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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베를린국제영화제 블로그
벗어날 수 없는 ‘사냥의 시간’

‘사냥의 시간’
‘사냥의 시간’ | 사진(부분): © 2020 Union Investment Partners, Littlebig Pictures, Sidus. All Rights Reserved.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된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이 2월 22일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네마틱한 체험을 선사한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두 편의 한국 영화 중 ‘사냥의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공식 상영 전날 있었던 언론시사회에서는 상영 30분 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다음날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 및 레드 카펫에서는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기생충’을 비방한 것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냥의 시간’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한국이다. 정부는 경제 위기로 또다시 IMF와 협상에 들어갔고 구조조정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파업 중이며 도시의 청년들은 희망이 없어진 지 오래다.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작은 섬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며 친구인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와 위험한 작전을 모의한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곧 정체불명의 추격자(박해수)가 나타나 그들을 뒤쫓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숨 막히는 긴장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윤성현 감독은 장편 데뷔작 ‘파수꾼’을 통해 10대 소년들 사이의 감정적 엇갈림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냥의 시간’은 전작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추구한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인물들이 놓인 상황으로 긴장을 촉발시키고자 한다. 감독은 “이야기나 대사 위주가 아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들, 음악과 사운드, 미술, 편집의 호흡, 배우들의 표정에 보다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벗어날 순 없다

영화의 초반, 기훈과 장호가 출소하는 준석을 마중 나가는 길에 비친 한국의 디스토피아적 도시 풍경은 흘러나오는 힙합 음악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소외된 청년들의 감성을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사운드 측면에서 총소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너무나 강력하고 실감 나므로 노약자나 심장이 약한 분들은 주의를 요한다.

압도적인 악역 또한 인상적이다. 다만, 정신적으로 사이코패스이자 육체적으로는 로봇 혹은 신의 경지에 이른 그의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다. 샤워신에서 잠깐 등장한 근육질 몸에 새겨진 숱한 흉터와 문신, 집안에 전시하듯 걸려있는 잘린 귀들만이 그가 어떤 시간을 겪어 왔는지 암시할 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악역 설정으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쫓기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절박함은 허무하게 느껴지지만, 감각으로 전해진 긴장감에서 달리 벗어날 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