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돌딩거와의 인터뷰
“바이에른은 물론 다른 세상이다”

클라우스 돌딩거 밴드 패스포트의 한국 공연 모습
클라우스 돌딩거 밴드 패스포트의 한국 공연 모습 | 사진: 2015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클라우스 돌딩거는 가장 이름 난 독일 재즈뮤지션 중 한 명으로, 그간 수많은 곳들을 순회하며 경력을 쌓았다. 40년째 바이에른의 슈타른베르크 호수 인근의 작은 마을, 이킹에 살고 있다. 2015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돌딩거를 만나 고향과 여행에 관해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고향'의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정국 내 전화 관련 부서의 고위 간부였는데, 전근이 잦았다. 내가 어릴 때 이미 쾰른으로 전출되었고, 그후 다시 오스트리아로 발령이 났다. 2차 대전 내내 오스트리아 빈에 살았는데, 그건 말하자면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러다가 종전이 다가올 무렵, 다시 말해 러시아 군대가 빈 시의 코 앞까지 왔을 때 어머니께서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다!"라고 선포하셨다. 우리는 여행 가방 두 개에 모든 짐을 싣고 독일로 향했다. 목적지는 쇼벤하우젠에 살고 있는 삼촌네였다. 그곳에서 미군의 독일 진입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어린 나로서는 정말이지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종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재즈라는 걸 최초로 접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어느 작은 호텔에서 밴드가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운드를 내가 듣게 된 것이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다. 그전까지는 그것과 비슷한 사운드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후 1945년 말경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뒤셀도르프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나의 본격적인 삶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 라인란트 지방에서 살면서 ‘고향’의 느낌을 조금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내 가슴 한 켠은 늘 남쪽 지방을 향하고 있었고, 늘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가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바이에른으로 이사를 간 건가?

1960년에 결혼을 했고, 아내는 어린 시절을 티롤 지방에서 보낸 사람이다. 아내 역시 늘 산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고, 그래서 1968년 우리는 결국 뮌헨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면서 우리가 느끼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확대되었다. 바이에른은 물론 다른 세상이었고,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결국 나는 그곳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나는 라인란트도 좋아하지만 바이에른도 좋아한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바이에른이 내 마음을 조금은 더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색소폰 연주가 클라우스 돌딩거 색소폰 연주가 클라우스 돌딩거 | 사진: 페터 회네만 최근 발매된 스튜디오앨범의 제목이 "길 위에서(En Route)"니까, 말하자면 "여행 중“이란 뜻이다. 여행이 어떤 식으로 음악활동에 영감을 주는가?

결정적인 영감들은 어린 시절에서 얻었다. 나는 1965년에 이미 남미 대륙을 여행하는 커다란 행운을 누렸다. 남미는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도 특히 브라질 음악의 영향이 컸고, 북아프리카 음악이 그 뒤를 잇는다. 현지에서 현지 음악을 직접 체험하고 내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예컨대 모로코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를 하고 심지어 앨범까지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앨범의 제목은 '모로코 패스포트(Passportto Marokko)'였다. 미국 뮤지션들과도 함께 연주를 했고, 그 중 몇 명을 나중에 '돌딩거 기념 축제(Doldinger Jubilee)' 같은 프로젝트들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 뮤지션들과의 접촉 기회가 많았는데, 그 경험들이 분명 내게 분명히 '족적'을 남겼을 것이다.
 
2015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걸로 알고 있다. 소감은?


굉장히 좋았다. 해당 축제는 기대 이상으로 특이했다. 유럽에도 수많은 대규모 재즈페스티벌들이 개최되고 있지만, 그 행사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특별했다. 정확히 콕 집어서 무엇 때문이라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팬들의 태도 등 모든 게 매우 특별했고,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이미 여행한 적이 있다. 예전에 홍콩을 출발점으로 해서 봄베이,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했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이동했고, 순회공연의 종착지는 터키였다. 나는 그 모든 과정에서 매우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클라우스 돌딩거의 밴드 패스포트 (출처: 유투브)

앞으로도 여행을 계속할 계획인가, 아니면 이제 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앞으로도 여행이 계속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처럼 여행이 쉬운 적도 없었다. 비행기만 타면 어느새 도쿄나 서울에 도착해 있지 않나. 나는 그게 좋다. 물론 어떤 지역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반대로 그곳에서 나쁜 경험만 쌓을 수도 있다. 세계 어딜 가든 그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 경우, 기본적으로 어딜 가든 긍정적 경험들이 훨씬 더 많았다.
 

클라우스 돌딩거(Klaus Doldinger, 1936년생)는 독일 출신의 재즈 & 영화 분야의 뮤지션이다. 1953년 독일 최초의 딕시밴드 '더 핏워머스(The Feetwarmers)'를 접한 것을 계기로 음악 분야에 입문했고, 1971년 이래 여전히 활동하는 자신의 밴드 '패스포트(Passport)'를 결성함으로써 뮤지션으로서의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린 것은 독일의 수사물 드라마인 '범죄 현장(Tatort, ARD 방영)'의 주제곡, '특전 유보트(Das Boot, 1981)'와 '네버엔딩스토리(1984)'의 OST, 독일 드라마 '크로이츠베르크의 멋쟁이(Liebling Kreuzberg, 1986-1998)'의 주제곡들을 통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