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 - 소설, 단편소설

안네 베버
키리오

© S. Fischer Verlag, Frankfurt am Main, 2017 안네 베버: 키리오 © S. 피셔 출판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2017불길한 조짐을 드러내고 있는 최근의 독일 장편소설 문단에서 이렇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수작(秀作)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네 베버의 ‘키리오’는 동화와 악동소설, 삶의 지혜를 담은 책과 전설적 영웅을 그린 책 사이의 어디쯤에 포진하고 있다. 베버는 어느 백수 건달의 삶을 탁월하게 그려낸 이 소설을 통해 마법 같은 소영웅 하나를 탄생시켰다. 주인공 키리오는 인생 계획이나 확신, 관철 의지, 목표의식 따위와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 목표 같은 건 아예 있지도 않다. 그저 세상을 떠돌아 다닐 뿐이다. 심지어 물구나무를 선 채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다니는 게 취미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추우면 추운 대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픈 대로, 한동안 자신의 거처였던 아르데슈 지역 동굴에 출몰하는 벌레들까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파리의 자그마한 다락방에서 살면서 길거리에서 플루트를 연주한 적도 있다. 독자들은 아마도 말문이 막히다가도 어느 순간 흐느끼게 되고, 웃다가도 어느 새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키리오는 선과 악의 차이를 모른다. 모든 게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키리오는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행운의 예감 같은 것을 전달한다.
이런 종류의 악동소설을 읽을 때는 약간의 조심성이 필요하다. 이어지는 에피소드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자신을 망각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라블레의 작품 ‘가르강튀아’나 구전동화 속 주인공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들을 둘러싼 이야기 속에도 그러한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속도감 있게 분위기 전환이 이루어지고, 잘 짜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화자가 끊임 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독자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넋을 잃고 빠져들게 될 위험성이 큰 것이다.

요제프 하니만: “공중제비를 돌며 꾸는 꿈”
© 쥐트도이체 차이퉁, 2017년 3월 4일

안네 베버
키리오
S. 피셔 출판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2017
ISBN 9783103972696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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