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오브 더 이어
올해의 우승자는?

한국의 '진조', 2010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한국의 '진조', 2010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 Conanwhitehouse

힙합이 성장했다. 이제 독일에는 원래 미국에서 유래한 이 서브컬처를 대표하는 정치 정당까지 존재한다. 당명은 ‛도시당(Die Urbanen)‘이다. 독일은 27년 전부터 최고의 비보이를 뽑는 대회 ‛배틀 오브 더 이어 ‘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이 대회가 에센에서 열린다.

땅에 머리를 박고 몸을 빙빙 돌리는 위험천만한 곡예처럼 보이는 브레이크 댄스, 비보잉이라고도 불리는 이 춤은 소수자의 춤, 거리 예술, 저항, 쇼가 아닌 진정한 결투, 배틀이다. 해마다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브레이크 댄스 대회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가 올해는 10월 21일 에센의 그루가할레에서 우승자를 뽑는다. 초기부터 이 대회를 이끌었던 사람이 토마스 헤르겐뢰터(Thomas Hergenröther)이다. 그가 배틀 오브 더 이어를 창설했다. 나쁘게 말하면 하나의 서브컬처를 스포츠 종목으로 만든 셈이고, 좋게 말하면 전 세계의 비보이와 비걸들에게 헌정하는 경쟁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대회에서 독일이 2000년도 베를린의 '플라잉 스텝스(Flying Steps)' 가 우승한 이래 더 이상 우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는 예외 없이 프랑스와 한국,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이 왕좌를 나누어 차지했다. 토마스 헤르겐뢰터에게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쇼와 팀워크에 관해서라면 일본 선수들은 일단 완벽주의자"라서 6 분 간 펼쳐지는 무대에서 까다로운 심사위원들에게 자기들의 기술을 확실히 어필한다. "'플로리오르즈(Floorriorz)'라는 일본팀이 지난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이제 3년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인 것이, 이 팀은 힙합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그저 몸만 휘적거리며 빙빙 도는 데 그친다면, 우승은 절대 기대할 수 없다.“ 
 

  • 프랑스의 '배가본즈(Vagabonds)', 2011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BOTY
    프랑스의 '배가본즈(Vagabonds)', 2011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일본의 '플로리오르즈(Floorriorz)', 2016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모리스 반 더 메이즈
    일본의 '플로리오르즈(Floorriorz)', 2016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한국의 '갬블러즈', 2004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Six-Step
    한국의 '갬블러즈', 2004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한국의 '진조', 2010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Conanwhitehouse
    한국의 '진조', 2010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 독일 바트 외인하우젠 출신의 '래스트 액션 히어로스(Last Action Heroes)' © Six-Step
    독일 바트 외인하우젠 출신의 '래스트 액션 히어로스(Last Action Heroes)'
  • 1990년 국제 브레이크 댄스 컵(International Breakdance Cup) 포스터 © Six-Step
    1990년 국제 브레이크 댄스 컵(International Breakdance Cup) 포스터

1989년과 그 이후

독일은 오히려 27년 전의 모습이 더 흥미롭다. 당시 동서독 양측에서 철의 장막이 무너졌다. 동독에서 힙합은 서쪽의 퇴폐문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몇몇 고위당원들은 이 춤을 미국 내 빈민촌화 및 빈곤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으로 이해했다. 그들에게 이것을 알려준 이는 칼립소의 왕으로 유명한 미국의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인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였다.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공언했던 그는 동베를린을 자주 방문했는데, 1984년에는 미국 영화 ‛비트 스트리트(Beat Street)’의 공동 프로듀서로 입국했다. 이 영화는 동독에서 '브레히탄츠(Brechtanz)'라고 불린 브레이크 댄스를 국가 공연 관리국 쪽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곧 ‛국제 친선(Völkerfreundschaft)’ 청소년클럽하우스에서 제 1회 라이프치히 브레이크 댄스 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 주창자인 디터 비트너(Dieter Bittner)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고위층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벨라폰테는 투쟁가였다. 그가 손 댄 것이라면 좋은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영화 '비트 스트리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본주의 국가가 흑인들을 얼마나 형편없이 다루는지를 보여 주기 원했지만, 사회주의 천국의 청소년들은 댄스 자체와 운동화, 트레이닝복, 대형 휴대용 플레이어 등에 주목했다.
 
