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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새로운 창조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애도에 관한 이야기는 적다”

프로젝트 "Como costurar às margens?", 상주앙델헤이, 브라질 2019년. 예술가 하나 브레너(Hana Brener)와 아나 파이 비데이라(Ana Pi Videira)가 공동 개발한 81 미터 길이의 설치물.
설치물, 상주앙델헤이, 브라질 2019년. | 사진(부분): © Marlon de Paula

팬데믹 기간에 치러진 기독교식 행사와는 다르게, 일부 아프리카계 브라질 종교의 특정 추모 의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될 수 없었다. 죽음에 관한 선주민 공동체의 전통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전반적으로 브라질에서는, 애도에 관한 방식보다는 사망자 수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

2021년 9월 초까지 브라질은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60만 명의 생명을 잃었다. 위생 조치 때문에 반쪽짜리 작별 인사를 하고, 초상집 밤샘 같은 의식이 빠진 상태에서, 죽음은 더욱더 외로워졌다. 상파울루 대학 심리학 연구소의 심리학자이자 죽음에 관한 연구소의 설립자인 마리아 줄리아 코바치(Maria Júlia Kovács)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은 평소에도 결코 쉽지 않았던 순간들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코바치에 따르면, 애도란 심각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와 관계가 있던 한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익숙한 세계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큰 고통을 유발하는 다른 종류의 상실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질병이나 실직, 또는 본국을 떠나야만 하는 강요된 상황 같은 것 말입니다”라며 이 전문가는 설명한다. “고립으로 인해 일상적인 것들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의 상실 때문에, 우리는 팬데믹 기간 동안 일련의 슬픈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적 시나리오에서 사람들은 꼭 질병에 의해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더라도 집단적 슬픔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코바치는 말한다. “이것은 코로나19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을 잃었거나 직접 투병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향한 애도이자 연대감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지금 이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이 셀 수 없는 비극의 상황을 지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주변인들의 고통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라고 이 심리학자는 말한다.

사회적 결속

인류학자 데니스 피멘타(Denise Pimenta)에 의하면, 브라질은 코로나19 팬데믹 중 이러한 집단적 슬픔을 경험하지 못했다. “돌봄보다는 경제를 최우선으로 여긴 브라질 정부가 내놓은 팬데믹 부정론 때문입니다. 집단적 슬픔이란 모든 사람의 삶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공중 보건 캠페인을 통해 강하게 발현되고, 결국에는 개개인의 죽음이 사회를 통해 애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브라질은 다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뿐, 무수한 상실에 대한 슬픔이나 충격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라고 피멘타는 주장한다.

이 인류학자는 2019년 상파울루 대학에서 ‘위험한 돌봄 : 시에라리온에서 애착과 위험의 연결망 — 생존한 여성과 사망한 여성의 관점에서 본 에볼라 전염병(O cuidado perigoso: tramas de afeto e risco na Serra Leoa (a epidemia de Ebola contada pelas mulheres, vivas e mortas))’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아프리카에 창궐했던 에볼라의 종식 이후, 피멘타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9개월간 시에라리온에 있었다. “지역 정부가 집단적 슬픔에 관한 서사를 잘 확립하였기에 시에라리온 국민들은 수많은 에볼라 사망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당시 애도를 통한 대규모 사회적 결속이 생겨났습니다”라고 피멘타는 설명한다.

또한, 피멘타는 애도가 가족 구성원 및 친구들과 함께 상실의 고통을 나누는 집단적 현상이라 지적한다. “다양한 의식이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는 고인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여성들이 울거나 소리를 지릅니다. 다른 공동체에서는 끈을 자르거나 관 속에 무언가를 넣습니다. 이는 고인이 떠나고 멀어지며, 관계는 끊어진 뒤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하나의 형식입니다”라고 피멘타는 말한다. “하지만 에피데믹이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이 같은 의식은 중단됩니다.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고, 함께 애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겪어내는 것과 우리가 느끼는 것을 확인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이 의식적 행위들이 중단됨으로 인해 사람들은 깊은 충격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생명 정치적 바이러스

