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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잿빛 도시에서 다채로운 색의 도시로

라이프치히 도심
다사다난한 역사: 라이프치히에는 다양한 건축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 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라이프치히는 다사다난한 역사와 흥미로운 미래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힙치히(Hypezig)’라고도 불리는 동독의 이 도시가 통일 이후 재탄생했고, 혁신에 대한 기쁨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결합하기 때문이다.

구동독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라이프치히는 통일 이후 지난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왔다. 구동독 지역은 어둡고 위험하다는 여전히 존재하는 선입견의 장벽을 허물어트릴 만큼 매력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라이프치히를 통해 올해로 통일 30주년을 맞는 통일 독일의 현재를 확인해보자. 
 
괴테가 ‘작은 파리(A Little Paris)’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던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 젊은 시절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수학했던 괴테는 훗날 그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생각과 마음이 맞는 지식인들과 한 도시에 모여 살며 교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며 당시 라이프치히에서의 삶을 회상했다. 1900년대 초까지 독일의 교육, 상업,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라이프치히는 안타깝게도 이후 동서독 분단 시기를 거치며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라이프치히에서 삶을 시작했던 이는 당시 라이프치히의 첫인상을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운 ‘잿빛 도시’로 기억했다. 2020년 독일이 통일된 지 30년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라이프치히를 포함한 구 동독 지역을 어둡고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현재 라이프치히는 과거의 잿빛을 벗겨내고 새롭고 개성 넘치는 색들로 도시의 매력을 되찾고 있다.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빨리 느는 도시’, ‘삶의 만족도가 높은 도시’, ‘젊은 도시’ 등이 최근 이 도시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이런 라이프치히가 과거의 힙했던 베를린을 닮았다고 해서 ‘the new Berlin’, ‘Hypezig’라는 새로운 애칭까지 생겼다.

라이프치히, 통일을 기억하는 공간

Oper Leipzi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일상을 되찾은 아우구스투스 광장

동서독 통일로 이어진 89년 평화 혁명 당시 아우구스투스 광장을 가득 메운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동독 정권에 저항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쇠락해가는 동독 사회의 암울함과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광장은 이제 일상의 평화로움과 활기를 되찾았다. 광장에서는 도시의 축제와 시민 행사가 계절마다 이어지고, 매주 재래시장이 열려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Schauplätze der Wiedervereinigun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라이프치히 통일의 현장

라이프치히 거리 곳곳에는 1989년 평화 혁명과 통일의 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글을 담은 설치물들이 세워져 있다. 라이프치히를 방문하는 이들은 이 설치물을 따라 걸으며 당시의 주요 현장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설치물의 사진을 보면 1989년 당시 가두시위에 참여한 인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 설치된 역사적인 현장의 기록물들이 통일 이후의 세대들에게도 자연스레 지난 역사를 전하는 좋은 통로가 되는 것 같다.
 Die Nikolaikirche in Leipzi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통일의 물길이 시작된 성 니콜라이 교회

1980년대 후반 동독 체제가 동요하는 속에서 시민들은 매주 월요일 교회에 모여 시국 기도회를 이어갔다. 1989년 10월 9일 이들은 기도회 후, 거리로 나섰고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참하며 대규모 시위로 커졌다.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집회는 불길처럼 동독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로부터 한 달 뒤 11월 9일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통일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날 교회 문을 나섰던 이들은 그 일이 통일의 길로 이어질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교회 옆 작은 광장에는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1989년 평화 혁명을 기리는 기념탑이 서있다.
Zeitgeschichtliches Forum in Leipzi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독일 현대사 박물관, 역사의 발자국

동서독 분단 시절과 통일의 역사를 간직한 박물관으로 독일에서 본, 베를린, 라이프치히 세 곳에 위치해 있다. 동독 시절의 생활상과 역사적 사건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앞에는 동독의 대표적인 미술가 ‘볼프강 마트 호이어(Wolfgang Mattheuer)’의 조각품 ‘세기의 걸음(Jahrhundertschritt)’이 설치되어 있다. 나치즘과 사회주의의 기치로 질주했던 20세기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1985년 발표 당시 동독에서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의 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는 동시에 21세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지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다.
Das Lichtfest in Leipzig erinnert an die friedliche Revolution von 1989.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평화를 기원하는 빛의 축제

