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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상징색
애국심으로 전환된 수치심

독일의 삼색으로 가득 찬 풍경: 2018년 월드컵을 맞이하여 베를린에 모여든 축구 팬들
독일의 삼색으로 가득 찬 풍경: 2018년 월드컵을 맞이하여 베를린에 모여든 축구 팬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 / Hilse/SVEN SIMON

수십 년간 수치심으로 그늘져 있던 검정색, 붉은색, 황금색의 독일 상징색은 축구 월드컵 같은 축제에 빠져서는 안 될 색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국수주의의 탄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8년 6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기대에 찬 표정을 한 수만 명의 축구 팬들이 모여든다.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한 독일 대표팀의 첫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독일을 상징하는 삼색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모자에도, 스카프에도, 손목 밴드에도, 방석에도 삼색이 수놓아져 있다. 어떤 소품을 착용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러 나왔다는 사실이다. 사이드 미러에 독일 국기색을 입힌 운전자들도 더러 있고, 나라 전체가 독일 국기로 물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를린의 길거리 응원: 2018년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의 첫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 든 수만 명의 축구 팬들 베를린의 길거리 응원: 2018년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의 첫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 든 수만 명의 축구 팬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 / Andreas Gora 다른 나라들에서는 국기를 상징하는 색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독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최근 들어 대두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여름, 독일 월드컵이 개최될 즈음해서 나타나기 시작한 신생 트렌드이다. 사회학자인 다크마르 셰디비(Dagmar Schediwy)는 거리 응원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팬들 대부분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즉, 자신이 독일인임을 당당하게 공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공공 장소에서 독일이라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수십 년간 독일인들은 애국심을 감추고 살았다. 꽤 오랫동안 총리직을 수행한 헬무트 콜도 “미래는 유럽 안에 있다”고 말했다.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 안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기존의 역사 이해에 대한 반발

이렇게 조심스러웠던 분위기는 2006년 독일 국기색에 호의적인 언론보도들과 함께 완전히 바뀌었다. 축구 팬들은 자랑스럽게 독일의 삼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셰디비는 이와 관련해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일종의 해방으로 받아들였다”고 분석한다. 특히 젊은 축구 팬들은 함께 모여 축제를 즐기고 싶어 했고, 무엇보다 독일을 더 이상 국수적 나치즘으로 얼룩진 과거사와 연결시키고 싶지 않아 했다. 검정색, 붉은색, 황금색의 삼색을 국기뿐 아니라 얼굴이나 팬용품에도 사용하는 것은 독일인들에게 이제 자신들도, 다른 나라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자기 나라 대표팀과의 연대감을 표시할 수 있다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얼굴, 티셔츠, 손깃발 등 2006년 이래 독일의 삼색은 축구 팬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색이 되었다. 얼굴, 티셔츠, 손깃발 등 2006년 이래 독일의 삼색은 축구 팬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색이 되었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 / Abdulhamid Hosbas / AA 이제는 독일에서도 국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2018년 월드컵을 앞두고 이러한 행동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관련 전문가들은 요즘 들어 더욱 기세가 등등해진 극우주의 운동 때문에 이러한 비판들이 제기된 것이라 분석한다. ‘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 단체 페기다(Pegida)’나 2017년 연방의회 입성에 성공한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지지자들의 시위 현장에서는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의 깃발과 더불어 독일 국기를 함께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 지지자들을 위한 팬용품 판매소에서는 독일 국기의 삼색으로 장식된 스티커나 포스터도 구입할 수 있다.
 
심리학자 슈테판 그뤼네발트(Stephan Grünewald)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나 페기다 지지자들의 국기 시위에 대한 저항으로 일부 축구 팬들이 ‘탈국기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삼색에 다시금 국수주의가 물들고 있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수주의 감정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 국기를 꺼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이데올로기 물결에 휩쓸릴 까봐 두려워한다."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의 린 히어제(Lin Hierse) 기자는 월드컵을 앞두고 이러한 글을 썼다. “페기다가 등장한 이래 독일의 삼색에는 국수주의적 경향을 상징하는 갈색이 늘 따라다닌다."

국가색을 대하는 독일인들의 태도

독일에서는 국가색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독일 연방하원 부의장인 클라우디아 로트(Claudia Roth)는 2018년 6월, 점점 대두되고 있는 국수주의에 대해 경고했다. 녹색당 소속인 로트는 축구 팬들이 소형 국기를 흔드는 것까지 금지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독일인들은 지나친 애국적 자만심을 경계하는 것이 좋다”고 피력했고,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기 위한 도구로 독일 국기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치학자인 슈테판 마샬(Stefan Marschall)은 로트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계속 국기를 흔듦으로써 오히려 “국기가 다른 사상의 홍보에 활용되고 도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상징색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있어 축제를 즐기기 위한 수단일 뿐, 외국인에 대한 적대나 소외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가의 상징색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있어 축제를 즐기기 위한 수단일 뿐, 외국인에 대한 적대나 소외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 / Abdulhamid Hosbas / AA 하지만 2006년 여름처럼 독일 국기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그 때처럼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국기를 흔들기는 어렵다. 한편 독일의 축구 팬들은 다른 나라의 팀들에 대해서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수입업체 프로멕스(Promex)의 국기 판매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독일의 일상 속 문화적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측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독일 국기에 대한 수요가 2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고 있지만, 스위스, 러시아, 폴란드, 아일랜드, 프랑스 국기도 잘 팔린다. 50명 중 1명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 호주의 국기를 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