 냈다. 여기에는 마치 미로와 같이 서로 얽혀있는 구조의 격자 철문이 설치되었다. 이 격자 철문은 사람의 통행도 가능해서 관람객들에게 여러 가지 조망을 제공해주며 일종의 선형구조를 느끼게 해준다.

클라우스 하크(Klaus Hack 1966년 출생)는 인간 형상을 아르카이크 스타일로 추상적으로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베를린 조형예술대학의 롤프 스취만스키(Rolf Szymanski) 및 로타 피셔(Lothar Fischer) 문하에서 수학했다. 클라우스 하크는 목재를 소재로 톱을 사용해서 한 조각씩 형태를 구축해 나간 다음 다듬지 않은 목재 작품에 하얗게 회칠을 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거의 금욕적이라 할만한 철두철미한 작업을 통해 단순했던 목재덩어리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듯한 멋진 작품으로 탈바꿈 된다. 클라우스 하크의 작품들 가운데 특히 만하임 예술홀에 있는 조각품들은 기술적인 정밀함, 꼼꼼한 세공미 및 균형 잡힌 비례감을 잘 보여준다.

롤프 베르크마이어(Rolf Bergmeier 1957년 출생)는 독창적인 자연주의를 추구하며 육중한 부피감 보다는 가벼운 질감을 살린 속이 빈 조각작품에 주로 몰두하고 있다. 그물처럼 구성된 ′목재 위의 오일’이라는 오브제는 서로 맞붙은 나뭇가지에 오일 처리를 해서 유기적인 전체를 구성하도록 했다. 이 작품은 독자적인 역동성을 발현하면서 가벼운 종교적 느낌을 주는 자연 속의 독립적인 피조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롤프 베르크마이어는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 출신으로 그의 예술작품이 보여주는 시사성으로 인해 2004년 4월부터 브레멘에 소재한 베저부르크 신박물관에서 라프렌츠(Lafrenz) 및 라인킹(Reinking)이 주도하는 젊은 예술 컬렉션에 초청되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영감의 원천인 액션영화

토마스 샤이비츠(Thomas Scheibitz 1968년 출생)는 일상적인 디자인이나 미디어 및 만화 등을 통해 영감을 얻고 있는데 그의 경우 익숙한 컨텐츠에서 모티브를 잡아 이를 거대한 형상으로 공간에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위 유명하다는 상징이나 표시를 구성적인 측면에서 해체하거나 재결합함으로써 주변 경관 및 건축물에서 원래의 상징이나 표시가 가진 다양한 의미와 그 기원에 대한 물음을 환기시켜준다. 토마스 샤이비츠는 드레스덴 조형예술대학에서 케르바흐(Kerbach) 교수를 사사했으며 2005년 베네치아에서 열린 비엔날레에 독일 전시관을 설계함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비비아네 게르내르트(Viviane Gernaert 1976년 출생)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특별한 도전 주제는 움직이는 인간 형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비비아네 게르내르트의 작품 모티브는 주로 액션영화에서 발견된다. 그녀는 추격전 또는 총격전의 속도감 있는 씨퀸스를 조형적으로 구현해 내는데 이러한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고정시키면서 동시에 연기자의 동선을 묘사해낸다. 원래는 끔찍하고 폭력적이었던 장면들을 비비아네 게르내르크는 심미적인 형태언어를 통해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녀의 형태언어는 주로 눈처럼 하얀 아마로 된 끈을 여러 층으로 해서 스티로폼 위에 덧씌운 형상들을 사용하면서 이 형상들에게 순수하고 정화된 성질을 부여하는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받아들일 일정한 시간을 갖도록 전제하면서 관객의 시간을 빼앗지만 비비아네 게르내르트의 조각품과 설치작품 등은 아무런 시간 제약 없이 공간에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움직임, 시간 및 공간은 비비아네 게르내르트의 작품을 특징 짓는 판단 기준이며 그녀는 2006년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교우회가 주관하는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외르크 플릭카르트(Jörg Plickart 1954년 출생)는 키일에 소재한 무테지우스 학교 출신으로 현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연방주의 브레덴벡 및 함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주로 석재, 강철 및 브론즈 등을 소재로 한 조각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플릭카르트의 조각에서 드러나는 철학은 주로 각 요소들 사이의 연관관계 작용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입체감과 재료, 위치 및 빛과 그림자 사이의 관계를 창출하는데 집중한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형태언어의 기하학적인 측면을 감소시킨 점이 특징이며 이러한 형태언어의 단순화는 곧 장대함과 긴밀감의 합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특징은 200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인 베이징의 올림피아 파크에 설치한 25톤 무게의 중국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조각품은 2년 간의 선발과정을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예술품 시장에서 조각은 다음 시대를 이끌어 갈 기대주로 여겨진다. 전후 시대의 독일 작품에 속하든 혹은 현대미술에 속하든 견실한 수준작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가는 중이다. 바로 이에 대한 척도로써 독일 조각이 예술계의 국제적 동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바라 아우스트-베게문트(Barbara Aust-Wegemund)
조각 및 공예전문가이자 예술사학자

저작권: 괴테-인스티투트, 온라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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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008년 6월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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