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변신
가상현실에서 만나는 카프카

카프카와 가상현실 | 사진: 괴테 인스티투트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침대 안의 자신이 끔찍한 벌레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다. 괴테 인스티투트 프라하의 가상현실 체험전 'VR 변신'에서는 원작에 충실하게 재구성된 그레고르 잠자의 방에서 거대한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우선 신발을 벗으세요.” 프로그래머 에두아르트 피셔(Eduard Fischer)가 방문객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앞코 부분에 센서가 장착된 특이하고도 편안한 실내화로 갈아 신기가 무섭게 헤드셋과 손동작 인식 컨트롤러, VR 안경 등 더 많은 장비들로 무장을 한다. 모든 장비를 장착하고 케이블에 연결된 상태로 암흑 속에서 몇 초를 기다리면 드디어 화면이 나온다. 불빛 하나가 깜박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1915년으로 가 있다. 장소는 프라하 구시가지에 위치한 그레고르 잠자의 방. 그리고 내 몸은 방금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레고르 잠자의 방 | 사진: 괴테 인스티투트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간 종이책
카프카의 ‘변신(Die Verwandlung)’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어느 영업사원의 감정을 표현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어쩌다가 벌레로 변했는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끝내 의문으로 남는다. 이야기의 초점은 이보다 벌레로 탈바꿈한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에 맞춰져 있다.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회사의 상사는 뭐라고 말할까?‘ 표현주의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카프카의 이 작품은 발표된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수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괴테 인스티투트 프라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은 그레고르 잠자를 가상현실의 세계 속에서 다시 부활시켰다.신생 스타트업 팀과 혐력하여 가상현실 체험 프로젝트 ‘VR변신(VRwandlung)’을 개발한 총감독 미카 존슨(Mika Johnson)은 이렇게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즉 종이로 된 책을 가상현실로 옮겨놓은 것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주인공은 더 이상 그레고르 잠자가 아니다. 당신이 바로 주인공이다.”
벌레는 무엇을 읽을까? | 사진: 괴테 인스티투트
그레고르 잠자가 되어 보다
직접 체험을 해보면 감독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상현실에서는 내가 곧 그레고르 잠자다. 나는 혼란에 빠진 더럽고 징그러운 벌레가 되어 있다. 조금씩 고조되는 흥분감과 더불어 약간의 공포심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나는 달라진 내 몸을 차근차근 관찰한다. 길고, 가느다랗고, 잔털로 뒤덮여 있고, 무언가가 많이 달려 있다. 나의 배는 갑각으로 덮여 있고, 기다란 더듬이도 시야에 들어온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끔찍한 내 모습에 흠칫 놀란다. 문 밖에서는 아버지가 “얘야, 그레고르야, 제발 문 좀 열라니까!”라고 외친다.소프트웨어사 ‘아흐퉁4k(Achtung4k)’의 보즈테크 얀코프스키(Vojtěch Jankovský)는 설명한다. “'VR변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그레고르 잠자의 방이다. 이 프로젝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방이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을 완전히 분해하듯 하나하나 뜯어 보았다. 카프카가 쓴 글 한 마디 한 마디를 충실하게 분석하여 이 방을 세세하게 재구성해내었다.” 책들이 세워져 있는 서랍식 책상, 흰색의 철제 침대, 꽃무늬 벽지, 여행가방, 취라우(Zürau) 마을에서 제작된 문진 등 모든 것이 소설에서와 똑같다. “작업을 하다가 막힐 때가 있으면 프란츠카프카협회에 자문을 구했다. 그레고르의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은 카프카가 당시에 실제로 읽었던 책들이다."라고 얀코프스키는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