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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고의 건축사진가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물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물 사진 |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건축비평과 건축사진은 서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나는 공간, 건물, 도시를 언어로 묘사한다. 다른 하나는 건축이 발산하는 빛을 포착한다. 마치 담담하게 기록을 남기듯, 타협 없는 논평, 공감되는 설명, 혹은 시적인 찬미를 하듯 건물을 사진에 담는다. 건축 비평가 팔크 예거가 작업 할 때, 건축사진가는 그의 제 2 자아가 된다. 그가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선정하여 각자의 다양한 접근방법과 상(像)의 언어를 통해 소개한다.

건물 사진을 찍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건물은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고 건축가와 함께 적절한 빛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헛수고가 되고, 스튜디오에서처럼 촬영 조건의 통제가 용이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건축 촬영에서도 모티브, 적절한 순간, 마음이 맞는 시선과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여기에 선정된 10 인의 사진가들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각도, 분위기, 작용, 효과 등으로 우리를 경탄케 하는 사람들이다.
 
건축사진은 완전히 독립된 작업영역이기도 하다. 패션이나 자동차, 식품 사진 등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마케팅을 위해 피사체를 적절한 빛 속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집들은 이미 판매가 끝났다. 작업을 의뢰하는 고객은 대부분 자신의 작품을 기록하기 원하는 건축가들로서, 이들은 자신의 건물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 지, 어떤 식으로 비춰져야 하는 지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가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건물을 스타로 만들어 그 사진이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어떤 건축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마치 아이를 출산 하듯이 세상에 내 놓은 후에는 사진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작품을 마음껏 묘사하고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
 
건축사진이 보통 사용자 없이, 즉 사람을 포함하지 않고 촬영된다는 사실은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건축가들 대부분이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렌더링이나 컴퓨터 드로잉으로 재현 할 때 사람을 포함 시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아마도 건축사진에 사람이 없는 것은 일반적으로 건물을 그림 속으로 포착하는 사진가의 작업이 정물화를 구성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서 생물은 단지 방해요소일 뿐이다. 대부분의 건축가들도 선택권이 있다면 사람이 없는 그림을 선호한다. 현대건축은 20세기 초 그 시작점부터 명료성, 단순성, 추상성을 추구해왔다. 반면, 사람들은 집에 무질서와 생명을 가져온다. 어떤 엘리트주의의 건축가들은 이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물론, 이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건축을 기록하고, 건축가의 작업을 기리려는 시도, 그리고 그 작업을 최대한 왜곡 없이 시각화시키고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건축사진의 중요한 과업이다. 건축이론은 위상기하학적,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건축의 디자인적 차원에 대해 논한다. 이 분야는 대부분의 건축사진가들에게는 업무적 일상에 속한다. 건물을 대상으로 한다면 대칭축 모티브는 필수이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를 선택하고, 원경의 왜곡을 피하기도 하고, 최적의 빛을 기다리기도 한다. 몇몇 건축사진가들이 마인츠의 사진가 디터 라이스트너 사진 학교(Schule des Fotografen Dieter Leistner in Maiz)나 도르트문트 기술대학(Fachhochschule Dortmund)을 다닌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조화와 균형이 발산되는 섬세한 기하하적 구성의 접근방법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고도로 강렬하면서도 정확한 사진이 탄생하며 심지어 이런 사진들에서 이상화된 시각이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나가는 현상을 종종 관찰하게 되기도 한다.
 
날씨나 관찰자의 움직임, 기타 다른 수용조건들에 의해 건축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고 받아들여지는 지를 논하는 현상의 차원도 존재한다. 한스 게오르그 에쉬 (Hans Georg Esch)가 중국 대도시의 파노라마 사진들을 기획할 때면, 그는 스모그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영과도 같은 그 도시의 풍경을 담은 시적 분위기를 반영하고자 한다. 이 차원에서 또 다른 작가들은 포토 에세이를 구상하며, 이때 굳이 건축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분위기 그 자체를 담고자 한다.
 
세 번째 차원인 사진 이미지 그 자체는 건축 디자인과 그 현상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반영된 현실이다. 이 차원은 관찰자의 머리 속에서 형성된다.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Friederike von Rauch)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작업하는 작가로서, 그에게 건축은 하나의 소재이며 그 소재로부터 감각과 꿈이 생겨난다.
 
