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도큐멘타 전시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치적 색을 담은 전시회

‘책의 파르테논’, 제14회 도큐멘타 전시회
‘책의 파르테논’, 제14회 도큐멘타 전시회 | 올라프 코진스키, 2017-06-07. 올라프 코진스키의 ‘책의 파르테논-5’(부분)CC BY-SA 3.0 DE

카셀에서 다시 한 번 도큐멘타 전시회가 개최된다. 이번이 14번째를 맞는다. 4월에 아테네에서 시작된 국제 전시회가 그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카셀로 옮겨 온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치적 색을 담은 제14회 도큐멘타  전시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학생들이 20개의 거대한 하수도관들을 주거 공간으로 둔갑시켰다. 크레인을 이용해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앞에 설치한 것인데, 그 중 어떤 파이프는 욕실로, 어떤 파이프는 수면 공간으로, 어떤 파이프는 개집으로 활용된다. 수 미터 높이에 달하는 히와 케이(Hiwa K)의 이 설치미술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의 표정은 이내 진지해진다. 이라크 쿠르드 출신의 아티스트 히와 케이의 이 작품이, 비록 작가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무언가를 강렬히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프로 만든 이 호텔은 배를 타고 아테네 항구로 떠밀려 와 바람과 악천후를 피해 거처를 찾던 난민들을 연상시킨다. 히와 케이 자신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도큐멘타 전시관 지하층에 설치된 기예르모 갈린도(Guillermo Galindo)의 작품도 파격성 면에서 히와 케이의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 곳에는 두 동강이 난 선체가 천장에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내 멕시코 출신의 이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대탈출을 감행했다가 결국 차가운 바다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수천 명의 난민과 그러한 난민들을 추방하려는 당국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제14회 도큐멘타 전시회의 예술 총감독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추구하는 바도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난민들이 겪는 불안 앞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어 온 것들을 내던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심칙은 펜과 수첩을 들고 자신의 말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기자들을 향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깨달음을 주는 것이야말로 이번 전시회를 관통하는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총괄 큐레이터인 보나벤투어 소 베젱 디쿵(Bonaventure Soh Bejeng Ndikung) 역시 “우리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안은 폭력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라고 말하며 아티스트들에게 “저항정신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무너져가고 있는 세상을 위한 예술

무너져가고 있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신자유주의가 다시금 기반을 다지고 있고, 민족주의가 새로 고개를 들며,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트럼프나 에르도안, 푸틴 같은 권력자들이 무자비한 권한을 행사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곳곳에서 끔찍한 테러까지 자행되고 있는 이 시대를 목도하며 예술은 어떤 질문을 제기하고 어떤 답변을 제시해야 할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16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카셀 시내 30여 개의 장소에서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장은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다. 그러니 모든 작품들을 둘러보고 싶다면 일단 튼튼한 신발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아테네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들의 초청전에서부터 시내 곳곳의 미술관, 광장, 공원 등지에서의 전시에 이르기까지 도큐멘타 전시회가 도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영화관, 지하도나 대학의 건물도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한때 골칫거리였던, 카셀 북구에 위치한 중앙우체국 구청사 역시 전시공간으로 개조되어 활용되고 있다.

‘안전이 불안감을 조성한다’

터키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 바누 제네토글루(Banu Cennetoglu)는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입구에 새로운 로고를 새겨 넣었다.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이라는 문구를 ‘Being Safe is scary(안전이 불안감을 조성한다)’라는 문구로 대체한 것이다. 해당 문구는 쿠르드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반정부운동가였던 구르베텔리 에르소즈(Gurbetelli Ersöz)가 떠오르게 만든다.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옆으로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을 본뜬 전시물이 자리하고 있다. ‘책의 파르테논(Parthenon of Books)’이다. 작품의 뼈대인 철근 구조물을 감싼 것은 콘크리트나 돌덩이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금서들이다. 카셀을 찾은 관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타 미누진(Marta Minujín)의 이 작품은 금번 미술전에 출품된 모든 작품들 중 가장 인기 있는 피사체로 부상하고 있다.

