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공연계
“베를린 전체가 하나의 극장이다!”

콰드리가상 수여식
콰드리가상 수여식 | 사진: Marcela via Wikimedia Commons

한국의 연출가 겸 작가 박철호는, 그가 쓴 책의 제목 ‘베를린, 천 개의 연극’에서 알 수 있듯이, 베를린을 연극의 도시라 칭한다. 실제로 베를린에서는 매일 저녁 50개가 넘는 무대에서 새로운 공연의 막이 오른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와는 달리 베를린의 무대는 상업 작품들이 주를 이루지 않는다. 물론 최근 몇 년간 포츠담 광장을 중심으로 “벰파이어들의 춤(Tanz der Vampire)“이나 “블루맨 그룹(Blue Man Group)“과 같은 세계적인 뮤지컬과 공연들이 선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베를린 공연계를 이끄는 것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서로 다른 다양한 전통을 지닌 역사적인 극장들이다.

명성이 높은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이다. 19세기 중반에 건립된 도이체스 테아터는 수십 년 동안 가벼운 연극을 공연하였다. 그러다1906년 극장건물을 인수하고 소극장을 지어 극장을 확장시킨 전설적인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극단을 이끌면서 수준 높은 연출가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니나 호스, 울리히 마테스, 코린나 하르푸흐와 같은 독일의 저명한 배우들이 이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미하엘 탈하이머, 위르겐 고쉬를 비롯, 최근 들어서는 안드레아스 크리겐부르크가 연출을 맡아 고전극과 현대연극의 혁신적인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베를리너 앙상블(Berliner Ensemble)은 도이체스 테아터와 함께 베를린의 가장 유명한 극장이며 저명한 배우들과 작품들로 유명하다. 50년이 넘도록 쉬프바우어담 극장(Theater am Schiffbauerdamm)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베를리너 앙상블은 극단의 창립자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작을 전문으로 공연하고 있다. 브레히트는 나치시절 해외 망명에서 돌아온 후 이 곳에서 비공식적인 동독의 대표작가로 활동했었다. 그 외에도 다른 많은 현대극의 고전들(막스 프리쉬, 사무엘 베케트, 하이너 뮐러)의 작품들이 이 극장에서 공연된다. 특히 극단에서 오랫동안 예술감독으로 활동한 클라우스 파이만에게 장기흥행작이 된 “클라우스 파이만 바지 한 벌 사고 나와 함께 식사하러 간다“를 헌정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작품과는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며, 이 외에도 페터 한트케, 보토 슈트라우스 그리고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작품들도 공연목록에 올라 있다.

베를린의폴크스뷔네(Volksbühne)는 두 가지 상반되는 명성으로 유명하다. 폴크스뷔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무대이자 중요한 “포스트드라마적“ 작품공연의 중심지로 찬사를 받는 극장으로서, 1992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아 온 프랑크 카스토르프가 오래된 유명 작품들과 소설들을 현대시대에 맞게, 주로 고도의 영상기술을 이용하여 재창조하여 무대에 올린다. 폴크스뷔네는 다른 한편으로 그 어떤 연극도 그대로 살아남지 못하는 “작품을 박살내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로자-룩셈부르크-광장에 위치한 극장에서 상연되는 작품들만이 관객들에게 지적인 아방가르드적 만족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프라터(Prater)“ 부극장의 무대에서 공연되는 단골연출가 르네 폴레쉬의 기관총 불꽃과 같은 느낌의 언어극이나, 갑 스쿼드, 포스트 엔터테인먼트, 쉬쉬팝과 같은 단골 극단들의 공연 또한 정기적으로 관객들을 끌어 모은다.

막심고르키 극장(Maxim-Gorki-Theater)은 440개의 관객석을 가진 극장으로, 베를린의 유명한 극장들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다. 원래 성악아카데미였던 극장건물은 1952년 러시아 형식주의 연극을 선보이는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오늘날에는 근대에 대한 비판적인 논쟁의 무대로 유명하며, 연극의 정전들과 소설각색작품들 외에도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의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샤우뷔네(Schaubühne)는 베를린 중앙의 “극장가“에서 조금 벗어나 동물원역 근처 구 서베를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 할레쉬 강변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다가 1981년 레니너 플라츠에 새로 개조된 극장으로 이사한 후 페터 슈타인이 이끌면서 전설적인 명성을 얻게 된 극단이 바로 샤우뷔네이다. 1999년 당시 31세가 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안무가 사샤 발츠 및 다른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이 극장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발츠의 세계적인 무용극들 외에도 많은 유럽작품들이 무대에 오르는데, 마크 레이븐힐, 사라 케인,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독일 초연으로 공연된다. 객석과 벽이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혁신적인 다목적 무대를 이용하여 다양한 실험적 공연이 가능한 곳이다.