이렇게 모티브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이 존재하며, 여기에 선별된 베스트 10의 건축사진가들의 필체 역시 그만큼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초이 브라운(Zooey Braun)

  • 초이 브라운의 초상 사진: 라우라 코른
    초이 브라운의 초상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 초이 브라운의 건축사진 사진: 초이 브라운
1966년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태어난 초이 브라운이 직업을 선택해야 했을 때, 우연히 그는 가족과 친했던 사진가의 보조로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그 일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사람들 사진을 찍고, 보도 사진도 찍고, 모두 다 촬영하고 싶었지만 건축만은 예외였다. 건축가였던 부모님과 조부모가 휴가 계획을 짜는 데 항상 어려워했던 기억 때문에 건축을 꺼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덕분에 건축적 안목을 갖추게 된 것도 사실이다.
 
또 한번의 우연, 혹은 숙명에 의해 브라운은 도르트문트에서 사진디자인을 수학하며 저명한 건축사진가 디터 라이스트너와 요르크 헴펠에게 사사 받고, 헴펠의 지도 하에 학위를 받는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건물을 촬영하게 된다.
 
그가 고요와 평온을 다루는 방식은 독특하다. 어떻게 역동과 소란을 피하는지, 사진 편집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사물을 축소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 속의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고 각 부분들에 독자적인 구성방식을 부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니 쇼트(Knee Shot)를 선택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명상적이고 전적으로 감상적인 동시에 냉정함을 전제로 한 시선에 포착된 강렬한 사진들이 탄생한다.
 

마르쿠스 브레트(Marcus Bredt)

  • 마르쿠스 브레트의 초상 사진: 카트린 뤼트케
    마르쿠스 브레트의 초상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 마르쿠스 브레트의 건축사진 사진: 마르쿠스 브레트
"건물은 가만히 서 있고 변덕스럽지도 않아서 좋다." 1968년생인 마르쿠스 브레트는 건축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표현주의적 건축예술에 천착했던 초기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건물과 분위기, 환경과 일상생활 사이의 상호작용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촬영 의뢰로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건물사진 외에도 점점 더 많은 논쟁이 담긴 현실의 미화된 그림들이 탄생한다. 바쿠, 키에프, 부카레스트, 그리고 브라질리아, 벨로 호리존테, 그리고 마나우스를 촬영한 사진에서는 신축 축구경기장을 담았는데, 이때 그는 보여지는 건물을 주변환경과의 관계 속에 자리잡게 하였다. 사진 속에는 사람이 있다. 행인, 일하는 사람들, 스포츠 선수들과 같은 사람들이 건축가가 창조해낸 장소를 자신의 세계인 것처럼 스스로를 위해 사용한다. 운이 좋을 경우 정리된 모습, 서로 돕는 모습, 장사를 하는 모습으로 그림 속에 담긴다.
 
더불어 마르쿠스 브레트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극적인 기후상황, 바뀌는 빛의 분위기 등에 따라 변화하는 건축의 모습이다. 또한 그는 집 짓는 이야기, 설계자, 공사장 인부, 현장 직원들의 이야기, 그 존재가 없었다면 건축이 생겨나지도 유지되지도 못했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한스 게오르크 에쉬(HG Esch)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초상 사진: 에체 그륀덴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 한스 게오르크 에쉬의 건축사진 사진: 한스 게오르크 에쉬
1964년생인 한스 게오르크 에쉬는 본의 조용한 동네인 헤네프에서 살고 있지만 전 세계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건축 사진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작업 범위는 낭만적인 교회와 마을들, 쾰른의 다리에서부터 시드니의 사무용 고층빌딩에 이른다. 초창기에 그의 흥미를 끌고 그를 사로 잡았던 것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 특히 유럽 외 지역의 소위 메가시티라 불리는 도시들의 건물이었다. 두바이의 마천루들이 구름의 바다를 뚫고 솟아 있는 모습, 종말을 그린 영화의 배경처럼 스모그 속에 환영처럼 서 있는 도시 상하이, 혹은 산을 기어 오르는 고층빌딩 밀집지역 홍콩. 이제 그는 자신의 도시촬영기록을 가지고 메가시티들의 규모에 부응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다. 중국의 백만 인구 도시들을 찍은 파노라마 사진들은 고도로 확대 된 덕분에 환상과 답답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경탄과 떨림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 사진들은 에쉬가 공들여 준비한 전시회와 부단한 노력으로 완성한 대형 사진화보집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브리기다 곤잘레즈(Brigida González)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초상 사진: 산드라 슈크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 브리기다 곤잘레즈의 건축사진 사진: 브리기다 곤잘레즈
1969년생인 브리기타 곤잘레즈는 일반적인 사진가 교육을 받은 후 먼저 영화계에서 카메라맨으로 일했다. 정적인 매체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동적 매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 여전히 가끔씩 연속장면에 마법을 걸어 이를 진정한 영화소재로 표현한다. 메르세데즈 벤츠 박물관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촬영한다거나 박물관 내부 홀을 실제 영화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한다.
 