인공 연기에 놀란 주민들의 신고

혼란을 야기하는 작품도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아티스트 다니엘 크노르(Daniel Knorr)의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크노르는 금번 도큐멘타 전시회가 아테네에서 신호탄을 쏘아 올리던 날부터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꼭대기의 고풍스러운 정취를 가득 담은 츠베렌 타워를 굴뚝 삼아 새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원래 소방서에서 활용하는 훈연발생기 다섯 대를 투입해서 ‘날숨 운동(Expiration Movement)’이라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크노르에 따르면 연기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실제로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나 나치가 금서들을 불태울 때 등 중대한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봉화가 ‘뉴스 전달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 가짜 연기를 보고 불이 난 줄 착각한 카셀 시민들이 앞다투어 소방서로 신고전화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이제는 신고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출품작들 중에는 메시지가 모호한 것들도 있다. 장황하거나 복잡한 구조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아티스트 브리타 마라캇-라바(Britta Marakatt-Labba)는 양털로 수를 놓은 작품을 통해 소수민족 사미족의 역사를 파노라마로 표현했는데, 낙원에서 추방당한 사미족의 삶을 시적인 감각과 장인정신으로 승화시킨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주 출신의 아티스트 고든 후키(Gordon Hookey)의 작품은 또 완전히 다르다. 후키 역시 자신이 속한 호주 토착민 와니족(Waanyi)이 식민 시절에 당했던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지만, 카셀 북구에 위치한 우체국 구청사의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그의 벽화 ‘머릴랜드(Murriland)’의 알록달록한 외침은 브리타 마라캇-라바의 작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퍼포먼스와 영상이 대세

이번 도큐멘타 전시회는 그림이나 조각작품의 비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빈자리는 퍼포먼스나 행위예술들이 채우고 있다. 영상과 설치미술과 기록물이 복합된 형태의 작품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91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루마니아의 여성 아티스트 게타 브라테스쿠(Geta Bratescu)의 작품이 그 예이다. ‘정신자동증(automatism)’이라는 브라테스쿠의 짧은 시퀀스영상 속 남자 주인공은 칼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가림막을 차례로 찢는다. 그러다 갑자기 가림막 대신 사람이 등장하지만, 남자는 그 사람마저 칼로 그어버린다.

팔레스타인의 여성 아티스트 아흘람 시블리(Ahlam Shibli)의 사진들은 난민 사회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연작 사진들로 구성된 시블리의 작품 ‘고향(Heimat)’은 동유럽에서 추방당한 독일인들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있다. ‘고향’은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스토리는 불분명하다. 태국의 아티스트 아린 룽장(Arin Rungjang)의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에서도 주인공들이 베를린 역사를 탐구하는 여행길에 오르지만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흘람 시블리의 작품과 유사하다.

미국의 영화제작자 벤 러셀(Ben Russel)은 칠흑처럼 캄캄한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의 카타콤으로 관람객들을 안내한다. 거기에는 기록영상 설치물인 ‘굿럭(Good Luck)’이 상영되고 있고, 관객들은 그 속에서 세르비아의 구리광산이나 아프리카의 금광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엿본다. 관람객들 중에는 어쩌면 그곳에서 얼른 벗어나 미국 아티스트 올루 오귀브(Olu Oguibe)의 오벨리스크 형태의 작품을 빨리 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쾨니히 광장 한가운데에 16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오귀브의 탑에는 ‘나는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나를 받아들였다.(I was a stranger – and you took me in)’라는 문구가 황금색으로 새겨져 있다.

베르트람 힐겐(Bertram Hilgen) 카셀 시장은 제14회 도큐멘타 전시회의 관람객수가 기존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내다본다. 아테네에서 개막된 전시회가 카셀로 옮겨오던 날, 개막 행사에 몰려든 기자들만 2천 명에 달했다. 지난번 도큐멘타 전시회의 관람객수는 약 86만 명이었다. 관계자들은 오랜만에 정치적 색을 가득 담은 금번 전시회가 ‘백만 고지’를 돌파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큐레이터 파울 B. 프레시아도(Paul B. Preciado)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빗대어 “이번 전시회가 ‘미술관 농장’에 대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