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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함께 해야 할 때, 그러나 너무 가깝지는 않게

로사나 파울리노의 일러스트
로사나 파울리노 | 일러스트 (편집): © Nik Neves

브라질은 바이러스를 제대로 앓았다. 정부는 팬데믹을 부정했고 가짜뉴스도 난무했다. 또한 볼 키스나 포옹이 죽음을 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자신들의 사교적 관습을 재고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현실 속에서 예술가 로사나 파울리노(Rosana Paulino)가 질문을 던진다. 가까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또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전염병 확산 이후, 이에 대한 대처 방안과 생존을 위한 변화는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였다. 브라질 인구 중 일부는 동시에 여러 전선에서 투쟁해야 했다. 팬데믹에 맞서, 대량 학살을 자초한 정부의 태만과 혼란에 맞서, 질병과 관련된 가짜뉴스 및 일관성 없는 언론 보도 그리고 의료 서비스 부족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볼 키스나 포옹이 곧 죽음과 같은 의미가 될 때, 우리의 일상적 사교 방식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새로운 조건들 아래에서 가깝다는 것과 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까움과 거리감의 실질적 의의는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이미 배웠거나 또는 앞으로 배워야만 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 첫 번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인정하지는 않았던 사실이다. 흔히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은 우선 더 적게 가진 가난한 사람들을 감염시킨 다음 질병과 관계된 모든 규칙을 무시했다.

공동체적 해결책

반면에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 만든 조직은 놀라운 사례들을 선보였다. 대도시에 위치한 열 개의 거주지가 모여 만든 ‘파벨라(빈민가)의 G10’처럼, 기존에 있던 조직들에서 나온 공동체적 해결책은 그 영향력과 능력을 입증하였다. ‘마리엘레 프랑코(Marielle Franco)’ 파벨라 사전에 의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빈민가인 헬리오폴리스(Heliópolis)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식별하고 격리하며 치료하는 데 있어서 상파울루 시 또는 상파울루 주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파벨라의 사람들은 극도의 물리적 근접성이라는 생존적 도전에 직면해 살아가고 있다. 이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도시 지역의 땅값 상승과 비싼 임대료에 대한 대안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로코모티바(Locomotiva)와 데이터 파벨라(Data Favela)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벨라의 열 가구 중 세 가구는 한 방에 세 명 이상 거주한다고 한다. 이렇게 높은 인구 밀도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 화약고로 간주되는 이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확산하면 전례 없는 수준의 사망률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파벨라가 이룬 성공은 국가가 지원하는 공동의 행동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긴급 상황에서 꾸려진 이 같은 조직들이 차후에도 지속 가능한 내부 개편에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들은 브라질의 통치자들에게 전례 없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조직과 지도자의 출현, 그리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술과 불평등

질병에 접근하는 문제나 사람들 간의 교류에 있어 비록 기술이 요긴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교육 기회의 파괴 및 불평등의 심화를 야기한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격리의 시간을 자기 계발의 시간으로 사용한다는 건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사치일 뿐만 아니라(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일을 해야 하므로), 인터넷이 잘되는 좋은 컴퓨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질의 현실은, 대다수의 사람이 이와 같은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양도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어떻게’ 질 높은 콘텐츠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들의 인터넷 사용 반경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그리고 최근에는 틱톡 등 아주 유명한 플랫폼에 한정되어 있다. 부인하지 않는 태도와 지식은 바이러스 문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잘못된 정보나 유용하지 않은 정보는 개인이 가진 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스템을 제한한다.

온라인 이벤트의 폭증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브라질 또한 온라인 이벤트의 물결을 피하지 못했다. 가까움이라는 개념은 영상 전송의 확산과 함께 새로운 외연을 얻게 되었다. 그중에는 아주 시의적절한 콘텐츠들도 있었는데, 팬데믹 초기의 불안감이 다양한 주체들을 한곳에 모았고, 이는 아마 우리의 팬데믹 망명 상태가 없었다면 절대 생기지 않았을 현상들이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인터넷에 남아 있는 것들을 미래에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한다. 무엇이 남을 것이고, 무엇이 이 순간을 증언할 것인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우리는 이 모든 만남을 어떻게 분류하고 연구하며 전달할 것인가? 우리는 온라인 형식으로 생성된 이 풍부한 지식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온라인 이벤트는 그 고유의 접근성을 이용해 대학과 개인 간, 주변 문화와 지배 문화 간의 거리를 단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일부 주체들이 중심 권력의 봉쇄를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길을 찾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로써 문화적 환경을 풍요롭게 하는 다른 시각들을 전달할 수 있게 하였다. 좋은 사례 중 하나로 ‘FLUP 디지털 2020(FLUP DIGITAL 2020)’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기존에 있던 ‘주변부의 문학 축제 (FLUP)’을 온라인 이벤트로 전환한 행사이다. 무엇보다 흑인 지식인 릴리아 곤잘레스(Lélia Gonzalez)를 기념한 행사들은 피크 타임에 7천 명 이상의 접속자수를 기록했고, 이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에 지금껏 브라질 문화에 없었던 표현의 통로를 제공했다. 여기에 더하여 인터넷을 영리하게 사용한 블랙 페미니즘이 브라질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세력으로 발전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주변부의 흑인과 선주민 그리고 여성들이 만든 문화적 산물이 이와 같은 길을 따라 영구적인 세력이 될 것인지 여부는 향후 몇 년 동안 예의 주시해야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팬데믹 상황은 낙관주의자들이 상상했던 연대와 사회적 변화의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지금까지 브라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동체적이고 개인적인 정치 참여의 시각을 제시하는 역할은 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연대의 증진을, 다른 누군가는 쇠퇴를 주장하는 등 비록 상반된 해석이 있다 할지라도, 나의 시각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 적용된 전략들이 앞으로도 사회에 지속 가능한 영향을 가질 것이라 본다. 특히 개인들이 자신들의 활동이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구현해내는 자극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정치적 참여라고 부르는 행위를 막대하게 증가시키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