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내용 바로가기(Alt 1)서브 내비게이션 바로가기(Alt 3)메인 내비게이션 바로가기(Alt 2)

박본 작가
뒤집힌 세상

박본
사진: 니클라스 보그트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박본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세상은 황당하리만치 기발한 방식으로 거꾸로 뒤집힌다. 2017년 베를린연극제에서 희곡부문을 수상한 ‘으르렁대는 은하수’의 경우, 김정은이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캐릭터들이 따뜻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박본은 현재 해당 작품을 초연무대에 올리기 위해 빌레펠트 극장에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금 막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너바나의 ‘리튬(Lithium)’ 공연을 마친 북한의 지도자. 그 “정신 나간 김정은”이 관중들을 향해 그간 자신이 행해온 시도들이 모두 다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선포한다. 최근 김정은은 “남북한을 통일하고 싶다. 괜찮은 생각 아닌가?”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당연히 괜찮은 아이디어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상황이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신 나간 김정은”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박본(Bonn Park) 작가의 작품 ‘으르렁대는 은하수’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박본은 198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청년 극작가 박본이 “정신 차린 도널드 트럼프”, “뚱뚱한 하이디 클룸”과 더불어 굳이 북한의 폭군을 무대에 세운 것은 자신의 뿌리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 박본의 작품은 원래부터 늘 정해진 경계 없이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실험이었다. 그 속에서 작가는 황당한 유토피아와 기괴한 디스토피아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오해의 골을 첨예하게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작가 자신의 고유한 유머도 잊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근거 없는 조롱 모드로 빠져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박본은 현재 SNS 상에서 마구 유포되고 있는 김정은, 트럼프 혹은 독일 극우 정치가들을 조롱하는 동영상들이 “점점 더 심각한 상호불신 상태로 빠져들게 만드는 계기”일 뿐이라 말한다. 박본이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인식의 도구로 활용하는 장치는 양화(positive print)가 아닌 음화(negative print)이다. 그 음화 속 세계는 양화 속 세계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지만, 세상을 또렷이 인식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박본의 배움터는 베를린 민중극장

출생 후 4년 간 부산의 할머니 댁에서 살았던 박본은 어릴 때부터 연극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독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한 뒤 한때 서울에서 한 연극그룹과 독일 연극들을 공연한 어머니 덕분이었다. 박본의 어머니는 지금은 한국의 한 전기 관련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박본을 본격적인 연극광으로 만든 발판은 베를린 민중극장이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공연되는 연극들을 관람하기만 했다. 이후 민중극장 자체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클럽 P14에 가입하면서 때로는 배우로, 때로는 연출로 활동했다. ‘심바(SIMBA)’도 그 당시 탄생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주인공 심바는 덴마크의 왕자로,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적절히 뒤섞인 ‘하이브리드 캐릭터’이다. 심바의 줄거리 역시 그 두 작품들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박본은 프랑크 카스토르프(Frank Castorf)나 베르너 슈뢰터(Werner Schroeter) 같은 연출가들 밑에서 수업을 받은 적이 있고, 르네 폴레쉬(René Pollesch)의 ‘넌 내 프라이팬을 망쳤어, 이 테러 계란프라이야!(Du hast mir die Pfanne versaut, du Spiegelei des Terrors!)’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2010년 박본은 베를린예술대학(UdK) 극작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다지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 하면 떠오르는 엄격함이나 틀에 박힌 규율과는 대척되는 지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2학년이 되던 해, 그의 첫 작품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Super Mario in 2D)’이 탄생했다.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해당 익살극의 구성은 원작 게임을 본뜬 것이었다. 해당 작품으로 박본은 같은 해인 2011년 하이델베르크연극제 희곡부문을 수상했다. 아쉽게도 해당 작품은 아직 한 번도 공연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본은 공연계의 생리와 기대치를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비애에 빠진 거북이와 때 이른 죽음

이후 발표된 작품들은 다행히 서랍 속에만 처박혀 있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풍부하고도 감성적인 연출력이 바탕이 된 박본의 탄탄한 실력이 점점 더 진가를 발휘했다. ‘토막극’이라는 장르로 분류되고 있는 (2015년에 본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슬픔과 멜랑콜리’(Traurigkeit & Melancholie oder der aller aller einsamste George aller Zeiten)에서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거북이가 “난 프랑스혁명 때 투쟁했고, 트로이아 목마도 만들었어. 난 이 세상 모든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괴테, 아리스토텔레스, 티라노사우루스와 편지도 교환했어….”라며 독백으로 세계사를 읊는다. 그런가 하면 (2015년에 테아터 안 데어 파크아우에에서 초연된) ‘군내 나는 관용’(Toleranzig)은 ‘무한 뚝심’을 지닌 부모들 앞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저항이나 삐뚤어짐도 소용없음을 논한다. 그 부모들은 심지어 자녀가 자민당(FDP)에 가입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플랑쿠후로토. 한스라는 이름의 중국인’(Flankufuroto. Ein Chinese namens Hans, 2015년, 샤우슈필 프랑크푸르트 극장에서 초연)에서는 중국인들이 세계를 장악하고 서구인들은 땅속 하수구에서 숨어 살아간다. 이 희곡에서 박본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들을 통렬하고도 극단적으로 풍자한다.

어차피 잘난 체할 거 기왕이면 공격적으로!

박본은 작품에 늘 자기 자신을 등장시키곤 한다. 베를린 ‘브로트파브릭’ 소극장에서 하룻밤 사이에 완성된 텍스트를 통해 작가를 조명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이 있다. ‘우리는 박본의 죽음을 애도한다(Wir trauern um Bonn Park)’는 그때 탄생된 작품이다. 거기에서 박본은 자신의 죽음을 소재로 ‘한 바탕 놀이’를 벌인다(“2012년, 너무도 이른 나이에 이미 그는 창밖으로 떨어졌다. 그의 몸 안에는 깨어진 달 조각들만 남아 있었다”). 현재 빌레펠트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 중인 ‘으르렁대는 은하수’(첫 공연일은 2017년 9월 15일)에도 “미래에서 온 분노한 박본, 11세 소녀의 몸에 갇힌 박본”이라는 캐릭터, 즉 작가 자신의 분신이 등장한다. 해당 캐릭터는 어느 비통한 시대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묘사한다(사실 내용상으로는 그다지 미래적이지는 않다). “만약 자기 자신과 마주치거나 통화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우리는 ‘어이, 잘 지내지?’라고 묻지 않는다. ‘어이, 흠, 모든 게 엉망이군’이라 말할 뿐이다.”
 
이러한 풍자적 자아도취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박본은 연극계에선 모두가 허영심에 들떠 있고, 자신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왕 잘난 체 할 거면 차라리 대놓고 공격적으로 하는 편이 본질적 의도를 표현하기에 더 낫다고도 덧붙인다. 하지만 마술의 비유를 들며 자세한 설명은 회피한다. “의도가 무엇인지 설명해버리면 마술의 재미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박본에게서는 현재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증오 문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박본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개척자라 부를 수 있을까? 박본은 원론적인 반문으로 이 질문을 반박한다. ‘개척자, 비전가, 이상주의자, 선인(善人)’ 같은 긍정적 독일어 단어들이 경멸적 뉘앙스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의문스러우며, “그 중 마지막 단어인 ‘선인’의 경우,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일까, ‘착하다’일까 ‘사람’일까?”가 궁금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