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붕괴 25주년 혁명적 기관

독일 역사의 한 유산: 슈타지문서관리청
독일 역사의 한 유산: 슈타지문서관리청 | © BStU/Dresden

독일 슈타지문서관리청에서는 구동독 국가보안부 관련 문건들의 열람을 허용함으로써 동독 역사 청산 작업에 나서고 있다.

기관의 이름은 좀 길지만 '독일 연방 구동독 국가보안부 관련 문서 관리청(BStU, 이하 슈타지문서관리청)'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공공기관 중 하나이다. 슈타지문서관리청은 1990년부터 구동독 비밀 경찰, 즉 '슈타지' 관련 문서들을 서고에 보관하면서 개인이나 기관 혹은 일반 대중에게 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1949년부터 1990년 사이, 수백만 동독 국민들의 사생활을 끊임없이 침해하며 수집된 자료들이 현재 연방슈타지문서관리청의 총 12개의 외부 지소에 보관 중이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그곳에 보관된 슈타지 문서들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총길이가 무려 111킬로미터에 이르고 무게로 치면 28,400톤에 달하며, 3,000개의 영상과 160만 개의 사진이 모두가 현상되어 보관 중이다. 열람을 원할 경우, '구동독 국가보안부 문서 관리법'에 따라 절차를 밟아 신청하면 된다. 슈타지문서관리법은 1991년 12월 29일 발효된 법으로, 정부가 앞장서서 정보기관이 저지른 범죄를 청산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법을 제정한 최초의 사례였다. 당시 동독에서나 서독에서나 모두가 과거를 잊어버리고 싶어 했던 정황을 감안하면 해당 자료들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은 것은 역사적 기적에 가깝다. 1990년 2월만 하더라도 이른바 '원탁 회의'라는 것이 개최되었고, 거기에서 구동독 국가보안부는 개인신상정보가 포함된 음성자료들을 폐기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1989년 말 무렵, 다시 말해 전환기에 조직된 구동독의 각종 정치 단체들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원탁 회의에서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 국가보안부 소속 해외 사건 담당부는 심지어 해체해도 좋다는 결론도 나왔고, 이에 따라 그와 관련된 서류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서류 폐기 사태를 막은 한 개의 조항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 정부도 해당 자료들을 불편하게 여겼다. 언론에서 이미 슈타지와 서독 정치가들 사이에 오간 통화 내용 일부를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 밑에서 일하던 내무부 소속 직원 하나가 구동독 내무부에 보낸 팩스 한 통도 공개되었는데 거기에는 '차별적 폐기규정'에 합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몇몇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러한 정책에 반대하며 슈타지 본부를 점거했고, 다양한 이익단체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긴 협상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1990년 9월 18일 드디어 통일조약에 한 가지 특별 조항을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합의가 도출되었다. 슈타지 관련 서류들을 보존한다는 조항이었다. 2012년 3월 연방 대통령에 취임한 요아힘 가우크가 바로 당시 협상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1990년 10월 3일, 서독에 통합되기 전 마지막으로 열린 동독 국민회의에서 가우크는 구동독 국가보안부의 개인신상 관련 문건을 관리하는 특별위원으로 선출된 뒤 2000년까지 해당 기관의 기관장 직을 맡았다. 지금은 정부가 제안하고 의회가 동의하는 절차를 통해 특별관리위원들을 선출한다. 슈타지문서관리청은 문화 및 미디어 정책 부처의 산하 기관으로, 구체적으로는 문서관리/정보/연구/행정/지도국 소속이다. 슈타지문서관리청의 최우선 목표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서류를 열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학자나 기자 역시 열람이 가능하다. 슈타지문서관리청에서는 지금까지 개인 290만 명과 약 170만 개의 공공 기관에서 제출한 문서 열람 신청서를 처리하였다.

국제적으로 모범이 되는 기념 사업

이토록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건만 슈타지문서관리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현직 청장인 롤란트 얀은 2019년쯤 해당 기관이 폐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구동독 공공 기관에서 근무했던 이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후 서류들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전문가위원회에서 2015년 말까지 제안서를 제출할 것이다. 슈타지문서관리청의 존립을 반대하는 이들은, 현재 해당 서류들을 연방자료보관소로 옮기는 것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직원 700명인 자료보관소에서 관리하는 편이 직원 수가 1,550명이나 되는 문서관리청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 주장한다. 참고로 슈타지문서관리청에서는 열람 허용 대상 문서들을 사전에 늘 검토하고, 개인정보보호가 필요한 부분이라 판단되면 해당 문구들을 흑색 펜 등으로 보이지 않게 처리하고 있다. 문서관리청의 존립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문서를 연방자료보관소로 옮길 경우 범죄자 관련 서류를 열람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희생자 보호는 더 허술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간에 슈타지문서관리청은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업무를 수행해 왔고, 모범적 사례라는 칭찬도 받고 있다. 2011년 10월 14일, 롤란트 얀 청장은 프라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럽 기억 및 양심 플랫폼(Platform of European Memory and Conscience)' 창립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전체주의체제 청산에 협력하고자 하는 13개국의 각종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