통일 이후 매년 10월 9일 아우구스투스 광장에서 1989년의 평화 혁명을 기념하는 ‘빛의 축제(Lichtfest)’가 열린다. 시민들은 모두들 한 손에 촛불을 밝혀 들고 축제 장소인 아우구스투스 광장을 가득 메운다. 통일 전후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평화 혁명과 통일을 기념하고 더 나아가 이웃과 세계의 평화를 함께 기원하는 뜻깊은 행사이다.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발돋움하다

Die Universität Leipzig wurde 1409 gegründet.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이름을 되찾은 라이프치히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은 1409년에 설립된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라이프니츠, 괴테, 바그너, 니체, 슈만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수상 등 독일의 주요한 인물들이 이 대학에서 공부했고 노벨 수상자도 서른 명에 이르는 전통을 자랑한다. 동독 시절에는 ‘카를 마르크스 대학’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인재를 길러내는 중심 대학으로 기능했다. 통일 이후 다시 라이프치히 대학 본래 이름을 되찾았고, 낡은 사회주의식 본관 건물은 재건축을 거쳐 2012년 웅장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라이프치히 대학은 ‘전통을 지닌 현대적인 대학’을 표방하며 옛 명성을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Die Universitätskirche St. Pauli wurde 1968 auf Anordnung des ostdeutschen Regimes gesprengt und völlig zerstört 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이념에 파괴된 성 바울 대학 교회

‘라이프치히 대학의 성 바울 대학 교회(Universitätskirche St. Pauli)’는 1968년 동독 정권에 의해 폭파되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카를 마르크스 대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회주의 이념의 성전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무너진 교회 자리에는 사회주의식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고 건물 앞에는 거대한 마르크스 동상이 세워졌다. 이제 마르크스 동상은 사라지고 옛 대학 교회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건물 용도는 시민들의 논의를 거쳐 교회로 완전히 복원하는 대신 대학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Vor einigen Jahren starteten die Universitäten in Ostdeutschland eine Kampagne mit dem Titel „Studieren in Fernost“, mit dem Ziel, insbesondere westdeutsche Schüler*innen für ein Studium an einer ostdeutschen Hochschule zu begeistern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먼 동쪽으로 공부하러 오세요?

동독 지역의 대학들은 몇 년 전 ‘먼 동쪽에서 공부하세요(Studieren in Fernost)’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서독 지역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굳이 ‘Fernost’, ‘먼 동쪽’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여전히 서독 지역민들이 동독 지역을 심적으로 멀게 느끼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캠페인 효과 덕분인지 서독 지역에서 라이프치히와 동독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점차 느는 추세이다. 여전히 동독 지역에서 서독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동서독 지역 간 인적 교류가 균형을 잡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서독 지역에서 라이프치히로 온 학생들은 대체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 등의 대학 인프라, 오랜 학문 전통, 낮은 물가, 풍부한 문화예술 환경, 밝고 깨끗한 도시 분위기 등이 좋은 점으로 꼽힌다.

라이프치히 시간 여행 

Ein Streifzug durch Leipzigs Straßen.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시간을 품은 거리

라이프치히 시내 거리를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중세와 동독 시절, 그리고 현대의 건물들이 한 거리에 서로 이웃하며 서 있기 때문이다. 장식이 돋보이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물, 성냥갑같이 단순하고 건조한 동독 시절 건물,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춘 통일 이후 건물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있다. 굴곡진 지난 시간을 이 도시가 넉넉히 품고 있는 것 같다.
Die Leipziger Notenspur kombiniert Musik und Stadterkundun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음악의 발자취를 따라

