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골목구역’ 삶과 예술을 위한 공간

2009년, 역사와 전통을 품은 함부르크의 골목길들에 새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자 한 예술가 단체가 해당 구역 건물들을 점거해 버렸다. 예술가들은 역사적 건물들을 보존하고 함부르크 심장부에 예술가들을 위해 더 많은 공간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제빵사들의 넓은 골목(Bäckerbreitergang)', '직물업자들의 대열(Caffamacherreihe)' 등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거리 이름으로 가득한 함부르크 노이슈타트 지역에 고개를 치켜들게 만드는 건물들이 들어섰다. 업무용 고층 건물들의 전면부가 하늘로 치솟아 있고, 태양빛이 유리에 반사된다. 그런데 골목구역(Gängeviertel)에 새로 들어선 그 건물들 중간쯤에 12개의 잿빛 주택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함부르크 노이슈타트 지역 노동자들의 역사를 간직한 최후의 보루들로, 2009년 8월 200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점거되었던 건물들이다. 당시 함부르크 시는 빈집들을 포함해 해당 구역을 네덜란드의 어느 투자자에게 매각했고, 해당 투자자는 그 지역 건물 대부분을 철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도시 심장부에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즉 적정 임대료의 작업 및 주거 공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해당 사안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함부르크 시는 해당 구역을 다시 매입했으며 지금은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문화 공간을 통해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된 도시

사진작가 카르스텐 라베(Carsten Rabe)는 "이번 사업의 상징적 의미가 대단하다. 어린 시절에 이미 모든 것을 실용적으로 재활용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부터 배우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라고 말한다. 대부분 지자체들이 그렇듯 함부르크 역시 도시계획상의 제1원칙은 '최고액 입찰자에게 모든 것이 돌아간다'였다. 이에 따라 도심은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입주자들을 위한 사무용 및 주거용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개성 없는 익명의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라베는 "조용한 곳을 원한다면 밤 9시 이후에 도심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라는 말로 활기라고는 전혀 없던 이 지역을 묘사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200명의 길거리예술가와 콘셉트아티스트, 사진작가, 조각가, 화가 등이 살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될 당시, 라베는 담당자들이 함부르크 도심에 일과 작업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도심의 구시가지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 사이 라베는 해당 구역에서 리노베이션 작업이 완료된 유일한 건물인 '쿠퍼디베하우스(Kupferdiebehaus)'에 입주했다. 쿠퍼디베하우스는 현재 약 30명의 예술가들에게 주거와 작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목재 바닥에서는 상쾌한 나무 냄새가 풍기고, 하얀색으로 칠해진 벽들은 매끄러움을 자랑한다. 하지만 입주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급한 대로 사용할 수 있게 임시로 수리해 둔 석탄보일러 시설에 만족해야 한다. 함부르크 골목구역의 전체 정비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아직도 10년이 더 걸릴 듯하고, 비용도 2천만 유로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함부르크 시는 79개의 공공주택과 21개의 사무용 건물들을 이곳에 건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도심의 미래를 위한 협상

여론은 처음에는 예술가들의 요구를 조롱했고, 이에 예술가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도시를 살리고 역사적 건물들을 보존하자는 그들의 요구에 함부르크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 150명이 합류했고, 한때 다닥다닥 건물이 늘어서 있던 드넓은 공장지대였으나 이제는 좁은 골목길들만이 남아 있는 그 작은 지역에 대해 수많은 TV 채널과 신문사에서 앞 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골목구역'이라는 명칭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골목구역 홍보대변인인 크리스티네 에벨링(Christine Ebeling)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주택들이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제 이곳에서는 각종 전시회와 콘서트들이 개최되고 있고, 비영리 커피숍들도 들어서 있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래피티와 조형물들 그리고 산업화 초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건물의 전면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전 세계 각지의 유사 프로젝트 담당자들과 의견교환을 했던 에벨링은 "캐나다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곳을 방문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함부르크 골목구역과 해당 지역 예술가 집단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은 도심 내 주거 및 작업 공간의 발전 방향에 대해 많은 이들 사이에 암묵적 합의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에벨링은 해당 프로젝트가 결코 헛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에벨링에 따르면 이해당 프로젝트는 1960-70년대 위성도시의 중요성만 강조하며 도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먼 출퇴근길을 강요하던 정책에 대한 실용적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공적 자금 투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지자체가 건축주 입장이 되어 관계된 예술가 그룹들과 공조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다. 에벨링은 그러한 도시들과도 지속적으로 의견교환을 하고 있다. 사실 시민이 참여하는 형태의 도시계획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골목구역 프로젝트 역시 2015년 초, 관련 예술가그룹 측에서 임차인의 골목구역 조합 참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공공주택 사업에 있어 그런 식의 요구조항은 사실 법률적으로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앞으로도 함부르크 시 측과 논쟁을 얼마나 벌여야 할지 모른다. 골목구역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힘든 싸움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에벨링은 "임대료와 행사 수입만으로는 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한때 벨트와 버클을 생산하던 5층짜리 공장건물 '파브리크(Fabrique)'를 문화센터로 개조할 경우, 매년 24만 유로의 지원금이 필요하다. 골목구역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비영리 사업이고, 그런 만큼 공적 자금의 지원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 에벨링은 "앞으로 우리는 '시 측에서 이미 2백만 유로나 줬는데 뭘 더 바라느냐?'는 의견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진예술가인 라베는 골목구역 프로젝트가 비록 한시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와 관련된 기본적인 정신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것이라 말한다. 라베 자신도 1985년 예술가 집단이 임차한 함부르크 중심의 베스트베르크(Westwerk)라는 건물에 살고 있는데, 그는 "언젠가는 골목구역이 자리를 잡고 그곳 거주자들도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는 이 다음 세대도 예술가와 시민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공간 확보를 위해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고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중심부터 시작해서 도시 전체가 무너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