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극장가
개방된 에너지의 교차점

아르코 예술극장의 무대
아르코 예술극장의 무대 | 사진: Hanguk Performing Arts Center

한국연극의 특징이자 현상가운데 하나는 극장과 극단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연희의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의 흐름, 이 두 관점으로부터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전자와 관련해, 유럽연극은 전통적으로 건축적 공간, 즉 극장이라는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관객들을 수용해 왔다. 반면 한국연희는 행위자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 모두를 연극공간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극장과 극단이 상호의존적인 서양연극과는 다른 형태의 한국만의 고유한 연극지형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자본주의 영향에 따른 사회구성원의 인식변화를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극장을 대관과 임대를 통한 개인 ‘소유자’의 이익을 창출하는 재화로서 인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극장의 공공적 기능과 역할은 한국사회의 과도한 시장주의 경제시스템의 무한경쟁 속에서 많은 부분 희석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극장운영에 따른 재정부담은 대부분 연극인 개인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에 연극인들은 값 싼 대체공간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상은 1980년을 기점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과거 서울대학교가 위치했고 군사정부의 독재와 비민주주의에 맞서 항거한 대학생들이 주로 머물던 서울의 대학로가 그 대체 공간으로 부상했다. 이곳은 오늘날 1.2 킬로미터 길이의 150개의 소극장이 밀집한 연극촌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극인들은 여전히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레퍼토리 시스템을 정착하는데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스스로 어렵게 마련한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국가주도의 문화정책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름의 독립적 실험을 지속한 극단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오프(Off) 대학로의 소극장 혜화동 1번지, 게릴라, 선돌, 인(In) 대학로의 극단 학전의 학전 블루, 학전 그린 등이 바로 대표적인 극장이다. 혜화동 1번지(1993)는 국내에서 최초로 동인제 운영 시스템을 도입한 실험주의적 연출가들 -기국서, 이윤택, 김아라, 최용훈, 이성렬, 박근형 등과 같은 대표적 연극인들을- 배출한 한국 연극계의 성지와도 같은 극장이다.

혜화동 1번지의 연출가들은 해당 기간 동안 자신들의 작품을 올려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다수의 전문연극인들은 이들의 실험과 도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들을 독려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곳은 대학로의 여느 소극장들보다 연출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사회비판적인 연극담론을 꾸준히 형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극장 게릴라(2006)는 한국의 중견 연출가 이윤택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서울 전용공간이다. 이 극장은 실험적인 젊은 연출가를 주로 선발하고 서양작품과 한국적 미학의 결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때 한국연극계의 큰 화제가 됐던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박근형의 "경숙이 경숙아버지"(2006)를 처음 소개한 곳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2011년 베스트 3가운데 하나인 독일 극작가이자 연출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의 "못생긴 남자"를 소개한 곳도 바로 게릴라 극장이었다. 소극장 선돌(2007)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손기호가 이끄는 극단 이루의 상주 공간이다. 이 극단은 ‘지역’의 내밀한 정서, 사회에서 타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정적인 언어로 구사할 줄 아는 예민한 감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연극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에서 인간과 혈연에 관한 질문을,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에서 한국 노부부의 삶과 그들의 사회적 고립에 관한 문제를 그려냈다.

인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 학전은 ‘블루’와 ‘그린’으로 각각 나뉘어 있다. 극단 학전을 이끄는 연출가 김민기는 음악극과 어린이극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온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 가운데 하나다. 이 극장은 1994년, 베를린 그립스 테아터의 수장이었던 폴커 루드비히의 "지하철 1호선"을 한국의 상황에 맞춰 처음 소개했고, 다수의 독일어 원작들을 한국의 어린이 무대에 맞춰 번안한 "모스키토",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우리는 친구다", "무적의 삼총사" 등을 각각 공연해 왔다. 지난 7월 18일, 앞선 작품 모두를 작곡한 독일의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Birger Heymann)의 부음에, 한국연극계에서는 유일하게 그의 명복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곳도 바로 김민기의 학전이었다.