사진의 감성과 역동성이 관건이 되는 경우, 곤잘레즈는 모티브에 대해 단호하게 주관적으로 대응하며 모티브와 개인적인 상호작용을 한다. 그 결과, 그녀의 사진 속에서는 가끔씩 완전히 새로운, 전례가 없는 부분과 각도가 발견되는데, 이는 기존 예술에 대한 비관습적 해석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브리기다 곤잘레즈에게 빛은 디자인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물의 특징을 강화시켜 그것을 사진각도에 담아내려고 할 때, 가끔은 공상과학영화 같은 효과까지 내고 싶다면 맑게 갠 푸른 하늘은 사양한다. 그녀는 자신의 의뢰인들에게 이러한 접근방법의 자유를 기대한다.
 

롤란드 할베(Roland Halbe)

 
  • 롤란드 할베의 초상 사진: 롤란드 할베
    롤란드 할베의 초상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 롤란드 할베의 건축사진 사진: 롤란드 할베

1963년 칼스루헤 태생인 롤란드 할베는 이탈리아 칼랴리 포토그라피(Cagliari Fotografie)의 유럽 디자인 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이미 활동 초기부터 그는 기록성 건축사진에 전념하였으며 의뢰인들은 거의가 건축가들이었다. 건축예술가들과의 협력은 그의 작업방식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설계 시작 단계뿐 아니라 설계 과정 중 건축가의 사고의 세계를 해득하고 그들의 의도를 탐색하여 사진 속에서 구체화시킨다. 독일에서,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또 다른 지역에서 그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건축가와 엔지니어들과 동행하고 있다. 건축물에 대한 정교하고 초상화와도 같은 '타협 없는' 포착 외에도 좀 더 가까이 살펴 보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디테일과 효과 역시 그의 관심사이다.
탐색자의 정확한 시각과 프레임이 현실의 예상치 못한 각도를 잘라 내는 순간, 이 각도는 미학적 예술품으로서 독자적인 생명체로 발전되어 단절된 건축적 요소의 복제가 미술관에서의 전시가 아깝지 않는 자율적인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
 

플로리안 홀츠헤르(Florian Holzherr)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초상 사진: 아이프 아이벨스호이저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 플로리안 홀츠헤르의 건축사진 사진: 플로리안 홀츠헤르

예술가 제임스 터렐과 도널드 져드가 플로리안 홀츠헤르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건축적 세련미를 갖춘 디자이너인 이들은 건축예술로부터 조형예술로 과감히 넘어선다. 1970년 뮌헨 생으로 같은 지역의 사진디자인 전문 아카데미 (Fachakademie Fotodesign)에서 수학한 홀츠헤르에게는 세 가지 관심사가 있는데, 예술, 건축, 그리고 사진이 그것이다. 그는 특히 사진 분야에서 이 세 가지를 한 데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주의 깊고 침착하게 사진을 작품으로 만드는 자신의 방식을 장인의 작업에 비교하며, 과도하게 창조적인 예술가의 작업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명료성을 포착하고 상상을 자극하며 이것을 통해 설계된 공간이 읽히게 만들고 공간에 대한 실감나는 경험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는 최신 유행 표현방식은 사양하는데, 그 까닭은 “건축 및 예술기록은 이미 구축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될수록 의미가 깊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독일식“ 사진작업 방식은 “통속적이고 화려한“ 미국식에 비해 '좀 더 건조하고 좀 더 절제된' 작업 방식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의 경험에 따르면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이런 스타일이 충분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베르너 후트마허(Werner Huthmacher)

  • 베르너 후트마허의 초상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베르너 후트마허의 초상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 베르너 후트마허의 건축사진 사진: 베르너 후트마허

베를린에 거주하는 베르너 후트마허는 1965년 팔츠 주 린다우에서 태어났으며 디터 라이스트너 에게 사사했다. 그는 독일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와 기관들로부터 많은 의뢰를 받는 사진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해당 전문기관들에서뿐 아니라 대형 언론매체에도 등장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건축예술의 완벽한 기록, 대칭축을 따라 흐르는 건축적 시선만이 아니다. 그가 더 좋아하는 것은, 예를 들어 전시회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통해 주제를 추구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연속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또 유사한 의도로 사람을 그림에 담기도 하는데, 이때 사진 속 사람은 완벽한 척도로, 또한 '죽어 있는' 건축예술에 대조되는 생명으로 등장하는데, 사실 건축예술의 존재이유가 이 생명 때문인 것이다. 때로는 이 생명이 동물이 되기도 한다. 그의 건축에서의 예술 작업 가운데 하나, 즉 연방 식품 농업 소비자보호부 청사의 사진설치를 위해 그는 실제 살아 있는 새끼 돼지를 건물에 풀어 놓고 작업 했다. 이런 식의 예술적 개념을 통해 이차원의 사진작업에 시간이라는 차원이 부여된다.

