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의 정체성을 재다


크리스텔 칼윤트
(Kristel Kaljund - 에스토니아)
문학강사겸 번역사
(Kristel Kaljund - 에스토니아)
문학강사겸 번역사
독일어권에서는 매년 훌륭한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외국에서는 독일문학이 대체로 어렵고 '충분히 즐기면서 읽을 만하지는 않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를 재다'는 2005년 발간된 책이다. 1백 5십만명에 달하는 독일어권 독자들과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을 읽은 전 세계 독자들은 작가의 놀랍도록 뛰어난 사실주의와 유머 그리고 복잡한 주제를 쉽게 풀어나가는 기술에 대해 극찬한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의견은 양분된 상태이다. 대중적인 성공은 이 책의 수준과 정비례하는가 또는 반비례하는가? 가우스와 훔볼트같은 독일의 위대한 거장들을 그 개성과 괴벽에 관하여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해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위인이나 독일의 본질, 심지어 세계를 이런 식으로 다루어도 되는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이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이 책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는 다소 부당하게 폄하되고 있는 독일어권 문화를 우리나라에서라도 정확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켈만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적인 유희, 즉 학술용어와 일상용어, 귀족적인 언어와 서민적인 언어, 그리고 국가관 및 세계관과 관련된 언어문화적 상관관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차원의 독일어를 에스토니아어로 번역해야 하는 도전에 대해 나는 흥분을 느꼈다. 아울러 독자들이 독일 고전주의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생각에 기뻤고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독일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박해 보고자 했다. 만약 누군가 훔볼트를 전형적인 독일인이라고 평가한다면 이는 그가 질서의식이 높고 치밀하며 융통성이나 유머감각이 없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켈만은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반박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서도 이 책과 유사하게 정체성의 문제를 경쾌하고 유머 넘치게 다룬 소설이 안드루스 키비래크 (Andrus Kivirähk) 라는 작가에 의해 몇 년 전 출간되었다. 키비래크의 소설인 'Rehepapp'은 2000년 출간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리한 농부인데 그는 당시의 도덕관념이나 선과 악의 개념을 뒤집는 인물이다. 이로써 작가는 독자들에게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모든 것이 선이며, 악이란 단지 그 당시의 사회적 가치에 위배되는 경우에만 악이 될 뿐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도덕관념이 느슨한 사회에서는 개인도 딱 그 정도의 도덕관념만 있다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상처로 얼룩진 국가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긍정적인 사회 정체성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가진 자기불신의 근원은 과거 소련의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 동구권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써 서양에서는 에스토니아를 동유럽으로 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에스토니아 또한 '동유럽 특유'의 특성(경제 및 사회 발전의 뒤쳐짐)을 부여 받게 되었다. 정작 에스토니아인들은 에스토니아가 동유럽의 일부라는 사실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만약 서유럽이 자신들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소련 지배시절의 상처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여전히 갖고 있다. 즉 타의에 의한 과거로 인해 에스토니아의 본질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에스토니아가 정말로 동유럽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이러한 이유로 인해 스스로를 폄하하고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포기하며 거의 궁지에 몰려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자책하는 것에 대해 갈등을 느끼는 것이다. 키비래크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정체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과거 소련 지배 하의 경험을 19세기로 되돌린 다음, 도덕에 관한 관념 및 규범을 상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체성을 찾는 이러한 종류의 탐구는 오직 유머가 곁들어 질 때에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데, 만약 그의 작품에 유머가 없었더라면 키비래크는 부도덕한 무법천지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머란 언어표현을 중화시키고 자책감을 약화시키며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다.
독일인들 역시 나치라는 과거로 인해 정체성을 둘러싸고 이와 유사한 경험을 겪었다. 오늘날 독일인이 갖는 국가 정체성은 여전히 상처로 얼룩진 이 시기의 기억과 그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최근 이러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일종의 국가적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는 탁월한 문학작품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예컨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베른하르트 슐링크 (Bernhard Schlink) 의 '책 읽어주는 남자' 등). 하지만 독일과 상관없는 독자라면 독일 국내에서 항상 반복해서 제기되는 이러한 정체성에 관한 담론에 별 다른 흥미가 없을 것이다.
키비래크와 마찬가지로 켈만 또한 죄악의 무대로부터 벗어나 독자의 시선을 독일의 정체성이 아직 정죄되지 않았던 시대로 향하게 한다. 독일 독자라면 그의 소설인 '세계를 재다'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학문, 예술, 문학, 계몽주의 철학 분야에서의 독일이 이룩한 역사적 성과나 독일 정체성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문화수출국으로서의 기억을 떠 올릴 수 있게 된다.
에스토니아 독자들에게는 2008년 성탄절이 되기 바로 직전 켈만의 소설인 '세계를 재다'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 문학 시장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을 거두었다. 이는 소설가로서 켈만의 탁월한 자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탁월한 솜씨, 그리고 보편적인 그의 철학과 유머감각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에스토니아 독자들은 이 소설을 키비래크의 소설인 ' Rehepapp'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그 밖에도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가우스 및 훔볼트가 살던 시절에는 에스토니아가 독일 문화권에 속해있다는 사실, 즉 에스토니아 또한 서유럽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즐거워 할 수 있을 것이다. 훔볼트는 자신의 두번째 여행 동안 타르투/도르파트에서 머물면서 이곳의 독일어권 대학인 도르파텐시스 대학을 방문한다. 가우스 또한 두번이나 이 곳 대학의 천문학 및 수학과 교수직에 지원했지만 채용되지는 못했다.
'세계를 재다'를 통해 에스토니아 독자들이 앞으로 독일 문학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상호문화적 소통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매체가 바로 유머감각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최근 발간된 켈만의 또 다른 신작소설인 '명성' 또한 에스토니아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소설에서도 현실과 환상의 구분점이 모호하고 여행, 문화수출, 기술적 발전, 명성, 죽음 등과 같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사회현상들은 지역적, 문화적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텔 칼윤트(Kristel Kaljund - 에스토니아)
문학강사겸 번역사
2009년 10월
문학강사겸 번역사
2009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