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크라프트베르크
미래의 음악

크라프트베르크
크라프트베르크 | 사진: 페터 봇체르

팝밴드가 40년째 활동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그 밴드가 바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의 팝밴드 크라프트베르크이다. 이 밴드는 2010년에 40주년을 맞으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크라프트베르크다웠다. 40주년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었다. 떠들썩한 투어 콘서트 홍보도, 호화로운 기념앨범 발매도 하지 않았다. 과거를 추상하는 것은 애초에 현재와 전진을 표방하는 크라프트베르크와 어울리지 않았다. 다만 40년이 지나도록 그 원칙을 한결같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정확하게 언제 밴드가 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크라프트베르크는 1970년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 팝밴드에서 출발했다. 밴드 창단 멤버인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는 현재의 전설적인 클링 클랑 스튜디오를 세우고 첫 앨범을 녹음했다. 이후 반향을 일으키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리지만, 그 초석이 세워진 셈이었다.

크라우트록을 통한 초기 실험단계를 거쳐 두 사람은 곧 새로운 전자 음원이 지닌 가능성을 발견했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팝음악을 통한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들은 그 이후로 히트와는 상관없이 전혀 새로운 장르들을 개척해가기 시작한다. 오늘날 수많은 뮤지션들이 크라프트베르크를 영감과 본보기의 대상으로 꼽는다. 그들이 선구자격인 음악장르만도 두 세 개이고, 데이빗 보위는 그들의 열혈팬이다. 모국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해외에서만큼은 세계 팝뮤직의 역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독일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악

그들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30년도 더 된 '모델(Das Model)'이나 40년이 다 된 '아우토반(Autobahn)' 등 크라프트베르크의 고전 트랙들은 지금 들어도 뒤쳐진 감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앞서가는 느낌마저 든다.

크라프트베르크는 70년대에 이미 컴퓨터 없이 타악기로 기계적인 리듬을 만들어냄으로써 90년대 생겨난 테크노 장르를 미리 예견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만해도 긴 머리의 즉흥솔로연주나, 지나친 사전작업을 배제한 펑크가 락음악의 주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구조적인 것을 뛰어 넘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을 만들겠다는 원칙, 뮤지션을 단지 음악을 만드는 기계의 연장선으로만 이해하려는 그들의 원칙은 가히 혁신적이고 독창적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마치 사이언스픽션과 같다. 기계가 주가 되어 일련의 생산품들을 마침내 팝음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미학적 엄격함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당시 지배적이던 기존 음악의 관습들을 타파했다.

이런 급진적인 기본개념을 일관된 시각적 이미지로 보충하려 한 아이디어 역시 당시로선 새로운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크라프트베르크는 무대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며 대중에게 어떤 모습도, 동시에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기자회견에는 자신들이 손수 제작한 캐릭터나 로봇을 보내고, 이후 TV 방송에는 디지털 아바타를 보냈다. 크라프트베르크에게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음악가가 아닌 음악노동자, 혹은 음악기계라고 칭한다.

이런 개념은 다음 세대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80년대의 신디팝, 디페쉬 모드나 헤븐 세븐틴 등의 밴드들은 크라프트베르크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아프리카 밤바타 같은 초기 힙합 창시자들도 크라프트베르크를 사랑했으며 그들의 초현대적 사운드를 광범위하게 응용했다.

모국에서는 논란의 대상

이제63세의 랄프 휘터만이 남은 크라프트베르크는 해외에서의 놀라운 명성에 비해 모국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논란의 대상이다. 2000년 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가 크라프트베르크에게 엑스포 음악을 맡겼을 때도 거센 비난이 쏟아졌었다. 여러 언어로 엑스포 2000을 암송하는 기계음은 대중들에게 대단한 예술이 아니었다. 또 400,000 유로라는 거액의 보수는 더욱 비난을 부추겼다. 심지어 당시 슈뢰더 총리조차 "이런 음악에 그만한 돈을 쓸 이유는 없다"라고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그로부터 십 년 뒤 앙겔라 메르켈 총리 때에 와서 도 40년 된 록밴드 크라프트베르크는 진작에 모국에서 누렸어야 할 명성을 여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2011년부터 렌바흐하우스의 3D 비디오 전시를 포함한 뮌헨의 3D 콘서트 등을 통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2012년에는 총 6회의 세계 콘서트, 2013년에는 뒤셀도르프(전시 포함)와 런던에서 각기 8회의 콘서트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