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적 현실 영화 속 게임장면에 관하여

독일 영화
독일 영화 "충동 (Gaming Instinct; 그레고르 슈니츨러 감독, 2013)"에서 게임과 삶의 구분은 없어진다. | 사진 (일부): © 콩코드 영화 배급사

웨스턴 포커, 체스대결 그리고 최신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는 항상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또한 삶과 게임이 혼재하는 모습도 영화에서는 드물지 않다. 그 속에서 연기는 능숙한 속임수가 되고, 게임충동은 삶을 은유 하게 된다.

프리츠 랑(Fritz Lang)의 영화 "마부제 박사(Dr. Mabuse - Der Spieler, 1922)"에서는 한 사람 안에 모든 게이머의 유형이 결합되어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최고의 악당 마부제는, 영화 "신시내티의 도박사(The Cincinnati Kid)"의 카드 일인자이자 영화 "월 스트리트(Wall Street, 1987)"의 고든 게코와 같은 주식 투기꾼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배우다. "삶은 게임이다"라는 원칙으로 그는 항상 새로운 위장을 통해 현실을 만든다. 그리고 이 게임의 목표는 시민들의 질서 파괴, 즉 무질서다. 플라톤에서 프리드리히 폰 실러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자들이 말한 "인간은 놀이를 할 때 가장 인간적"이라고 칭송한 게임의 순진성은 이렇듯 스포츠 영화나 어린이 영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게임은 진지하다

게임은 기분풀이나 즐거운 사교행위 이상의 활동이다. 게이머는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고, 경쟁을 시도하며 다른 이들을 이기려고 한다. 서부 영웅들은 한 손을 총 위에 올려둔 상태로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도박을 한다. "스팅(The Sting, 1972)"과 같은 유머러스한 익살극에도 조직범죄가 나타난다. 영악한 곡예사로 분한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은 자신들의 친구를 죽인 살해범을 속인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의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 1957)"에서 주인공은 죽음에 대항하여 체스게임을 하고, 거드 오스왈드(Gerd Oswald) 감독의 의 문학작품을 영화화한 "체스 이야기(Schachnovelle, 1960)"의 주인공은 광기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체스를 둔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사이코 드라마 "중국식 룰렛(Chinesisches Roulette, 1976)"에서는 병든 소녀가 게임을 통해 주변 인물들에게 복수한다.

사이버 공간의 가운데에서

먼저 컴퓨터 시대의 개막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게임의 탄생을 약속한다. 해커와 프로그래머들은 가상세계의 도움으로 실체가 없는 새로운 영웅이 된다. "트론(Tron, 1982)" 또는 "론머맨(The Lawnmower Man, 1992)"과 같은 영화를 통해 팩맨 세대는 극장을 점령했다. 이 영화에서는 가상의 현실과 (허구적) 실제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주인공들은 사이버 공간으로 진입한다. 모든 감각능력을 완전하게 발전시킴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완전하게 지워버리는 것을 모범으로 삼는다. 이는 새로운 디지털 효과를 통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 전위 예술가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는 상반된 방법을 선택하여 같은 결과를 얻어낸다. 영화 "엑시스텐즈(eXistenZ, 1999)"에서 장기모양의 조직이 조이스틱으로 기능하고, 게이머의 척수에 삽입된 포트는 플러그인으로 기능한다. 제니퍼 제이슨 리(von Jennifer Jason Leigh)가 연기한 게임 프로그래머 엘레그라 겔러는 대중들의 우상이다.

월드 온 와이어스

호기심 많은 게이머들은 가상현실(Second Life)에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가상현실과 현실세계를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한다. "위험한 게임(War Games, 1983)"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컴퓨터 괴짜는 실수로 펜타곤을 해킹하여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뻔 한다. "엑시스텐즈"의 여주인공은 게임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괴상한 형태의 고기권총에 의해 사살된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물리적 현실이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도 모호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최근에 재발견된 TV 2부작 "월드 온 와이어스(Welt am Draht, 1973)"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인간들은 매혹적인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움직이는데, 그 '실제' 세계마저도 허상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매트릭스(Matrix, 1999)"는 우리의 현실의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공상과학 영화 세대의 시초가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 이 세계는 얼마나 실제적이고 얼마나 인공적인가? 그리고 이 세계에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들을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매트릭스 속에 있는가?

아마도 영화 공간으로서의 가상현실은 오늘날 더 이상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툼레이더(Tomb Raider)"에서 "둠(Doom)"에 이르기까지 빈번하게 비난을 받았던 컴퓨터 게임의 영화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이버 공간과 관련된 희망과 두려움은 그 동안 실제로는 나타나진 않았다. 대신 점점 더 '현실적'으로 변모하는 게임과 영화가 이상하게도 서로 가까워 지고 있음은 관측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덕분에 "GTA(Grand Theft Auto)"나 느와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L.A. 느와르(L.A. Noire)"와 같은 게임은 요즘의 오락용 영화와 유사하다. 개척자 시대의 환상적 매력의 서막을 알렸던 '코모도어 64(c64-LOOK)'의 시각적 추상화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애니메이션화된 보드게임 '열받지마, 친구(Mensch-ärgere-dich-nicht)'의 게임판 보다는 우리가 매트릭스라고 생각하는 알려진 세계의 초현실적인 모사와 더 비슷하다.

게임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이미 게임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게임사회는 더 이상 미래의 비전이 아니다. 정책을 변경시키고 인간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우리는 디지털 놀이터에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스스로의 아바타가 되어, 전략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게임과 삶의 구분은 점점 의미가 다양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최근 출시된 독일 영화 "충동 (Gaming Instinct, 2013)"은 의미의 다양화와 관련된 불안함을 반영한다. 영화 속 젊은 주인공은 그 옛날의 마부제 박사처럼 삶을 게임으로 만든다.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의 감독이 된다. 또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사회적 실험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내용에 대해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들은 규정을 준수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지를 표현하고, 사회적 가치와 게임의 경계를 상기시킨다. 동시에 이 영화들은 금지된 것에 대한 충동을 다루는데, 이는 영화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다. 게임은 이러한 충동 속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