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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애니메이션 영화
독특한 새들: 애니메이션 원정대

카트린 로테 감독의 '1917, 붉은 10월'에서 묘사된 혁명가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Wladimir Majakowski)의 모습
카트린 로테 감독의 '1917, 붉은 10월'에서 묘사된 혁명가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Wladimir Majakowski)의 모습 | 사진 (부분): © 카트린 로테 영화제작사

애니메이션 영화계가 독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훌륭한 교육 체계가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는 오랫동안 독특한 사람들의 놀이터쯤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매우 고무적인 움직임들이 일면서 이 분야의 변화가 기대되고 있다.

리차드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모험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남은 인생을 보잘것없는 참새로 살고 싶지 않다는 비장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황새 가족에게 입양된 뒤부터 리차드는 자신이 텃새가 아닌 철새라고 믿기 시작하고, 가을이 되면 아프리카로 날아가겠다고 결심한다. 리차드의 굳은 결의를 막을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리차드는 토비 겐켈(Toby Genkel) 감독과 레자 메마리(Reza Memari) 시나리오 작가 겸 공동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꼬마 참새 리차드: 아프리카 원정대(Überflieger – Kleine Vögel, großes Geklapper)’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독일을 중심으로 몇 개 국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두 감독은 작은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자연의 법칙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 리차드의 모험을 탁월한 공감 능력과 재기 발랄한 유머로 그려냈다.
 

 

국제적 호평과 성과

작은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꼬마 참새 리차드는 미국이라는 거대 힘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독일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실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대부분 낙관주의자들이다. 이 낙관주의자들은 언제든지 조작이 가능한 현실이라는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있다.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애니메이션 영화인들의 슬로건이다. 물론 현실주의적 관점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세계 영화배급사들에 의하면 독일 애니메이션 영화는 많은 나라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유독 자국에서만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겐켈 감독은 말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성공적인 수출 실적을 거둔 독일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이었다. 겐켈 감독의 바로 전 작품인 ‘노아의 방주: 남겨진 녀석(Ooops! Die Arche ist weg, 2015)’은 51개국에 수출되었고, 2016년 2천3백만 유로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그 전년도에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마야(Die Biene Maja, 감독: 알렉스 슈타더만, 2014)’ 역시 49개국으로 수출되어 2천만 유로를 벌어들였다.

독일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선구자들

그러나 자국 내에서는 애니메이션 장르가 오랫동안 독특한 사람들의 놀이터쯤으로만 여겨져 왔다. 시나리오 작업도 직접 하는 영화감독인 요헨 쿤(Jochen Kuhn)도 ‘일요일 3(Sonntag 3, 2012)’과 같이 인유와 독특한 일러스트 스타일이 가득한 애니메이션 작품들로 여러 차례 수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고독한 투사’로 지내야만 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게르하르트 한(Gerhard Hahn)과 미하엘 샤크(Michael Schaack)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하면서 지각 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한과 샤크는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베르너(Werner)’ 시리즈 만화를 영화로 제작)과 ‘코끼리 벤자민(Benjamin Blümchen)’이나 ‘비비 블록스베르크(Bibi Blocksberg)’ 같은 어린이를 위한 TV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즉, 투트랙 비즈니스모델을 추구한 것이다. ‘로라의 별(Lauras Stern, 2004)’로 이름을 널리 알린 틸로 그라프 로트키르히(Thilo Graf Rothkirch)도 자신의 비전을 현실화함으로써 척박했던 애니메이션계의 도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로트키르히는 할리우드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예산으로 경쟁력 있는 어린이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탁월한 교육 체계

