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을 중시하는 독일인들 사우나 역설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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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사생활 보호와 관련된 사안에 있어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이것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러한 태도가 바야흐로 디지털 사회를 맞이하여 개인정보가 점점 더 외부에 드러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과연 시의적절한 것일까?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슈말레(Wolfgang Schmale)는 가끔 네덜란드를 방문하는데, 저녁 무렵 그곳 거리를 거닐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커튼이 없더라. 주택가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대놓고 거실을 들여다 보는데, 독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다수 독일인들은 왜 모르는 사람이 자기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극도로 불편하게 생각할까? 또 유럽 내 이웃국가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와 관련해 왜 독일인들보다 훨씬 더 관대한 태도를 보일까? 혹은 이런 식의 비교 자체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닐까? 두 경우 모두 사생활 영역은 금기시되는 영역이기는 매한가지인데, 유독 독일인만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온 슈말레는 실제로 국적이나 문화적 배경 혹은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히 적용되는 사생활 개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좁은 의미로 볼 때 자기만의 방, 자기 집 혹은 자기 집 안의 정원 등에 대한 애착은 시대를 불문하고 늘 존재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개념이 많이 변질되었고, 그러면서 저마다 프라이버시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사생활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3자로부터 독립된 공간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슈말레는 "오늘날 우리는 사생활이라는 말을 대체로 남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시민사회가 대두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변화하는 프라이버시의 의미

슈말레는 또 사생활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때그때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 개념이라 강조한다. 나라나 문화권 별로 해당 개념이 다르게 발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개방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서 사생활을 더더욱 중시하게 된 이유에 분명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슈말레는 그 역사적 배경을 "전체주의 정권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설명이 아마 가장 적절할 것이다. 결국 그 때문에 개인정보를 악용 당하는 실수를 되풀이하거나 허용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더욱 커졌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한편, 슈말레는 그러한 역사적 배경이 문화사적으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트렌드를 양산했다는 점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신기하게도 독일인들은 개인정보보호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몇몇 문화권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극도로 금기시되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한다. 노출이 그 좋은 예이다. 미국인들 대부분은 대중 사우나에서 옷을 벗는 행위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그게 이상하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슈말레의 의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누드 문화에 대해 관대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구 동독 시절, 누드 문화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정치적 자유의 부재에 대한 일종의 반동 현상이었던 것이다. 슈말레의 분석에 따르면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은밀한 신체적 부위의 노출에 대해서도 열린 마인드를 갖게 한 것"이다.

독일인들만의 "마이 웨이"

그렇다, 독일인들은 해가 지자마자 커튼을 닫지만, 사우나나 수영장에서 벌거벗은 몸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미국의 기술 전문 칼럼니스트인 제프 자비스(Jeff Jarvis)는 ‘역설’이라는 말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수 년째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새로운 행동양식들을 연구해 온 자비스는 무언가를 공개하는 행위의 바탕에는 공유와 확산이라는 윤리가 깔려 있고, 프라이버시와 관련해서는 무언가를 자기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 독일인의 철저한 사생활 보호 방식이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 꼬집는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공개하고 공유하라(원제: Public Parts)"에서 한 장 전체를 독일인의 행태를 분석하는 데에 할애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독일인들의 심리가 과연 모든 경제 분야들이 공개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 의문스럽다. 나아가 그러한 현상이 결국 다가올 디지털 경제 시대에 있어 독일의 입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라고 서술했다.

자비스 외에도 이른바 독일식 "마이 웨이"에 대해 신기해하거나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독일만큼 개인정보보호에 대해 이만큼 집중적으로 토론하지 않고 논란이 분분하지도 않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수집에 기반을 둔 사업체나 테러 위험을 최소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렇게 사생활 보호에 집착하는 독일인들의 오랜 성향이 난감하기 짝이 없다.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히 개인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분석할수록 더 효과적인 방지책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국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생활을 침해 당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각종 장점들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이른바 "포스트 프라이버시 운동"이 이제 독일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옹호자들은 디지털화를 통해 모든 것이 공개되는 요즘 시대의 장점들을 진정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생활 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생활 보호 없이는 평등도 없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매우 합당한 이유도 있다. 녹색당 소속 EU 의회 의원인 얀 필립 알브레히트(Jan Philipp Albrecht)는 각종 디지털 서비스들로 인해 사생활 영역이 조금씩 침식되고 있고, 그것이 결국 자유라는 개념마저 흐리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신의 저서 "우리 정보에 손대지 말라!(Finger weg von unseren Daten!)"에서 유사 이래 한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있어 특정 정보를 공개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자유가 매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결정적 전제조건이 이제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사생활 영역 축소 문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이라 말한다. "효과적인 개인정보보호 없이는 평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볼프강 슈말레 역시 같은 생각이다. 슈말레는 "모든 자유사회, 모든 자신감 넘치는 사회는 사상과 의사표현의 자유의 바탕 위에 구축되는 것이다. 사생활 보호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렇다면 독일식 마이 웨이는 결국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비록 독일인들이 사생활 침해에 대해 지나친 공포감을 지니고 있고 때로는 그 때문에 조롱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게 전혀 틀린 것이 아니라는 뜻일까? 이와 관련해 슈말레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문화 코드들은 늘 변화하는 것이고, 독일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라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몇몇 사생활 영역들은 앞으로도 분명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