주이스지포라(Juiz de Fora) 국립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인류학자 에머슨 세나(Emerson Sena)는 애도의 형식이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브라질의 특이성으로 꼽았다. “여전히 민간신앙적인 대중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브라질 시골의 장례 의식은 도시 공간에서의 장례식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코로나19 이전, 시골 지역에서는 고인을 가정집에 모셨는데, 이를 위해 갖춰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규율도 따로 있었습니다. 친척들은 관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 주방까지 원형을 이루고, 손님들은 고인 생전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당연히 코로나19 ‘신데믹(syndemic)’에 의해 중단되었습니다”라고 세나는 말한다.

세나는 자신의 강의와 연구에서 ‘팬데믹’이라는 용어 대신 ‘신데믹’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신데믹’이라는 개념은 2019년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의사인 메릴 싱어(Merrill Singer)가 만들었다. 싱어는 1990년대부터 생물학적이고 사회문화적인 결정인자들로부터 질병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흑사병(1346-1352)과 스페인 독감(1918-1920) 때처럼, 코로나19 상황도 문화적이고 일상적인 측면과 아울러 이상적 관점에 있어서도 깊이 있는 변화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 정치적 바이러스입니다”라고 세나는 강조한다.

신성한 것과 가상적인 것 사이

웨스트 파라나(West-Paraná) 주립대학의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안드레이아 빈센테(Andréia Vicente)에 따르면, 과거에도 전염병의 대유행 때문에 죽음의 의식이 변화했던 적이 있었다. “묘지는 교회 밖으로 옮겨졌고 제도화되었으며 벽도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폐쇄된 관에 고인을 넣고 정확히 지정된 지층에 묻는 방식으로 장례식이 변했습니다”라며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 빈센테는 설명한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초상집에서 밤을 새우거나 매장을 하는 등, 죽음을 대하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 의식들을 코로나 관련 규제에 전부 맞춰서 하기에는 불가능했고, 그러한 사실에 사람들은 불쾌해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같은 순간을 의식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식들을 찾기도 했습니다”라고 빈센테는 지적한다. “미디어 장비들은 이미 교회와 사원에도 생겼으며, ‘신데믹’과 함께 이들의 사용은 더 증가했습니다’라며 세나는 주장한다.

빈센테에 의하면, 요즘에는 외곽 지역이나 심지어 오지에 있는 장례식장도 시청각 기구 및 더 나은 인터넷망을 위해 투자한다. “이러한 혁신은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 봅니다. 가령 지리적 거리 때문에 장례식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도 멀리서나마 의식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라며 이 학자는 말한다.

선주민 의식

하지만 가상 세계가 죽음과 관련한 모든 의식(일부 선주민의 의식 등)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야노마미(Yanomami) 족의 매장 의식은 지상의 삶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주기 위하여 고인의 재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코로나19의 희생자가 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뒤 도시에 있는 공공 묘지에 매장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불가능한 의식입니다”라고 빈센테는 말한다.

또한 세나가 강조하는 것처럼, 신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 간에는 다른 장애물들이 있다. “어떤 종교의 특정 의식은 너무 사적이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만 공개되기 때문에, 대게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라고 세나는 지적한다. “종교 칸돔블레(Candomblé)의 장례 의식인 악세세(Axexê)가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경계는 엄격히 지켜져야 합니다.”

죽음과 애도에 관한 우리의 입장이 변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애도는 위기에 처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빈센테는 말한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는 것은 애도의 제도적 메커니즘의 변화입니다. 검은 옷은 입거나 7일 미사를 하는 등 사람이 어떻게 슬픔을 경험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교회에 의해 결정되고 확립된 일련의 아주 엄격한 장례 규범들이 중세 시대부터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것들이 행해지는 방법적 측면에서 융통성이 있는 편이지만, 결국 애도하는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라고 빈센테는 결론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