라이프치히 시내를 걷다 보면 금속 재질의 표시들이 바닥에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노텐스푸어(Notenspur)’다. ‘노텐(Noten)’은 악보, ‘스푸어(Spur)’는 자취를 뜻하는데 라이프치히와 관련 있는 음악가들의 자취를 따라 음악 테마 탐방을 할 수 있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 ‘노텐스푸어’를 따라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했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 리하르트 바그너,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는 음악 여행을 떠나 볼 수 있다. ‘노텐스푸어’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쉽게 코스를 둘러볼 수 있고, 음악가의 생가 앞에서 그의 음악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Jedes Jahr im Juni findet in Leipzig das Bachfest statt. 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바흐 페스티벌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죽기 전까지 27년간 라이프치히와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성 토마스 교회 제단에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라이프치히는 매년 6월 바흐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축제 기간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가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이 바흐를 만나러 라이프치히를 방문한다. 동서독 분단 시기에도 바흐 협회는 둘로 나눠지지 않고 단일 조직을 유지해 한 해씩 동서독 도시를 번갈아 가며 바흐 페스티벌을 개최했다고 한다. 이념과 정치적 갈등을 뛰어넘어 화해와 교류를 가능케 하는 예술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Felix Mendelssohn wurde bereits im Alter von 26 Jahren Dirigent des Gewandhausorchesters.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멘델스존의 명예회복

펠릭스 멘델스존은 26세의 젊은 나이에 라이프치히 시립교향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의 지휘자로 부임했다. 이 기간 멘델스존은 잊혀져 가던 바흐의 곡들을 재발굴해 연주함으로써 바흐를 재조명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나치 정권 시절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은 의도적으로 묻혀지고 그의 동상도 철거되어 사라지게 된다. 2009년 멘델스존 탄생 20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는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음악적 업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라이프치히도 철거되었던 멘델스존의 동상을 시와 민간이 기금을 모아 복원했다.
 
Die „Löffelfamilie“ ist eine Leuchtreklame am Gebäude des Lebensmittelherstellers VEB Feinkost Leipzi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부활한 ‘숟가락 가족’

‘숟가락 가족(Löffelfamilie)’은 1800년대 중반부터 식품 제조와 보관을 위한 건물로 사용되던 ‘파인코스트(Feinkost: 진미, 별미)’의 간판이다. 동독 시절인 1973년에 만들어졌다. 통일 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라이프치히 시에서 이를 철거하는 대신 문화재로 지정해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단체가 위탁 관리하고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간판은 매일 일몰 후 딱 90분간만 네온사인이 켜진다. 그 후에는 3유로의 기부금을 내면 3분간 간판 불을 밝힐 수 있다. 재미있는 운영 아이디어다. 파인코스트 건물도 보존되어 공연, 축제, 벼룩시장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라이프치히에는 파인코스트 외에도 통일 후 이전의 건물들을 허물지 않고 되살려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이용하는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 자본의 논리가 미처 들어서지 못한 자리. 라이프치히가 숨 쉬게 하는 허파라고 하면 과장일까?

라이프치히 속의 Hypezig

KarLi ist die Kurzform von Karl-Liebknecht-Straße.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라이프치히 힙의 출발지, 칼리

힙한 라이프치히가 생겨난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칼리. 원래 명칭은 ‘칼 립크네히트 거리(Karl-Liebknecht-Straße)’인데 줄여서 칼리라고 불린다. 칼 립크네히트는 라이프치히 출신으로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치가이다. 반전주의자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소속 당이었던 사민당의 전쟁 협력 노선에 단호히 반대하다 당에서 축출되었고, 이후 1918년 독일 공산당(KDP) 창당을 주도했다. 동독 시절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통일 이후에도 계속 거리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2km 정도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양쪽으로 레스토랑, 노천카페, 바, 클럽, 문화공간들이 즐비해 있다. 라이프치히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고, 상대적으로 집세가 저렴해 학생들이 많이 주거하다 보니 자연스레 젊은 거리가 형성되었다. 자유롭고 다채로운 분위기가 거리의 매력을 한껏 더해준다.
Gegenwärtig ist Plagwitz einer der angesagtesten Bezirke in Leipzi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가난한 젊음의 새 보금자리, 플라그비츠

