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
여성 영화란 무엇인가?

여성영화, 다양한 영화의 한 장르인가, 정치적 표현인가? 영화에서 남녀평등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여성영화라는 이름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가진 모순된 이야기가 숨어있다.

영화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사회학자 에밀리 알텐로(Emilie Altenloh)는 이미 1914년에 새로 등장한 이 대중적 오락 수단이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아스타 닐센(Asta Nielsen) 같은 스타배우들은 전통적 여성상에 반기를 들고 모험심 강하고 반항적인 여성을 찬미했다.

슬픈 영화

눈물 나는 영화라는 의미의 'Weepies'는 할리우드 전성기 시절부터 1950년대까지 여성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여성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황홀한 모습의 스타와 세련된 팜므파탈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1930년대부터 영리하고 재치 있는 커리어우먼이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부장적 가치관에 따른 순결한 처녀나 헌신적 어머니, 창녀 등의 여성상이 지배적이었다. 일부 여배우들이 더 나은 배역을 확보하기 위해 제작사에 투자하기도 했지만, 막강한 영화산업의 파워를 가진 것은 여전히 남성이었다. 그 속에서 여성 영화감독들은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16mm 카메라를 사용해 초현실주의적 영화언어를 창조해낸 마야 데렌(Maya Deren) 같은 예술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운동은 1968년을 기점으로 비로소 세계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때부터 남성적 지배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중요한 사회적 논쟁의 하나가 되었다. 여성운동가들은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자결권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여성에게 불리한 인생설계나 역할모델, 직업환경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들이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변화의 시작

세계적으로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독일 영화계에서도 여성 감독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새로 생긴 영화아카데미로 여성들이 몰려들고, 영화계에서 자신들의 몫을 당당히 요구하며 주목을 끄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헬케 잔더(Helke Sander), 헬마 잔더스 브람스(Helma Sanders-Brahms), 울리케 오팅거(Ulrike Ottinger), 마가레테 폰 트로타(Margarethe von Trotta), 엘피 미케쉬(Elfi Mikesch), 제닌 메어아펠(Jeanine Meerapfel)등은 국제 영화제나 실험영화관, 그리고 TV등을 통해 작품을 알린 초기 멤버들이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스타일로, 남성적 시각이 아닌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자유로이 표현했다. 여성 소유의 제작사와 배급사들도 자리를 잡았다. 특히 예술적 실험작품들을 상영한 소규모의 실험영화관들은 여성 감독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1974년 헬케 잔더(Helke Sander)가 창간한 잡지 'Frauen und Film(여성과 영화)' 역시 중요한 가교역할을 했다. 헬케 잔더와 마가레테 폰 트로타(Margarethe von Trotta)의 현실적이고 사회비판적인 묘사방식, 엘피 미케쉬(Elfi Mikesch)와 유타 브뤼크너(Jutta Brückner)의 에세이 방식, 또 울리케 오팅거(Ulrike Ottinger)의 몽환적 영상 세계와 헬가 라이데마이스터(Helga Reidemeister)의 다큐멘터리 형식 등은 여성 영화를 한 가지로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영화를 선보였다.

오늘날 영화학교에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여자 카메라감독이라는 직업도 자리를 잡았고, 영화나 TV로 진출하는 여자 감독도 늘었다. 하지만 얼핏 동등한 출발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여성 영화인들은 저예산이나 다큐멘터리 영화에 머물 뿐, 일관되게 커리어를 쌓기가 쉽지 않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데 따른 어려움에 부딪혀 결국은 불안정한 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성들의 경우도 영화아카데미가 많이 생겨나면서, 지속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이에 합당한 보수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의 여성 영화인들

오늘날 여성 영화인들은 문화 전반의 위기를 맞아, 더 이상 영화를 여성평등에 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도구로 보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만 도리스 되리(Doris Dörrie), 카롤리네 링크(Caroline Link), 헤르미네 훈트게부르트(Hermine Huntgeburth)와 같은 기성 감독들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여성영화가 지향했던 인간 상호관계라는 맥락에서 영화를 다루고 있다. 또 마렌 아데(Maren Ade), 발레스카 그리스바흐(Valeska Grisebach), 산드라 네텔벡(Sandra Nettelbeck), 코니 발터(Conny Walther )등 여성이란 점을 단점이 아닌 개인적 기회로 받아들이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있다.

1968이후의 세대들은 기본적인 성평등을 보장받은 세대이다. 그들에게 여성영화제 또는 여성영화라는 꼬리표는 오히려 낙인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영화제 상영작 선정과 배급, 홍보 과정에서 여성들의 영화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바램이 반영된다. 독일 여성영화에서도 전형적인 여성영화의 주인공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 자유화의 영향 아래, 영화계 역시 인재양성 체계나 시장화 구조 등에 있어 총체적인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감독들 역시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화가 초래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여성적 시각과 문제의식을 염두에 둔 새로운 시도는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칸 영화제가 여성 감독들을 배제하고 차별한 데 대한 항의시위가 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