이제 독일 애니메이션은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가 주도하고 있는 유럽 애니메이션계의 수준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독일의 애니메이션 분야 교육 체계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카셀 예술대학교(Kunsthochschule Kassel)는 1979년에 이미 애니메이션 전문 학과를 개설했다. 인형 애니메이션 영화인 ‘균형(Balance, 1989)’으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며 독일 애니메이션계에 사상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크리스토프 & 볼프강 라우엔슈타인(Christoph und Wolfgang Lauenstein) 형제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바벨스베르크의 콘라트 볼프 영화학교(Filmuniversität Konrad Wolf)는 1984년 애니메이션 전공을 독립시켰고, 다름슈타트와 쾰른의 예술대학들도 각 장르들 간의 교류에 보다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루트비히스부르크에 소재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영화아카데미(Filmakademie Baden-Württemberg)는 국제적 교류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유명한데, 1991년 개교 때부터 애니메이션 학과를 운영해왔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대개 졸업 이후 ‘훌륭한 명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1년에 기껏해야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가 2-3편밖에 제작되지 않는 독일에서는 대학 시절의 작품들이 황금빛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독일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의 인기가 꽤 높은 편이다. 다양한 제작 기술을 섭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애니메이션 영화 종사자들의 기술력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실루엣 애니메이션, 컷아웃 애니메이션, 샌드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매우 방대하다. 독일에서는 심지어 레고 블록을 이용해 제작된 브릭필름만을 위한 축제도 개최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계 구조

독일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려면 풍부한 상상력과 더불어 끈기 그리고 신뢰할 있는 파트너들을 확보해야 한다. 독일 TV 채널들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방영 시간을 좀체 할애하지 않는다. 공영 어린이방송채널인 키카(KiKA)의 경우에도 독일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나 만화 시리즈가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도 프랑스와 같이 쿼터제를 도입하여 자국 애니메이션의 일정 방영 비율을 의무화한다면, 독일 내에서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을 확보하고 견고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애니메이션협회(AG Animationsfilm)도 힘든 로비를 거쳐야만 비로소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는 실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 방송사들을 통해 고유한 브랜드들이 창출되고 이러한 브랜드들이 극장으로 진출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관련 업계의 구조는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도 독일에서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찍는다는 말은 곧 실패의 지름길을 걷겠다는 말과 같다. 애니메이션 제작 패턴 역시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이다. 우선 대히트를 기록한 아동 도서 하나를 고른 다음 TV 만화 영화나 동영상 클립을 제작하고, 뒤이어 극장용 영화를 만들고, 그 다음에는 속편을 내는 식”이라고 영화비평가 라르스 페닝(Lars Penning)은 지적한다. 로트키르히의 작품들도 이렇게 제작되었고, ‘꼬마기사 트렝크(Ritter Trenk, 감독: 앤서니 파워, 2015)’나 ‘레이븐 더 리틀 래스클(Der kleine Rabe Socke, 감독: 우테 폰 뮌초프-폴, 2012)’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한편 애니메이션 영화 지원단체나 영화제작사들은 원소재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예컨대 ‘꼬마 참새 리차드: 아프리카 원정대’와 같은 영화는 어린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우정과 인내심 같은 미덕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도 거침없이 표현한다. 이 작품의 공동감독이었던 레자 메마리(Reza Memari)는 “소재 계발 단계에선 모두가 우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취급했다. 우리에게 퇴짜를 놓은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일단 이 소재로 어린이책부터 만들어 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라고 회고한다.
 

국제적 다양성을 통한 기회 개발

작금의 정해진 틀 안에 갇혀 있는 한 독일 애니메이션계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이러한 틀에서 탈출하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국제적 다양성을 꾀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이민자 출신의 영화인들이 중대한 예술적 움직임을 보여준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알리 사마디 아하디(Ali Samadi Ahadi) 감독은 작품 ‘더 그린 웨이브(The Green Wave, 2011)’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기법에 컷아웃 장면들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이란의 녹색혁명을 소개한 바 있다. 얼마 전에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이란 출신의 알리 수잔데(Ali Soozandeh) 감독이 ‘테헤란 타부(Teheran Taboo)’라는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수잔데 감독의 작품은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실제 장소에서는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영화였다. 섹스와 각종 비리, 성매매 관련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이미지 묘사가 전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미래를 개성 가득한 필체 속에서 찾는 것도 미래를 개척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카트린 로테(Katrin Rothe) 감독의 '1917, 붉은 10월(1917 – der wahre Oktober)'이 아마도 이러한 맥락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듯하다. 역사의 산 증인들인 다섯 명의 예술가들을 동원해 이들의 시선으로 10월 혁명을 재조명해낸 이 영화의 각 장면들은 그 당시의 기술 수준을 그대로 적용한 탓에 조금 촌스러운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이것이 바로 로테 감독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자기만의 예술적 표현방식이다. 로테 감독은 또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니는 이미지 표현의 한계도 뛰어넘으며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하기도 했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다시 말해 자기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