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도서관 비:파크
사회혁신을 위한 ‘생각창고’

비파크 ‘생각’ 도서관
비파크 ‘생각’ 도서관 | 사진: 임준영. 설계자: 심희준, 박수정(건축공방)

도서관이 책을 들고 말을 걸어온다? 서울에 소재한 비:파크(B:PARK)에서 우리는 도서관의 ‘새로운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서울 불광동에 있는 사회혁신파크로 들어서면 넓은 부지 곳곳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공간들이 눈에 띈다. 화단 사이의 UFO, 붉은 벽돌 건물 틈새에 붙은 노란 큐브, 알록달록한 무지개 닭장같은 조형물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데 이게 도서관이라니?
 
비:파크는 도서관이자 사회 혁신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구’다. 비파크가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는 원래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10만 제곱미터의 부지에, 서울시가 새로운 사회혁신과 관련된 인프라들을 모아 만든 곳이다. 비파크 도서관은 2016년 12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민들이 서울혁신파크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기지’의 형태로 문을 열었다.

도서관이 독자에게 메시지를 건네다

사선으로 세워진 ‘다른 삶’ 도서관 사선으로 세워진 ‘다른 삶’ 도서관 | 사진: 임준영. 설계자: 심희준, 박수정(건축공방) 비파크는 네 곳의 도서관 기지로 구성되어 있고, 이 ’스마트한 도서관’들은 각각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책을 선정하여 독자들은 세상과 사회를 다르게 바라보는 책들을 담은 ‘생각’,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소개하는 ‘다른 삶’,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모든 일상의 바탕을 다루는 ‘몸’, 자연과 만나는 ‘숲’까지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주제를 만날 수 있다. 이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다보면 자연스레 사회 혁신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생각, 다른 삶, 몸, 숲의 네 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세부 주제는 주기적으로 바뀐다. ‘다른 삶’ 도서관의 지난 테마는 ‘주거’, ‘저성장시대에 일하는 방법‘, ’달라진 시대에 여행하는 방법’으로 지난 9월부터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난이도별로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 소개해, 독자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불량헬스’, ‘달리기’, ‘술’ 등을 다뤄온 ‘몸’ 도서관은 다음 테마에서 환경정의단체와 함께 가습기와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조명한다.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일상 전반을 건강하게 꾸리는 것도 ‘몸’ 테마에 포함된다고 여겨서다.
 
또한 ‘다른 삶’ 도서관과 ’몸’ 도서관에서는 그래픽디자인 측면에서도 주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각디자인 전시를 병행하고 있다. 미술관 같은 도서관인 셈이다. ‘다른 삶’ 도서관에서는 2016년 9월 봄알람 출판사에서 제작한 원형 이미지들을 함께 전시해 페미니즘의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을 상쇄했다.

특별한 도서관을 위한 특별한 공간

‘숲’ 도서관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숲’ 도서관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 사진: 임준영. 설계자: 심희준, 박수정(건축공방) 비파크 도서관은 컨텐츠뿐만 아니라 건축적 외양에도 신경을 썼다. 건축공방 스페이스 통에서 디자인을 맡았고, 이미 아름다운 외형으로 201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2017 독일 디자인 어워드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상을 수상했다. ‘생각’ 도서관은 바위들 사이에 핀 꽃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되었으며, 밤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 변한다.
 
‘다른 삶’ 도서관은 빨간 벽돌 건물 한쪽 벽에 노란색의 정육면체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얼핏 보면 마치 뭔가가 건물에 기생해 자라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실제로 들어가 보면 벽이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어 실제론 그렇지 않은데도 비뚤게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새롭다. 이와 달리 ‘몸’ 도서관은 공사 현장에서 허공에 발을 딛고 작업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강관비계’에 원색을 입혀 발랄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숲’ 도서관은 내부 전면이 거울로 되어있어, 가운데 심어진 나무가 반사되어 마치 숲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2015년 12월, 처음 개관 후 추운 날씨에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2016년 3월에 본격적으로 열었을 때, 사람들이 “여기 뭐하는 공간이냐”는 질문 공세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호기심 어린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가기도 한다고. 또한 주제의 변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는 야외에서 계절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삶’ 도서관 앞에는 책을 볼 수 있는 야외 테이블이 있고, ‘생각’ 도서관에서 밖을 보면 숲이 연출하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야외도서관 컨셉, 불편함이 없도록

건강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몸’ 도서관 건강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몸’ 도서관 | 사진: 임준영. 설계자: 심희준, 박수정(건축공방) 하지만 야외도서관이다 보니 날씨나 외부 온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면 ‘몸’ 도서관은 입구가 열려있어 비가 오면 들이치기 때문에 운영할 수가 없다. 또한 냉난방 시설은 ‘생각’ 도서관에만 갖춰져 있어서 너무 덥거나 추우면 열 수가 없다. 습기 때문에 한 달 이상 진열하면 표지가 뜨고, 벽 틈새로 물이 들어와 책이 젖기도 한다. 또한, 공간이 작고 전시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오래 앉아서 책을 읽기에는 다소 불편했다. 그래서 서울혁신파크의 본관인 미래청 2층의 ‘오픈 스페이스’에 야외도서관에 전시한 도서들을 똑같이 비치해 오래 책을 읽고싶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미래청으로 들어와 또다른 사회혁신 현장과 마주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렇게 비파크는 시민들이 새로운 책을 읽거나 재미난 시각물도 보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연을 느끼며 쉬어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담당자 정지혜 씨는 “하루는 문을 닫으러 가는데 노을이 지고 있는 도서관 입구에 아이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서 그림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책을 고르면서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보게 되니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하고 이야기했다. 비파크로 인해 시민들의 일상에 작은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