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포 원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독일인들이 가장 즐겨 보는 영국 촌극

제야의 밤에 독일인들이 ‘딘너 포 원’을 시청하는 것을 즐기다
제야의 밤에 독일인들이 ‘딘너 포 원’을 시청하는 것을 즐기다 | 사진(부분): Siegfried Pilz © picture alliance/United Archives

해가 바뀔 때면 독일의 TV 채널들이 아주 특별한 저녁식사에 집중한다. 흑백 화면 속에서 네 단계 코스 요리의 식사가 진행된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디너 포 원'. 독일인들은 12월 31일 이른 저녁부터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TV를 시청하며 집사 제임스의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에 폭소를 터뜨린다.

셰리, 화이트와인, 샴페인, 포트와인은 ‘디너 포 원(Dinner for One)’에서 꽤나 비중 있는 조연들이다. 이 음료들에 비해 미스 소피(Miss Sophie)의 접시 위에 놓이는 음식들은 조명을 덜 받아왔다. 디너 포 원의 오랜 팬임을 자청하는 이들 중에서도 아마 미스 소피의 생일파티 식탁에 오르는 요리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미스 소피의 생일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집사 제임스가 어떤 음식을 서빙하고, 치우고, 카펫의 호랑이 머리에 발이 걸릴 때마다 날리는 것인지 알아보자.

첫 번째 코스: 수프

전채요리는 멀리거토니 수프이다. 미스 소피가 즐겨 먹는다는 요리이다. 멀리거토니 수프는 인도 타밀 지방에서 유래한 요리로, ‘매운 물’이라는 뜻을 지닌 수프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지배자들은 입에서 불이 날 듯한 이 요리를 인도 남부에서 영국으로 가져왔다. 당시 영국식 수프들은 야채 위주의 수프였다. 어느덧 영어권에서는 ‘멀리거토니’라는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데, 카레를 베이스로 하는 매운 맛의 멀리거토니 수프에 치킨이나 양고기를 첨가하는 등 내용은 다양해졌다. 대파, 당근, 크림, 샬롯 등 유럽의 대표적인 식재료들도 많이 추가되었고, 망고, 생강, 파인애플, 코코넛밀크, 카레향신료 믹스 같은 이국적인 재료들도 가미되었다. 걸쭉한 수프에 톡 쏘는 맛을 더하기 위해 화이트와인이나 레몬즙을 첨가하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집사 제임스가 똑바로 걸을 수 있다. 제임스는 수프와 함께 곁들일 고급 셰리주를 멋진 자세로 다섯 잔에 따른다. 잔들은 금세 모두 비워진다.

두 번째 코스: 생선요리

두 번째 코스는 북해에서 잡아 올린 해덕 요리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생선인 해덕은 영국에서 대개 튀겨서 ‘피쉬 앤 칩스’ 요리로 먹는데, 국물에 익혀서 요리하기도 한다.
디너 포 원에서 나오는 해덕 요리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저녁식사 풍습에 따르면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중간에 나오는 메뉴로, 타는 듯 매운 수프를 먹은 뒤 얼얼해진 미각세포들을 달래기에 매우 적절하다. 미스 소피는 생선살의 부드러운 맛을 살려줄 가벼운 소스와 함께 요리를 즐기려 할 것이다. 녹은 버터에 레몬즙이나 부드러운 맛의 겨자 소스를 더하면 해덕 요리는 더욱 완벽해진다. 취향에 따라 신선한 파슬리나 딜 같은 향신료를 첨가하기도 한다. 미스 소피는 생선요리에 어울리는 화이트와인을 주문한다. 집사 제임스는 병에 담긴 와인을 잔들에 무사히 따른 후 직접 마신다.

