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
청력을 상실한 공상가

베토벤이 청각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장애를 딛고 계속해서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그는 어떤 전략을 펼쳤을까?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지금, 학계에서는 그가 앓았던 질병의 원인과 그것이 미친 영향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28세가 되던 해부터 이미 청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청력이 완전히 소실된 것을 한탄해야 했던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걸작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2020년은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이번에 그의 업적과 삶의 모든 측면, 그리고 특히 그가 앓았던 청각 장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몇몇 연구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시대의 독보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중 한 명이었던 베토벤은 점점 악화되는 병세로 인해 직업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그로 인한 사회적인 영향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미 32세에 작성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서 “내가 죽자마자” 청각 장애에 수반되는 상황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려 “내가 죽은 후에 세상이 나와 가능한 한 많이 화해할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고 주치의에게 요청했다. 극심한 감정 기복에도 시달렸던 이 천재와의 의사소통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러한 화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는 울부짖거나 오랫동안 혼잣말을 하기도 했으며 과도한 음주에 빠져들었다. 또, 다른 여러 질병까지 더해져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세계를 그 자신과 화해시키려는 시도: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 사진(부분): © picture alliance/akg-images
질투심 많은 악마가 끔찍한 장난을 치다
음악가 베토벤이 정확히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오늘날 알 수 있는 방법은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이나 서신, 기록 등을 통해 그것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1801년, 31세가 된 베토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들을 편지에 적었다. “질투심 많은 악마가 내 건강에 끔찍한 장난을 쳐놓았다. 내 청력은 3년 전부터 자꾸 약해져만 가고, 귀에서는 밤낮 할 것 없이 윙윙, 웅웅 소리가 난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귀머거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어 모든 사회생활을 피해 왔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조금은 나았을 텐데, 음악가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악기와 목소리가 내는 높은 음을 듣지 못하고,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회자의 말이 들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고,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기라도 하면 견딜 수가 없다.” 한스-페터 첸너(Hans-Peter Zenner) 이비인후과 명예교수는 이를 두고 “고음역대 및 말 명료도 청력 손실에 따른 난청, 이명, 왜곡 및 청각 과민, 즉 소리에 대한 과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베토벤의 고통을 치료할 수 없었다”라는 그리 놀랍지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청각 장애가 없었더라도 베토벤은 베토벤이었을까?
베토벤의 청력 상실이 그의 작곡 활동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두고 학계 내부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1,568헤르츠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G6음보다 높은 고주파 음역대를 사용한 빈도가 줄었다는 점에서 청력 소실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고음을 베토벤은 점점 더 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활동 중반에 작업한 작품을 보면 그는 중간 주파수 범위의 음역대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1827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의 후반 작품들에서는 그가 내면의 청각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전체 음역대를 모두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다른 학자들은 정반대의 경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한계를 극복하는, 그의 작곡 활동이 갖는 내적인 규칙성에 의해서만 그 엄청난 음악의 창작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의 청력이 그대로였다면 어땠을지 여부는 전혀 중요치 않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