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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베를린국제영화제 블로거
사라진 곰들

포츠담 광장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에서 보통은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에 영화제작자와 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는다. 하지만 2021년에는 그렇지 않다. | 사진(부분): © 이혜진

매년, 레드 카펫 위에 있는 영화 제작자와 배우를 볼 수 있었지만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에서 이곳은 텅 비어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제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확인해보자.

그 해의 키 비주얼과 포스터로 치장한 다양한 전광판과 입간판을 설치하기 위해 블록마다 들어선 화물차들, 한 손엔  언론시사 프로그램북을 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언론인들, 주요 장소마다 들어선 빨간 곰들과 레드 카펫 행사를 위한 바리케이드 등, 이 풍경은 긴 겨울 얼어붙었던 베를린 포츠담 광장 주변의 공기가 곧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며 온기로 가득 찬다는 신호였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말이다.
 
베를린 중심에 자리한 포츠담 광장은 단연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핵심 장소로, 영화제 본부 사무실과 여러 섹션의 게스트 오피스를 비롯해 시상식과 레드 카펫 행사가 열리는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 그리고 주요 상영관들이 밀집한 곳이다. 그러나 올해는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포츠담 광장은 평소와 달리 터무니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준비기간 동안 고개를 내밀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영화제 기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했지만 당시 그 누구도 이젠 지겨운 그 이름이 1년 후 개최될 영화제에 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사라진 시대의 유적지

지난 1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고 베를린국제영화제 역시 그래야만 했다. 올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될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첫 번째 행사가 한정된 관객과 함께 온라인으로만 진행된다는 것은 이미 발표된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직전 둘러본 포츠담 광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관객과 영화인들만 사라진 것이 아니고, 영화제 시작 전부터 주요 장소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영화제의 상징인 빨간 곰들과 포스터들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올해 열릴 페스티벌의 맥박을 겨우 짚을 수 있었던 곳은 소니센터 필름 하우스 지하에 위치한 ‘Kino Arsenal’ 상영관 입구의 포스터들과 운영본부 건물 로비에 붙어있는 포스터 몇 장 그리고 영화제 굿즈를 전시해놓은 상점의 쇼윈도뿐이었다. 심지어 텅 빈 광장 한가운데 놓인 스타의 길(Boulevard der Stars)과 포츠담 광장 역사 내 영화제 발자취를 보여주는 사진들은 마치 이미 사라진 시대의 유적지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 화려함과 플래시 세례의 자취는 없어도 영화 제작은 중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말이다. | 사진(부분): © 이혜진
우선은 온라인상에서만 존재하는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영화제의 물리적인 실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A급 영화제들 중에서도 한 해를 여는 가장 중요하고 규모 있는 마켓이라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또 다른 본질에는 말 그대로 축제로서 관객과 작품, 영화인들이 한대모여 부대끼며 영화 예술을 수용하는 가장 특별하고 적극적인 ‘장’을 제공하는 데 있다. 흔한 영화제 홍보 포스터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포츠담 광장 주변의 모습은 적잖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하여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영화제는 ‘영화관에 모인 관객들’이 있어야 진정한 축제라는 반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관객이 빠진 광장에 치장을 해서 무엇할까.
 
주최 측이 어려운 시기에 영화제의 주요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투 트랙(Two Track)’이라는 돌파구를 제시했다. 이에 부응해 성공적인 온라인 산업 행사 이후 6월에 열릴 관객 행사 때는 사라졌던 곰들도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여러 상영관을 바삐 움직이는 그야말로 온전한 축제의 모습을 한 포츠담 광장의 여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