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아킨 감독 현실이라는 맥박 위를 달리는 폭력과 감정

‘인 더 페이드’ 촬영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파티 아킨과 디아네 크루거
‘인 더 페이드’ 촬영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파티 아킨과 디아네 크루거 | 사진(부분): © 워너브라더스 독일

파티 아킨의 영화들은 주로 다양한 문화들 간의 만남을 다루고 있고, 그러다 보니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빈번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경계 넘나들기’는 비단 지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킨의 작품들은 당찬 에너지를 발산하며 짙은 사실성을 드러낸다.

‘천국의 가장자리(The Edge of Heaven)’로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지 10년 만에 파티 아킨은 다시금 이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자신의 신작을 세상에 선보였다. 극우 테러조직 NSU의 스토리를 그린 아킨의 작품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은 디아네 크루거(Diane Kruger)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아쉽게도 작품상은 루벤 외스트룬드(Ruben Östlund) 감독의 ‘더 스퀘어(The Square)’에 돌아갔다. 하지만 파티 아킨이 황금종려상을 둘러싼 국제 경쟁에 참여한 몇 안 되는 독일 감독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 더 페이드(In the Fade)’는 폭탄 테러로 터키 출신의 남편과 아들을 잃은 젊은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수사가 진행되던 중 젊은 네오나치 커플이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남편과 어린 아들을 잃은 주인공은 자기 손으로 그 비극에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참고로 ‘인 더 페이드’는 디아네 크루거의 출연작 중 독일어로 제작된 최초의 작품이다. 한편 아킨은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법치국가적 측면뿐 아니라 도덕적 의미에서도” 진실과 정의를 논하고 싶었고, 이 두 개념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자의적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문학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굿바이 베를린(Tschick, 2016)’에 이어 아킨은 이번에도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인 하르크 봄(Hark Bohm)과 함께 작업했다. 이번이 두 번째 공동 작업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이 분야에서 실무 경험도 있는 봄은 특히 법정 장면들의 사실 고증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문제 지역에서 태동된 맥박

1998년 데뷔작 ‘쇼트 샤프 쇼크(Short Sharp Shock)’로 화려한 등장을 알린 이후 아킨은 늘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충돌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찍어왔다. ‘인 더 페이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터키 출신 이민자로 함부르크에 정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킨에게 있어 다양한 문화의 만남과 충돌은 그야말로 ‘인생 테마’라 할 수 있다. 1973년 8월 25일에 출생한 아킨은 사회적 문제가 끊임없이 들끓는 지역에서 성장했고, 청소년 시절 폭력과 방황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한 성장 배경 속에서 아킨의 영화만이 지니는 당찬 에너지가 탄생한 것이다. 아킨은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지만, 터키 출신 범죄자 역할에 이골이 난 뒤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한다.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나 ‘비열한 거리(Mean Streets)’ 등에서 영감을 얻은 아킨은 이와 유사한 소재들이 자신의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깨닫는다. 아킨의 영화는 언제나 감독 자신이 관찰한 사실과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높은 사실성과 고밀도의 진실을 전달한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독일 극장가를 강타한 힘도 바로 이 안에 있다.

대립이 아닌 접근과 화해

현실 고찰과 영화사 탐구를 통해 기초를 다진 독학생 아킨의 초기 영화들은 충동적이고 거친,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첫 번째 대작이라 할 수 있는 ‘미치고 싶을 때(Head-On, 2004)’에서는 시선을 사로잡는 미장센들을 연출함으로써, 독일계 터키 여성 시벨(시벨 케킬리)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엄격한 터키 가정의 전통과 이 갈망과의 충돌을 생생히 재현해낸다. 극중에서 시벨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파괴되어 버린 차히트(비롤 위넬)라는 남자와 전략적 결혼을 감행하는데, 그 속에서 두 사람 모두를 구원해 줄 힘이 생긴다. 아킨의 영화는 독일과 터키를 오가며 촬영을 하는 덕에 관객들에게 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아킨은 종교나 국적 간의 대립이 아닌 만남과 화해를 추구한다.
 
 
2004년 개봉한 ‘미치고 싶을 때’는 ‘사랑, 죽음 그리고 악마’라는 3부작 시리즈의 제1편이다. 그 후속작은 2006년에 촬영을 시작해 2007년에 개봉한 ‘천국의 가장자리’이다. 보다 새롭고 사려 깊으며 관조적인 톤으로 연출된 이 영화에는 독일과 터키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서로 다른 세상을 오가는 여섯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비극적 사건이나 갈등이 죽음으로 치닫는 사태에 직면해서도 서로에게 다가가며 껴안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서로 만나고, 일마즈 귀니(Yilmaz Güney) 감독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터키의 전설적 배우 턴셀 커티스(Tuncel Kurtiz)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감독이 배출한 독일의 스타 배우 한나 쉬굴라(Hanna Schygulla)의 조우도 이루어진다.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투하는 크로스오버 콘셉트는 이렇게 아킨이라는 ‘총체적 시스템’ 전체를 관통한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OST는 영화 시작 때부터 특별한 호흡과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스크린에 녹아들고, 스토리 라인과 대사들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리듬적, 감각적, 서사적 힘이 생성된다. 펑크에서부터 터키 민속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골고루 활용한다는 점 역시 경계 허물기 작업에 알게 모르게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독일과 터키의 관계

극영화를 찍는 중간 중간에 아킨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눈길을 돌린다. 자신의 부모님이 독일로 이주하게 된 과정을 추적한 ‘독일에 대해 생각하다 – 우리는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렸다(Denk ich an Deutschland – wir haben vergessen zurückzukehren, 2001)’, 독일 가수 알렉산더 하케(Axel Hacke)가 이스탄불로 가서 터키의 음악계를 탐사하는 과정을 담은 ‘이스탄불의 소리(Crossingthe Bridge – the Sound of Istanbul, 2012)’, 흑해 주변에서 일어난 환경 문제 스캔들을 다룬 ‘에덴동산의 쓰레기(Polluting Paradise, 2012)’ 등이 그 작품들이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결합, 가까운 것과 먼 것의 배합은 독일과 터키의 관계를 바라보는 아킨의 비판적인 시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남유럽 사회의 폭력적 마치스모의 필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소외된 쿠르드 소수민족에 관해 이야기할 때,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더 컷(The Cut, 2014)’을 통해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논할 때 등 아킨은 이러한 결합과 교차를 통하여 중간자 역할을 한다.
 

가장 큰 적은 쳇바퀴

쳇바퀴 같은 일상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아킨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의도적 불안정성’ 속으로 뛰어들며 자신의 시각을 재정비하고 깨어 있는 관점을 유지한다. 열 번째 장편영화인 ‘굿바이 베를린’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 작품에서 아킨은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감행한다. 이미 다른 감독 하에 제작팀 대부분이 구성된 상태에서 받은 감독 제안에 응한 것도, 십대들의 관점에서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간 것도 처음이다. 더 나아가 아킨은 시드(SEEED), 프락투스(Fraktus), 비트스테이크(Beatsteaks), 리처드 클레이드만(Richard Clayderman)의 음악을 아우르는 OST를 채택함으로써, 스토리가 활기 넘치는 드라이빙, 로큰롤 비트, 수면 아래를 채우는 멜랑콜리한 분위기 사이를 넘나들도록 한다. 또한 인지의 직접성과 불안정성, 경솔함과 무모함의 측면을 거장다운 탁월함으로 그려냄으로써,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삶의 감정들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