2017년 브레이크 더 플로어(Break The Floor), '갬블러즈' 대 '진조'의 결승전

동독 대 서독

헤르겐뢰터는 디터 비트너보다 한참 더 젊은 서독의 힙합 전문가였다. 같은 해인 1984년 청소년 잡지 ‘브라보(Bravo)’는 시대정신에 주목했고, 영화 ‘비트 스트리트’의 성공에 힘입어 슈투트가르트에서 최초의 전국 힙합 대회를 개최했다. '다이내믹 프리징 크루(Dynamic Freezing Crew)'는 사실 독일 팀이었으나 원래 출신국은 터키이다. 전형적인 서구적 양상이다. 당시 하노버에서 인기를 끈 팀은 '버닝 무브스(Burning Moves)'였는데, 헤르겐뢰터도 여기에 속했다. 그는 민족주의를 싫어한 만큼 세계 브레이크 댄스 대회라는 꿈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가 주최한 최초의 대회는 동독 대 서독의 양상을 띠었다. 네 개의 지역 예선이 먼저 열렸는데, 북부 독일 지역은 뮌스터에서, 구동독 지역은 드레스덴에서, 남부 독일 지역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그리고 베를린 지역은 별도의 자체 예선을 치렀다. 결승전은 1990년 하노버에서 개최되었다. 당시에는 베를린팀 ‛브레이크 댄스로 인한 죽음(Tod durch Breakdance)’이 우승했다.
 
2017년 배틀 오브 더 이어, 독일 결승전

독일, 프랑스, 미국, 아시아

헤르겐뢰터에게는 국제 브레이크 댄스 대회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모범 사례도, 경쟁으로 삼을 만한 대회도 없었다. 1997년 '스타일 엘레먼츠(Style Elements)'가 미국팀으로는 처음 우승할 당시 팀 멤버 가운데 포 원(Poe One)이라는 댄서가 있었는데, 그는 8년 뒤인 2005년 배틀 오브 더 이어 대회를 로스앤젤레스로 가져갔다. 러시아의 디제이 호보트(DJ Hobot)는 이미 2001년 모스크바에 배틀 이벤트를 정착시킨 상태였다. 같은 해 한국과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도 대회가 열렸다. 이들보다 더 빨리 시작한 곳은 도쿄였다. 먼저 국가 예선이 도입되었고, 나중에는 지역예선 방식이 도입되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우승한 팀은 우선 2017년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 예선을 치러야 하는데, 세네갈과 레위니옹도 참가한다. 모든 우승팀은 에센의 결승대회 참가 자격을 얻는다.
 
그럼 올해의 우승자는 누구일까? 헤르겐뢰터가 하노버에 있는 식스 스텝(Six-Step)이라는 자신의 대회조직 사무실 사람들에게 물어 본다. "멋진 휴양도시 바트 외인하우젠 출신의 '래스트 액션 히어로스(Last Action Heros)'"를 꼽는 목소리가 뒤에서 여럿 들린다. "그들은 휴양객이 아니다.“ 헤르겐뢰터가 설명한다. "그 팀은 베를린의 '플라잉 스텝스'의 훈련을 받는데, 우리가 후진 양성 차원에서 키즈 배틀을 새로 도입한 후로 신진 크루 카테고리에 속하는 팀이다." 이렇듯 14, 15세의 댄서들은 별도의 대회에 참가하는데, 이들은 벌써 제 3세대 비보이들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선호하는 팀은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의 대답은 "한국"이다. 이제 한국팀이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