100석 내외의 등받이가 없는 좌석, 건물 지하에 위치한 소규모 블랙박스 공간, 좁은 골목길의 주변에 위치한다는 일련의 공통점을 가진 인•오프 대학로의 소극장들뿐만 아니라, 서울에는 서양의 극장미학에 따라 건축된 극장들도 상당하다. 국립중앙극장, 남산예술센터, 명동예술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엘지아트센터, 예술의 전당, 정동예술극장, 세종문화회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몇몇을 소개하자면, 남산에 위치한 국립중앙극장은 주로 한국의 전통공연을 위한 중요한 장소로서 이용되는 특징을 보인다.

상주단체인 국립창극단의 판소리와 창극,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연주는 주로 이 극장을 통해 정기적으로 소개된다. 특히 국립창극단의 레퍼토리인 창극 "춘향 2010"은 한국의 음악극이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하는지를 훌륭히 입증한 대표적인 공연 가운데 하나다. 명동예술극장은 과거 남산에 국립중앙극장이 세워지기 이전 시기(1934-1950)에 국립극장으로 사용된 역사적 장소다. 이후 이곳은 개인 상업부지로 이용되다가 국립극단의 재단법인 독립에 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9년 6월, 558석 규모의 프로시니엄 연극전용 극장으로 재개관하였다. 2010년 7월 15일 재단법인화를 통해 독립을 시도한 국립극단의 정기공연들은 현재 이곳에서 주로 소개된다.

명동예술극장은 주로 서양희곡의 번역극과 한국 창작품을 치우침 없는 비율로 소개하는 극장이다. 또한 언어적 힘을 강조한 전통적 연극의 흐름이 다소 강하게 감지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레퍼토리 가운데 "햄릿"은 - 주술적 성격을 대표하는 쌀과 무속화의 특징이 무대미술가에 의해 극대화된 - 한국의 무속적 정서들과 셰익스피어를 문화상호주의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으로 연결해 낸 독특한 공연이다.

다소 젊은 분위기의 극장인 남산예술센터는 한국의 리얼리즘 극작가 겸 연출가였던 유치진이 1962년 드라마센터라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곳이다. 프로시니엄과 트러스트 무대가 혼합된 형태구조의 이 극장은 유럽의 동시대 연극과 흐름을 공유하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의 대다수의 중•대형극장들이 외부대관을 주 업무로 삼는다면, 이 극장은 자체 혹은 공동제작을 통한 공연만을 주로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서울에는 한국연희의 전통과 미학적 특징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덕수궁 옆에 위치한 정동예술극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극장은 공연 "미소"를 통해 해마다 춘향전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 공연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극적 정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언어적 이해에 의존한 무대보다는 행위자의 몸과 전통음악의 제시를 통한 한국연희의 미학과 그 고유한 정서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한국전통무용과 음악, 서사, 기예가 혼합된 "미소"는 한국연희의 특징인 각 요소들의 종합적•유기적 결합과 방식들을 계속 수용해 나가는 중이다. 서양에서 제작된 공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극장도 있다.

국내의 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역삼동에 위치한 1103석 규모의 엘지아트센터는 특별히 해외공연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의 피나 바우쉬, 사샤 발츠, 리투아니아의 네크로슈스, 미국의 리 브루어, 아이슬란드의 기슬리 가르다손, 이탈리아의 로메오 카스텔루치, 캐나다의 로베르 르빠쥬 등의 공연도 바로 이 극장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처럼 서울에는 블랙박스 형태의 소극장이 주로 밀집한 인•오프 대학로와 서양무대미학에 적합한 중•대형 극장들이 곳곳에 함께 혼재되어 있다. 서울의 연극은 극장과 극단의 다양함만큼이나 연극의 문화적 혼종을 주도하고 있고, 배우들과 관객들 사이의 심리적 경계선이 제거된 자유롭고 역동적인 몸의 에너지를 교환하는 순간들을 충실히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서울의 연극이 베를린의 그것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