세 번째 코스: 치킨요리

이제 오늘의 메인요리가 나올 차례이다. 오븐에 구운 치킨은 가슴살부터 다리까지 골고루 잘 익었다. 황금빛의 고운 밀가루들이 치킨의 표면과 잘 결합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 굽는 시간의 3분의 2지점에서 고기를 오븐에서 꺼내어 가슴살과 다릿살에 구이용 소스를 골고루 잘 발라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체에 거른 고운 가루들을 그 위에 잘 뿌려준다. 그리고 원하는 강도의 색이 될 때까지 위 과정을 10분마다 반복한다. 가니쉬로는 구운 햇감자가 좋다. 햇감자 위에는 구이용 소스를 끼얹는다. 마지막으로 요리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1-4잔의 톡 쏘는 샴페인이다. 집사 제임스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위태롭게 잔들에 샴페인을 따른 후 모두 들이켠다.

네 번째 코스: 과일샐러드

이 정도면 손님들의 시장기가 충분히 가셨을 듯하다. 각종 과일이 담긴 접시가 식탁 위에 오른다. 엄숙한 식사 자리에 참가한 이들의 식도와 위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메뉴이다. 과일 그대로 올릴 수도 있고, 취향에 따라 특별한 향기와 달콤함을 더하는 꿀을 넣어 만든 과일샐러드를 올릴 수도 있다. 미스 소피는 저녁식사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포트와인 한 잔을 마시고 싶어 한다. 제임스는 여주인의 주문에 재깍 반응하고 싶어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포트와인을 고를 때에는 와인의 품질과 보틀링 연도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야 잔이 넘어지면서 쏟아진 루비빛의 와인을 다시 와인잔으로 옮겨 담더라도 훌륭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포트와인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접시가 비었다. 와인병들도 비었고, 미스 소피는 손님들에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오늘의 성대한 생일파티가 끝났음을 알린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미스 소피는 든든한 집사 제임스의 호위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이 모습이 TV로 흘러 나오고 있는 독일의 거실은 모습일까? 탁자 위에는 스파클링와인이 준비되어 있고, 모두들 불에 녹인 납 조각이 어떤 모양으로 굳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자정이 되기 전 납점으로 이듬해의 운명을 점쳐 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매년 12월 31일에 방영되는 디너 포 원의 운명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장면의 대사대로 매년 변함없이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The same procedure as last year!”

 

디너 포 원

1963년 최초로 방영된 이 18분짜리 TV 프로그램은 오랜 세월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고, 세계적으로 방영횟수가 가장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북독일방송사(NDR)는 1972년 이 프로그램을 편성표에 다시 포함시켰고, 이후 매년 12월 31일에 방영하고 있다. 독일의 다른 공영 방송사들에게 있어서도 디너 포 원은 12월 31일 편성표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하인츠 둥크하제(Heinz Dunkhase) 감독이 연출한 이 프로그램에서 영국의 코미디배우 프레디 프린턴(Freddie Frinton)은 어설픈 집사 제임스 역할을 맡았고, 새침한 여주인 미스 소피는 메이 워든(May Warden)이 연기했다. 프로그램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90세 생일을 맞은 미스 소피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연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각종 요리들은 생일을 맞은 여주인에게만 제공된다. 하지만 코스별로 제공되는 와인들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손님들에게도 제공된다. 부재 중인 손님들의 잔에 담긴 와인을 비우는 것은 집사 제임스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제임스는 세상을 떠난 미스 소피의 친구들의 말투나 어조를 흉내 내며 미스 소피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이 촌극의 포인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취해 가는 집사 제임스가 네 번씩 반복되는 건배인사를 끝까지 제대로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카펫의 호랑이 머리에 계속 발이 걸려 넘어질 듯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대사는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처음에 나오는 하인츠 피퍼(Heinz Piper)의 안내 멘트만 독일어이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에서 방영되는 TV 프로그램들 중 독일어로 더빙이 되지 않은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 사이 디너 포 원은 국제적으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은 스칸디나비아와 다른 독일어권 지역에서도 방영되고 있고, 심지어 호주에서도 정기적으로 12월 31일에 방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