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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로나 이후 시대의 삶의 전망

'주광순'의 일러스트
주광순 교수 | 일러스트(부분): © Nik Neves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역할이 주어질 것인가? 주광순 교수는 자유와 권리들의 의미에 대해서 전하고 또한 우리가 왜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해서 새롭게 사고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전 시대의 삶은 발전하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또한 국내적으로도 서로서로 연결되어야 했다. 이것은 기술의 발달과 소통의 증대 덕택이다. 특히 한국은 수출주도 경제였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코로나 발생 초기에 정부는 중국 우한에서 감염병이 발생했다는 점을 알았으나 중국 국경을 폐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밀접, 밀집, 밀폐 속에서 확산되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 시대에서는 이러한 가까움이라는 삶의 패턴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작년 초에 일어났던 신천지 집단 때문에 생겨난 엄청난 코로나의 확산은 이것을 확인해 주었다. 신천지 교도 중 하나가 증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 대구에서 예배에 여러 번 참석했으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또한 그 지도자는 보건당국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고 코로나로 인한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므로 안전수칙들과 방역은 필수가 되었으며 ‘언택트’가, 그래서 비대면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예컨대 생활방역,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비대면수업, 배달서비스의 활성화 등은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의 사회는 거리두기 사회이다.

자연의 역습

코로나는 많은 사람의 삶을 위협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오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언제쯤 개선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은 이제까지 방역을 잘 해왔었으나 올 여름부터 환자의 수가 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백신을 급속히 개발했으나 변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겨나서 그 효과를 위협하고 있다. 울리히 벡이 그의 저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에서 경고했다. 즉 산업사회들은 자연의 위기, 건강의 위기, 먹거리의 위기와 같은 잠재적 위험들을 체계적으로 생산해서 이것들이 실현된다면 어떠한 예외도 없는 지구적인 문젯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들은 이러한 잠재적 위험들을 이미 예견했으나 그것들을 무시했고 필수적인 조처들을 취하지 않았다. 울리히 벡은 우리 사회와 같이 위험이 실제로 실현된 사회를 ‘위험 사회(risk society)’라고 불렀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이룩하는 경제적 성장의 결과가 기후변화나 코로나의 확산이다. 근대화는 인간을 자연과 밀착시켰으나, 이 밀착은 자연과 친밀해지기가 아니라 지구 구석구석까지의 개발이나 자연자원의 고갈과 같은 자연의 착취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을 멀리하기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염병을 자연의 역습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이것은 멀고 가까움의 역설이다. 경제적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위험의 감수의 결과는 우리에게 우리의 인식능력을 벗어나 있으며 체계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재앙을 낳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위험하지의 평가를 과학적 전문가들에 의존하는데, 그들은 전체로서 사태를 충분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위험은 과장되거나 축소되기 쉽다. 그리고 그들의 위험 평가는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방향설정과 같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구성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지식과 그 지식이 경고하는 위험은 정치적 편향성을 띠게 마련이다.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위험은 저평가되고 성장이 고평가되어왔다. 이러한 모험의 결과들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지위를 뛰어넘고 물리적 거리를 무시하지만 이 모험이 준비한 해독은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약자들의 취약화

그 위험이 가져온 재앙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회적, 경제적 지위나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그로 인해 입게 되는 피해는 대단히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이동과 통신 기술의 발달을 통해서 인간들이 육체적으로는 가까워졌으나 이것이 진정한 소통도 아니고 진정한 가까움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제 1세계 국가들이 경제적 성장의 열매를 독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장이 치러야 했던 위험의 감수는 위험의 실현 시에 약자의 심각한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 몇몇 국가는 백신을 일차나 이차로 접종할 뿐만 아니라 부스터샷도 접종하는데 반해서 다른, 제 3세계의 대다수의 국가들은 일차 접종용 백신조차 구하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만 보더라도 감염병으로 인한 소비위축은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 등은 일자리 자체를 잃어버렸다. 또한 고용위축과 소득위축은 주로 저소득가구에 몰려있다. 더 나아가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성에 더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서비스 일자리나 비정규직에 여성의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휴교 등으로 인한 육아부담은 여성이 주로 짊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외국인 노동자, 소상공인 등은 더 가혹하게 코로나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함께 작업하며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잠을 잔다. 그래서 그들은 집단감염에 쉽게 노출된다. 근대화는 세계를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하나로 묶어놓았지만 그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은 국가들과 개인들을 갈라놓았다.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의 멀고 가까움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권리로서의 자유

코로나는 경제적인 근대화과정들과 위험사회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잠재적 위험은 무시하고 단지 경제성장만을 촉진시키는 정책에 수정이 가해지게 만든다. 그 이외에도 코로나는 특히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반성을 발달시킨다고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이것은 개인과 공동체 간의 관계 문제이다. 근대는 자유의 확장의 역사이었다. 한국도 개발독재와 그 뒤의 보수정권 하에서 정부의 억압적 기능을 주로 목도해왔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강조해 온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독재정권들에 대한 투쟁과 대통령의 파면과 같이 한국 사회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해왔다. 여기서 자유는 권리이고 권리는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거리두기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는 공동체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한국은 소위 K-방역을 통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시민들의 일상적 안정성과 활동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코로나 초기에 한국 정부는 감염자 대상 철저한 추적 관리, 투명한 정보공개, 높은 수준의 진단역량, 공공의료체계, 긴급재난지원금을 시민들에게 제공하였다.

사실 근대의 개인의 권리 강조의 사고는 너무 일면적이다. 주목하지 않아서 그렇지 공동체의 역할은 개인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언제나 필수적이었다. 우리에게 코로나 이후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과 잠재적 위험 그리고 일반시민의 역할과 권리의 변증법이다. K-방역에서 단지 정부의 역할만이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고, 시민들의 역할도 그러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실천하였고 마스크를 착용하였으며 정부의 지침을 따랐다.

이것들 둘은 서로 모순적이지만 하나만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며 경제적인 성장은 풍요와 안락을 가져오지만 오존가스 배출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그리고 핵폐기물과 화학물질의 과도 사용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을 증대시킨다.

인권과 같은 개인의 권리의 강조는 정치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권리들의 과도한 강조는 사회적으로 분열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리들에 대해서 말할 때면, 우선 그들 각자의 권리들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권리들이나 전체 공동체에 대해서는 쉽게 무감각해진다. 이제 경제적 발달과 잠재적 위험 그리고 개인의 권리들과 사회와 개인의 역할들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질문할 때이다. 코로나 재앙을 통해서 인간들은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자연과 인간의 함께 삶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