칼리 거리가 인기를 얻자 역시나 이곳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월세와 물가가 올랐고 이렇게 오른 가격이 부담스러운 청춘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이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플라그비츠(Plagwitz)’다. 동독 시절까지 공장들이 즐비한 산업 단지로 역할을 하던 이곳은 통일 후 동독의 기업들이 거의 문을 닫으면서 폐허처럼 남겨지게 되었다. 남겨진 빈 건물에 예술가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이어 가난한 젊은이들이 저렴한 집을 찾아 옮겨오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지금은 라이프치히 창작자들의 활동과 젊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Hypezig’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Die Spinnerei ist ein bekanntes Kunst- und Kulturzentrum in Leipzig.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방직공장에서 문화예술의 메카로

플라그비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슈피너라이(Spinnerei)’. 번역하면 방직공장이라는 뜻이다. 유명 문화예술 공간이지만 원래 이곳은 동독 시절까지 방직공장단지였다. 1990년대 초까지 유럽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통일 후 이 단지도 문을 닫았는데, 이후 라이프히시와 민간이 협력해 이곳을 복합문화예술 단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미술가들의 아뜰리에와 갤러리들이 들어섰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네오 라우흐(Neo Rauch)’도 일찍 92년부터 이곳에 아뜰리에를 열었다. 슈피너라이는 그동안 미술뿐만 아니라 그래픽, 패션, 공예, 공연, 영화 등 다양한 분야 창작자들까지 함께 활동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성장해왔다.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도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Die Spinnerei Leipzig bietet jedes Jahr im Frühling und Herbst Rundgänge an.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슈피너라이 룬트 강

‘룬트 강(Rundgang)’은 순회라는 뜻인데, 독일 미술대학이나 예술 단지들이 매년 시민들을 위해 개최하는 일종의 예술축제이다. 슈피너라이도 매년 봄과 가을 룬트 강 행사를 갖는데, 이날은 갤러리 전시회 뿐만 아니라 입주 예술가들이 자신의 아뜰리에를 개방해 일반인들이 슈피너라이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아뜰리에에 들러 예술가들의 작품과 작업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이들과 작품에 대해 대화할 수도 있어 색다른 예술 체험이 된다. 이런 매력 덕분에 룬트 강 행사 때에는 슈피너라이의 넓은 공간이 방문객들로 가득 찬다.
In der Spinnerei befindet sich auch das Start-up Accelerator SpinLab.사진(부분): 오정택 ©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라이프치히의 혁신 엔진, 슈핀랩

슈피너라이에 문화예술 창작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슈핀랩(SpinLab)’도 2015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라이프치히 비즈니스 스쿨 HHL, 라이프치히시, 그리고 포르쉐, 도이체방크 등의 기업들이 협력하여 4차 산업 혁명을 위한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을 양성하기 위해 슈핀랩을 열었다. 널찍한 옛 공장 건물에서 내일의 혁신을 불러일으킬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창업의 실을 열심히 잣고 있다. 그동안 70여개의 스타트업들이 슈핀랩의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거쳤고, ‘트리바고(Trivago)’, ‘넥스트바이크(Nextbike)’ 등 크게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들이 여럿 나왔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구동독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라이프치히에 거주하는 한국인(오정택, 이유진, 이초롱, 진병우, 최인혜)으로 구성된 ‘라이프치히 프로젝트(Leipzig Project)’는 독일 통일의 사례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을 상상하고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라이프치히의 주거, 일자리, 교육, 문화 등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의 생활상을 3년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 동안의 글과 사진을 모아 ‘동독에서 일주일을: 통일 후 넘어야 할 일곱 개의 장벽(가쎄)’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1월 9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