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의 '모퉁이 술집'
헤이, 쾰른, 넌 느낌이 있어!

"Hey Kölle – Du bes e Jeföhl!" 쾰른 출신의 뮤직밴드 회너의 노래 제목이다. 표준 독일어로 번역하면 "헤이, 쾰른, 넌 느낌이 있어!"가 되겠다. 그런데 쾰른의 느낌, 쾰른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걸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 시내 곳곳의 맥주집을 둘러보는 게 아닐까 싶다.

그곳에 가 보니 많은 이들이 쾰른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쾰쉬(Kölsch)'를 주문하고 있다. 쾰른 사람들은 쾰쉬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 부르기도 한다. '쾰쉬'가 쾰른의 맥주와 쾰른 사투리 둘 다를 의미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아래의 사진 갤러리를 통해 쾰른 술집들의 내부 모습과 손님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쾰른 사람들은 '수다를 떨다'라고 말할 때 'plaudern' 대신 'klönen'이라 말한다.

  •  이른 오후의 브로트뮐러(Brodmühler): 네 여인이 오늘의 첫 쾰쉬를 즐기고 있다. 중간에 앉아 있는 이는 모니카로, 인근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이른 오후의 브로트뮐러(Brodmühler): 네 여인이 오늘의 첫 쾰쉬를 즐기고 있다. 중간에 앉아 있는 이는 모니카로, 인근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다.
  • 3년 전 링케비츠(Linkewitz)의 주인장이 된 카롤리네 쾨커리츠. 그녀는 링케비츠가 쾰른 시 ‘닐(Niehl)’ 구역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이라 말한다. 토요일이면 보통 600잔의 쾰쉬가 카운터를 지나 손님들에게 전달된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3년 전 링케비츠(Linkewitz)의 주인장이 된 카롤리네 쾨커리츠. 그녀는 링케비츠가 쾰른 시 ‘닐(Niehl)’ 구역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이라 말한다. 토요일이면 보통 600잔의 쾰쉬가 카운터를 지나 손님들에게 전달된다.
  • 링케비츠의 단골손님 토미(중간)는 이곳에서 다시 오씨(왼쪽)를 볼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오씨는 긴 투병 생활을 딛고 일어나 옛 직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링케비츠의 단골손님 토미(중간)는 이곳에서 다시 오씨(왼쪽)를 볼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오씨는 긴 투병 생활을 딛고 일어나 옛 직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 루카스는 링케비츠의 단골손님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아직 대학생 신분인 루카스는 쾰른의 카니발 밴드 CABB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다. 'CABB'는 매우 풍자적인 밴드 이름으로, 'Club für Anonyme und Bekennende Bekloppte(익명의, 그리고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미친 이들을 위한 클럽)'의 약어이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루카스는 링케비츠의 단골손님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아직 대학생 신분인 루카스는 쾰른의 카니발 밴드 CABB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다. 'CABB'는 매우 풍자적인 밴드 이름으로, 'Club für Anonyme und Bekennende Bekloppte(익명의, 그리고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미친 이들을 위한 클럽)'의 약어이다.
  • '골데네 카페스(Goldene Kappes)'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앙겔리카와 페터. '골데네 카페스'는 표준 독일어로는 '황금빛 양배추(Goldener Kohl)'을 뜻한다. 두 사람은 1975년 처음 만났다. 커플이 된 건 13년 전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재회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당시 페터는 앙겔리카에게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마"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골데네 카페스(Goldene Kappes)'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앙겔리카와 페터. '골데네 카페스'는 표준 독일어로는 '황금빛 양배추(Goldener Kohl)'을 뜻한다. 두 사람은 1975년 처음 만났다. 커플이 된 건 13년 전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재회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당시 페터는 앙겔리카에게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마"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 '바이 오마 클라인만(Bei Oma Kleinmann)'이라는 술집 이름은 이전 여주인인 파울라 클라인만의 이름을 딴 것이다. 파울라 클라인만은 1949년 남편 빌리와 함께 이 길모퉁이에 술집을 열었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파울라는 8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여전히 커틀릿을 만들고 있었다. 커틀릿은 '췰피허 거리'에 위치한 바이 오마 클라인만에서 지금도 매우 유명한 메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바이 오마 클라인만(Bei Oma Kleinmann)'이라는 술집 이름은 이전 여주인인 파울라 클라인만의 이름을 딴 것이다. 파울라 클라인만은 1949년 남편 빌리와 함께 이 길모퉁이에 술집을 열었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파울라는 8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여전히 커틀릿을 만들고 있었다. 커틀릿은 '췰피허 거리'에 위치한 바이 오마 클라인만에서 지금도 매우 유명한 메뉴 중 하나로 손꼽힌다.
  • 요나는 6년째 바이 오마 클라인만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요나는 파울라 클라인만의 예전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파울라가 가장 좋아하는 건 TV로 복싱 중계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요나는 6년째 바이 오마 클라인만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요나는 파울라 클라인만의 예전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파울라가 가장 좋아하는 건 TV로 복싱 중계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 파울라의 사위인 야콥이 이날 밤 아내 루이제와 함께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여 파티를 즐기고 있다. 60년은 긴 세월이다. 하지만 바이 오마 클라인만에서는 그 이후로도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 동안 커틀릿과 쾰쉬가 소비되고 있을 것이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파울라의 사위인 야콥이 이날 밤 아내 루이제와 함께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여 파티를 즐기고 있다. 60년은 긴 세월이다. 하지만 바이 오마 클라인만에서는 그 이후로도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 동안 커틀릿과 쾰쉬가 소비되고 있을 것이다.
  • 2009년, 클라인만 할머니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벽에 걸린 사진들 속에서 파울라 클라인만의 살아 있을 당시의 쾌활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2009년, 클라인만 할머니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벽에 걸린 사진들 속에서 파울라 클라인만의 살아 있을 당시의 쾌활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한 노인이 한때 재즈클럽이었다가 나중에 펑크록 술집으로 변신한 ‘슈티펠(Stiefel)’ 앞에서 재활용 유리병들을 수거하고 있다. 그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바이 오마 클라인만의 손님들은 이제 슈티펠도 ‘한 물 갔다’라고 말하지만, 슈티펠은 지금도 쾰른 시 전역에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한 노인이 한때 재즈클럽이었다가 나중에 펑크록 술집으로 변신한 ‘슈티펠(Stiefel)’ 앞에서 재활용 유리병들을 수거하고 있다. 그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바이 오마 클라인만의 손님들은 이제 슈티펠도 ‘한 물 갔다’라고 말하지만, 슈티펠은 지금도 쾰른 시 전역에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 쾰른의 '벨기에 구역(Belgisches Viertel)'에서 젊은 여성들이 '처녀파티'를 즐기고 있다. 여기에 과연 신부도 포함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결혼식의 주인공은 완전히 지쳐서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여인들 사이에 끼어있는 남성은 스트리퍼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잔뜩 취한 여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좋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사진: 프란치스카 폰 말젠
    쾰른의 '벨기에 구역(Belgisches Viertel)'에서 젊은 여성들이 '처녀파티'를 즐기고 있다. 여기에 과연 신부도 포함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결혼식의 주인공은 완전히 지쳐서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여인들 사이에 끼어있는 남성은 스트리퍼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잔뜩 취한 여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좋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