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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베를린국제영화제 블로거
생동적인 아카이브, 영화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
최신작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를 통해 김민정 감독은 제주도의 역사적 사건들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 | 사진(부분): ⓒ 김민정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내용과 형식 면에서 가장 신선한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부문이 ‘포럼 익스팬디드(Forum Expanded)’ 섹션이 아닐까. 포럼 익스팬디드의 올해 선정작 중, 국제 초연(International Premiere) 상영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을 만나게 될 김민정 감독의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사기가 돌아가고 화면엔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가 자리한다. 감독이 보여주고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자, 영화 내내 자막으로 흐르던 홀리스 프램튼(Hollis Frampton)의 ‘강연(A Lecture, 1968)’의 문장들 중 하나가 끝까지 뇌리에 남는다.

“우리는 결코 이 직사각형 안에서 무엇을 더 볼 수는 없고, 단지 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We can never see more within our rectangle, only less.”

 
김민정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해 제주가 가진 역사적 사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감독은 그 만남의 안내자로서 본인이 제주의 곳곳에서 ‘들여다보고 내다보며’ 치른 의식을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라는 작품을 통해 아카이빙하여 보여준다. 제주도는 국내외 방문객에게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기 오래전, 섬 전체가 걸음걸음마다 학살터였던 곳이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인 대량학살의 집단기억을 다시 불러왔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처리되고 보관된 집단기억은 마침내 관객들을 만났다. 그가 제시한 동굴의 프레임에서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고,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으며,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 김민정 감독은 영화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관객들이 직접 보고 듣도록 한다. | 사진(부분): © 김민정
김민정 감독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눈과 홀리스 프램튼(Hollis Frampton)의 목소리로 아카이브를 빚은 장본인이자 관객 사이의 매개자로서,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즉 간섭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고 들려주며 세련되게 관객들을 살아있는 아카이빙 작업에 참여시킨다. 그렇게 새로운 관객을 통해 제주의 시공간이 다시 기억으로 전수된다. 영화의 후반부 무심코 짧게 등장한 메모 속의 ‘4.3’은 한국인에게는 곧장 ‘그날’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작품이 국제무대에서는 어떠한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독립 큐레이팅 섹션 포럼 익스팬디드와 확장된 영화 매체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은 포럼과 더불어 ‘아스널(Arsenal – Institut für Film und Videokunst)’에서 큐레이팅 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독립 섹션으로 2006년부터 실험영화와 비디오 아트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은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작품들을 영화관, 전시실 등 다양한 물리적 공간에서 경험하며 ‘확장된’ 의미의 영화 예술을 접할 기회를 얻는다. 무엇보다도 영화제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작품들이 다 모여있기 때문에 매해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 중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어느 때보다도 영화관의 존재가 절실하게 그리운 시절이지만, 김민정 감독의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는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방식이 가장 다양한 섹션에서 선정한 작품이니 만큼 전통적인 영화관을 벗어난 공간에서 상영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직사각형 화면 밖에서도 관객들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전시공간이 아닌 영화관 상영 프로그램으로 계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