베를린에는 음악공연을 위한 무대 또한 많다. 슈타츠 오퍼(Staatsoper), 코미쉐 오퍼(Komische Oper), 도이췌 오퍼(Deutsche Oper) 등 3개의 국립오페라극장들과, 고전작품들 외에도 소극장 규모의 현대 오페라, 뮤지컬, 음악레뷰를 선보이는 소규모의 실험적 노이쾰른 오퍼(Neuköllner Oper)가 그 예이다. 또한 예술감독 겸 수석 무용수인 블라디미르 말라코프의 지휘 하에 독일오페라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베를린의 슈타츠발레(Staatsballett)은 최근 베를린의 무용센터인 라디알시스템(Radialsystem)과 베를린 탄스파브리크(Tanzfabrik Berlin), 그리고 문화의 집 도크11(Dock 11)과 함께 현대 무용공연의 무대로 자리매김하였다.

대형 연극 및 오페라극장들은 대개 다수의 레퍼토리 작품들을 몇 년씩 공연하며 시즌 때마다 레퍼토리를 확장해 가는 반면, 수많은 소규모 무대들은 독립 연출가들의 작품공연을 위해 주로 며칠씩만 대관된다. 테아터포룸 크로이츠베르크(Theaterforum Kreuzberg), 테아터디스카운터(Theaterdiscounter), 브로트파브리크뷔네(BrotfabrikBühne)나 테아터 운텀 다흐(Theater unterm Dach)와 같은 소극장에서는 흥미로운 공연들이 펼쳐진다. 아늑한 지하공간의 가른 테아터(Garn-Theater)는 독립무대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칠레배우 아돌포 아소르가 1987년부터 소규모의 관객들 앞에서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이오네스코의 작품을 솔로극으로 재해석하여 공연하는 곳이다.

이 외에도 베를린에는 국내외의 공연작들을 잘 보여주는 수많은 축제들이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예를 들어 베를리너 페스트슈필레(Berliner Festspiele)가 주최하는 연극제인 테아터트레펜(Theatertreffen)에는 독일 시립극단들의 주요 작품들이 초대되며, 슈필차이트 오이로파(spielzeit’europa)에는 유럽의 저명한 연출과 안무가들이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연중 내내 연극제 프로그램에 버금가는 다양한 무대를 제공하는 헤벨 암 우퍼(Hebbel am Ufer) 통합극장은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위치한 세 개의 무대에서 독립연극의 대표작들과, 국내외 극단들의 합작작품들 외에도 해외의 수준 높은 작품을 초청하여 선보인다.

젊은 관객들을 위한 무대도 많다. 우선 그립스 극장(Gripstheater)과 이 극장의 대표작인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Linie 1)“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25년째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도 공연되고 있다. 이 외에도 파르카우에 극장(Theater an der Parkaue), 로테 그뤼체 극장(Theater Rote Grütze)와 샤유부데 인형극장(Schaubude) 또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공연들로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즐거움을 제공한다.

베를린의 공연계는 독일통일 후 활기가 넘쳤다. 폴크스뷔네에서 공연한 카스토르프의 작품들이 화제가 되었으며, 베를리너 앙상블의 감독 각축전은 1999년 클라우스 파이만이 역임하면서 비로소 끝이 났고 샤우뷔네가 재설립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연계의 이러한 활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영원한 라이벌인 카스토르프와 파이만 사이에 한동안 들끓었던 언론전쟁이 잠잠해졌으며 샤우뷔네의 “진보적인 젊은이들“도 조용해졌다. 수 년간 “시스템으로 인한 과부하“로 지쳐있던 헤벨 암 우퍼에서도 첫 감독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규모의 화려하고 섬세한 공연의 무한한 다채로움을 선보이는 베를린은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천국이다. 한 관광회사의 선전문구를 빌리자면: “베를린 전체가 하나의 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