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음악계 탄생 20주년
'DIY 정신'이 만들어낸 음악

한국 인디밴드 ‘크라잉 넛’, 2016년 공연 중
한국 인디밴드 ‘크라잉 넛’, 2016년 공연 중 | 사진: Company F

한국의 대중음악은 곧 K-POP이다? 2012년에 싸이가 이룬 '강남 스타일'의 세계적 성공이 유럽과 미국에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후로 많은 외국인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홍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열정적인 인디음악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음악성을 펼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스무 해가 넘어간다.   

한국의 인디음악은 곧바로 '홍대 음악'을 연상시킨다. 홍대의 주변환경을 논하지 않고 한국의 인디음악을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홍대입구역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 퍼져있는 다양한 라이브 클럽들은 한국 인디음악계의 요람과도 같은 장소이며, 이 곳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한국 인디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곳은 여전히 언제나 인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며, 아티스트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이고, 또 이를 즐기려는 관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혹자는 '커트코베인 사망 1주기 공연'이 열렸던 1995년을, 또는 최초의 인디 앨범 격인 'Our Nation'이 발매되었던 1996년을 한국 인디음악계의 탄생시점으로 잡는다. 사실 한국에서 ‘인디’라는 개념은 아직도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탄생 시점인 1990년대 후반에는 당시 한국의 전체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반대급부라고 부를만한 메이저 음악 역시 작은 규모였고, 그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것이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인디음악계'라는 개념은 시스템 측면보다 ‘태도’의 측면에서 정의 내리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와 홈 레코딩

인디밴드 1세대인 밴드 크라잉 넛의 '밤이 깊었네' 뮤직비디오 (2001) (출처: 유튜브)

한국에서 인디음악이 생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뮤지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음반 사전심의제도는 그 역사가 일제 치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반을 국가차원에서 검열, 통제하던 제도로, 해방 후에도 이어지며 각 시대 정부의 프로파간다와 맞지 않는 곡들은 전부 금지 처분을 당했고, 어느 미디어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이러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많은 뮤지션들이 싸워왔고, 결정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9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가 이 제도의 문제를 크게 공론화시키면서 마침내 1996년 사라졌다.

여기에 홈 레코딩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 뮤지션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 권리를 비로소 갖게 되었다. 뮤지션들이 직접 음반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보다 좋은 여건이 주어졌지만, 홍보에서 문턱이 막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대중매체의 힘

대형 기획사에 의해 탄생하는 스타와 그들의 음악들, 현재는 소위 ‘K-POP’이라고 알려진 콘텐츠들은 일정기간 내에 수익창출을 하기 위해 공중파 방송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을 홍보해왔다. 이들은 새 앨범이 나오면 방송 활동에 올인했고, 방송가 역시 콘텐츠의 다양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들을 필요로 했다. 인디뮤지션들은 이러한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맞춰진 음악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음악에 담기 위해 애썼고, 대중매체들로서는 유행하는 장르와 잘 짜인 군무, 보기 좋게 가꿔진 외모 등으로 무장한 기획사의 스타 대신 인디뮤지션들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제는 테이프와 CD로 듣던 음악을 MP3로 듣게 된 것도 모자라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었고, 스마트 폰의 활성화로 SNS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이제는 방송을 통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홍보 활동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좋은 음악이라면 팬들이 알아서 홍보를 자처했다. 여전히 K-POP으로 알려진 콘텐츠들이 방송활동과 음원차트에서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디음악계는 적어도 뮤지션들이 자유롭고 소신 있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성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믿음이다.

펑크 음악에서 다양성으로

한국 인디계의 슈퍼스타 장기하와 얼굴들 – '그렇고 그런사이'뮤직 비디오 (2011) (출처: 유튜브)


그러나, 한국 인디음악계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해오고 있는 뮤지션들의 말을 빌리자면, 인디음악계의 초창기 일부 모습은 적잖이 '기형적'이었다고 한다. 메이저로 가기 위한 준비의 장처럼 여겨졌고, 행사를 위해 히트송을 만들고자 했으며, 그 예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많은 행사를 맡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그 외에는 인디 1세대 밴드로 꼽히는 '크라잉 넛'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한국에서의 인디란 곧 '펑크'를 의미했었다.

한국의 인디음악 씬이 탄생한 지 10년 즈음이 됐을 때 '장기하와 얼굴들', '검정치마', '국카스텐', '안녕바다' 등 수많은 밴드들이 인기를 끌었고, 이 때가 소위 '인디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때였는데 그 때문인지 이후 10년에 대한 평가는 전에 비해 비교적 긍정적인 편이다. 밴드 안녕바다는 "다양한 팀들이 모여서 각자의 음악을 계속한다면, 한국 인디음악 씬의 규모가 커지고 발전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라며 희망적인 미래를 내다보기도 했다. 그 동안 뿌려진 인디음악의 다양성이라는 씨앗을 지켜내고 가꿔온 것은 결국 '함께 나가자'는 숭고한 정신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오던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던 애호가들이었다. 때로는 한국을 넘어 해외의 팬들과 관객들이 매력을 알아보고 열광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재 활발한 해외 투어를 하고 있는 '잠비나이'와 'IDIOTAPE'이 좋은 예이다.

현재 진행형 인디음악 

2014년 등장 후 혁오 신드롬을 일으킨 밴드 '혁오'의 데뷔곡 '위잉위잉' 뮤직비디오 (2014)(출처: 유튜브)
 
예전에 비해 다양한 도시에서 인디음악을 비롯한 대안 문화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홍대=인디 씬'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라이브 클럽과 공연장이 밀집해있는 곳이며, 다양한 대안 문화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 인디의 시작점이라고 회자되고는 하는 '커트코베인 사망 1주기 공연'이나 '스트리트 펑크 쇼', 최초의 인디 앨범인 'Our Nation' 역시 현재는 DGBD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 지역의 '드럭'이라는 라이브 클럽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진행형인 인디 뮤지션들은 아직까지도 홍대 지역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금은 라이브 클럽이 레이블 역할을 담당하던 시절은 지났지만 '클럽 빵'이나 '제비다방' 등 일부 라이브 클럽에서 발매하고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양적으로는 밴드의 수가 증가하고 질적으로는 많은 장르를 대변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활동을 하며 스무 해 동안 발전을 거듭해왔다. 오늘날,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던 이들은 이제 방송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거대 기획사나 음원 유통사의 하위 레이블과 인디 뮤지션들이 계약을 맺고 협업하면서 이 생태계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는데, 경계가 모호해진 이 시점에서 중요해진 것은 결국 'DIY정신' 이라는 인디 음악의 DNA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소신을 지켜나가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팬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인디 뮤지션들이 아무리 유명해지고 방송에 노출되더라도 이들을 K-POP이라는 카테고리에 내어 줄 수는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