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를 위한 국제 플랫폼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에 출연한 한국 여배우 문근영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에 출연한 한국 여배우 문근영 | 사진: 준필름/리틀빅픽처스/신수원

부산의 가을은 매년 영화로 물든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풍부한 감정과 특별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영화의 세계에 열흘 동안 흠뻑 빠져든다. 영화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필수 코스로 자리 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 지금부터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2017년 스물두 돌을 맞이한 아시아의 대표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017년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매년 수백 편의 신작들이 소개된다. 2017년에는 76개국으로부터 300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그 중 99편은 이 곳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특히 독립적 장르라 할 수 있는 작가주의 영화들에게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작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 할 수 있다. 정식 상영관에서 개봉하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국내작뿐 아니라 외국 작품에도 공공연히 적용되는 무언의 원칙이다. 극장을 찾는 한국 관객들이 적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요즘 영화계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이른바 ‘돈이 되는’ 영화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 상영관에 걸리는 작품들 중 한국형 대규모 블록버스터들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영화사랑은 수많은 작품들이 사전에 매진 사례를 보이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명확히 입증된다.

부산과 베를린의 밀접한 관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면 불어권 및 영어권 언론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부산국제영화제가 프랑스의 칸영화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와의 관계도 이에 뒤지지 않는 긴밀함을 자랑한다. 최근 들어 부산영화제 측은 베를린영화제의 큐레이터들에게 공로상을 거듭 수여했다. 베를린영화제의 ‘파노라마’와 ‘포럼’ 부문에 한국 영화들이 초청된 것에 대한 감사와 인정의 의미였다. 이에 따라 2015년에는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의 집행위원장인 빌란트 슈펙(Wieland Speck)이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포럼 부문 집행위원장 크리스토프 테레히테(Christoph Terhechte)가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뿐 아니라 10월 부산에서 공개되는 영화 몇 편이 이듬해 2월 베를린에서 다시 상영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칸이나 베네치아 영화제에 비하여 베를린영화제나 부산영화제는 칸이나 베네치아 영화제와는 다르게 유명인들보다는 일반 대중들이 많이 참여하는 영화제로 잘 알려져 있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한국영화공로상’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프 테레히테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한국영화공로상’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프 테레히테 |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거쳐온 여정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약 170편의 출품작으로 그 서막을 올렸고, 그 후 꾸준히 성장일로를 걸어왔다. 그 뒤에는 10년 이상 아시아 영화 부문을 책임지고 이끌어오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장’으로 불리던 김지석 부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노고가 숨어 있다. 안타깝게도 김 부위원장은 2017년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제 위원장으로 지명된 지 반 년 만의 일이었다. 2014년에는 영화제 컨셉을 둘러싸고 논쟁이 붉어졌다. 당시 영화제 지휘부는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4월 비극적으로 침몰한 세월호를 주제로 한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쏟아지는 맹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결국 다이빙벨의 상영을 강행한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음해 정부지원예산의 50%를 삭감당했고, 이에 각국 영화계 및 영화제 관련 인사들은 한국 정부의 결정에 저항하는 의미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2017년에도 갈등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듯했다. 유명 감독들이 한국의 영화 관련 협회들의 제안에 따라 영화제 불참을 선언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은 그 이전 해에 비해 예매율이 17%나 상승했다는 점을 들며 영화제의 성공을 확신했다. 홍콩-중국계 스타 감독 오우삼(John Woo)과 일본의 유명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Hirokazu Koreeda)의 참석으로 주최측의 주장에는 더 큰 힘이 실렸다.

비평의 매개체로서의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여러 개의 카테고리들로 구성되는데, 영화제측은 영화계의 최근 트렌드를 소개하는 임무와 더불어, 한국의 영화사를 써내려간 고전 작품들을 널리 홍보하는 작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이에 발맞추어 국가적 문화자산이라 할 수 있는 영화들의 지속가능한 보관과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선택한 회고전의 주제는, 무려 500여 편에 출연하는 기염을 토한 한국의 전설적 영화배우 신성일이었다. 신성일 회고전 상영작들 중 후궁과 궁중내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른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다룬 ‘내시(1968)'와 대담한 추리물 ‘장군의 수염(1968)', 이 두 편은 감정 라인의 냉철한 표현과 사회비판적 주제로 인해 더더욱 돋보이는 수작들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꽃은 아마도 여러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상영되며 경쟁 부문에서 서로 각축을 벌이는 아시아 영화들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크고 작은 규모의 작품들도 나름 큰 목소리를 내며 축제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2017년에는 예컨대 파티 아킨(Fatih Akin)의 신작 ‘인 더 페이드(In the Fade)’가 상영되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주연 여배우 다이앤 크루거가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작품이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의 특징은 출품작 대부분이 사회비판적, 현실비판적 시각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아웃사이더’가 전면으로 부각된 영화, 자기만의 대안적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사회의 뒷전으로 물러난 사람들을 조명한 영화, 가난 혹은 다름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들로 영화제의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한편 사상 최초로 여성이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여배우 강수연이 그 주인공인데, 여성 시나리오작가들의 높은 참여율 역시 아마도 이 덕분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과 대만의 실비아 창 감독의 폐막작 ‘상애상친(Love Education)’ 역시 모두 다 여성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들이었다. 이 외에도 여성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들이 초청되었다는 점 역시 매우 고무적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들에게 있어 국제적인 무대를 제공하는 지렛대이자 버팀목이다. 함께 모여 사는 우리네 삶의 형태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영화들이 주축을 이루는 부산국제영화제. 이 영화제는 흥미와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동시에 삶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정치적 논의를 자극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