슈테판 뮬러(Stefan Müller)

  • 슈테판 뮬러의 초상 사진: 마르틴 무저
    슈테판 뮬러의 초상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 슈테판 뮬러의 건축사진 사진: 슈테판 뮬러
1965년 본에서 태어난 슈테판 조세프 뮬러는 활동 초기 건축가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의 영향 아래 합리주의에 몰두했다. 그는 웅거스의 작품을 그의 스타일로 촬영했다. 이성의 근원지인 이탈리아에서 그는 화가 죠르죠 데 키리코의 흔적을 쫓아 형이상학의 화법을 사진적 그림언어로 변환시켜 집과 도로를 키리코처럼 딱딱하고 생기 없는 배경으로 보이게 하였다.
 
그는 시종일관 주제적 측면에서 웅거스의 후계자들과도 관계를 맺어, 막스 두들러(Max Dudler), 오트너 앤 오트너(Ortner & Ortner), 클라이 후에스 + 클라이 후에스(Kleihues + Kleihues) 혹은 슐츠 앤 슐츠(Schulz und Schulz) 등의 건축 형식적 엄격함을 화면에 담았다. 섬세한 기하학적 균형이 잡히도록 편집된 사진들은 대부분 사람을 포함하지 않으며 이런 방식 덕분에 엄청나게 암시적인 힘을 발휘한다.
 
활동 초기에는 또 다른 식의 태도와 양식도 보였는데, 바르코프 라이빙거나 로에디히 숍의 건축물은 슈테판 뮬러에게 건축환경에 대한 또 다른 접근과 새로운 안목을 열어 주었다.
 

크리스티안 리히터스(Christian Richters)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초상 사진: 헤데 치란카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초상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 크리스티안 리히터스의 건축사진 사진: 크리스티안 리히터스
1958년 베스트팔렌 주 뮌스터에서 출생한 크리스티안 리히터스는 에센의 폴크방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학위를 땄다. 그는 매우 일찍부터 건축사진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적었다. 오늘날 그는 세계의 그 어떤 사진가들보다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언론사들뿐 아니라 렘 쿨하스, 토요 이토 혹은 유엔스튜디오 같은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로부터 작품을 의뢰 받고 있다. 자신의 거주지인 뮌스터의 지리적 특성상 그는 네덜란드 건축의 부흥과 그와 관련된 출판 활동의 발전에 동행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유명한 네덜란드 건축가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모든 건물에 어느 정도 피겨스케이팅의 쇼트 프로그램과 같은 의미로 직각의 '건축가적 시각'을 부여한다. 하지만 프리 프로그램적 측면에서 그가 흥미를 가지는 것은 어떤 장소에 '처음 도착할 때의 마법', 그 마법을 시각적으로 포착하고 해독하는 것이다. 장소에 접근하여 건물 주위를 돌아 보고 그 첫 만남을 기록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건축적 개념 뿐 아니라 건축의 특징도 전달한다.
 

프리드리케 폰 라우흐(Friederike von Rauch)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초상 사진: 슈테파니 슈바이거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초상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건축사진 사진: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
그녀는 "건축사진가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강조하는데, 건축기록 사진작업 요청을 받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옳은 주장이다. 1967년 브라이스가우 지방 프라이부르크에서 출생한 프리드리케 폰 라우흐는 건축을 자신의 예술작업을 위한 모티브로 이용한다. 그녀는 공간과 인간의 흔적(인간 자체만은 전적으로 제외) 그리고 분위기에 주의를 기울인다. 관계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며 사진에 대한 정보 역시 절대적으로 최소화된다. 그녀에게 화려한 신축 건물은 의미가 없으며 오직 공간, 빛과 그림자, 질감,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녀의 사진에서 강렬한 것, 소란한 것, 극적인 것, 움직이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그 사진들은 낭만주의 이미지 공간처럼 구성되었다.
 
그녀의 색채구성은 창백한 톤으로 흐려져 거의 흑백의 경계에 근접해 있다. 증발하기 쉬운 억제된 고요가 전달하는, 부드럽게 흐르면서 흩어지는 빛을 통해 사진에 깊은 우울이 뭍어난다. 고요한 수도원, 황량한 공간, 개관 시간 전후의 사람 없는 미술관 등이 프리데리케 폰 라우흐의 꿈의 공간이다. 그녀는 동경을 사진 속에 담는다. 그녀는 카메라를 든 건축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