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Perfect 로스톡의 하늘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 사진(CC BY-NC-ND): 마이클 슈렝크/ 푸투어츠바이

크리스티안 베델이 현관 옆의 작고 동그란 모양의 금고 같은 것을 연다. 거기에는 12층 주택 옥상으로 가는 통로의 열쇠가 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지붕으로 몇 발자국 더 내디디면 가파른 사다리가 있고 마침내 목적지에 이른다. 안테나 기둥에 프라이펜 크기의 위성 안테나가 매달려 있고, 네온관등을 연상시키는 막대 안테나와 초콜릿 판보다 약간 더 크고 두꺼운 여러 개의 흰색 박스가 있다. 바로 로스톡의 오픈넷 이니셔티브 협회의 무선 공유기이다.
 
이 위에선 바르네뮌데까지 조망할 수 있는데, 그 곳에도 무선신호 중계기 하나가 지붕 위에 설치되어 있다. 여러 대학들이나 다세대 주택들, 발전소는 물론 인근 약 10개 마을의 단독 주택들에도 중계기가 설치되어 있다. 수십 명의 로스톡 주민들은 거기에 추가로 약 83유로짜리 무선 공유기를 창문에 매달았다. 이로써 자기 자신과 기타 협회 회원들, 나아가 주변의 공공 장소에까지 신호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사진(CC BY-NC-ND): 마이클 슈렝크/ 푸투어츠바이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사진(CC BY-NC-ND): 마이클 슈렝크/ 푸투어츠바이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사진(CC BY-NC-ND): 마이클 슈렝크/ 푸투어츠바이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사진(CC BY-NC-ND): 마이클 슈렝크/ 푸투어츠바이
    자유 통신 활동가 크리스티안 베델이 로스톡 상공에 있다.
시작은 11년 전이었다. 로스톡, 베를린, 바이마르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 거의 동시에 컴퓨터 매니아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시민 통신망을 구축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자유 통신 운동으로 합쳐졌다. 로스톡에서 일부 대학 종사자들과 학생들이 집과 달리 학교 인터넷 망이 훨씬 더 빠른 것에 불만을 가졌다. 왜 가정에는 느린 ISDN 서비스만 제공되고 빠른 DSL 접속망은 확장되지 못하는가? 곧 작업이 이루어졌고, 통신망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매니아들이 기업과 공공 기관의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그 곳 옥상 장치들을 설치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또 빠른 전송과 대용량 확보를 위해 대학 건물의 광섬유 케이블에도 접속을 시도했다.

더 빨리,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매주 월요일 저녁, 문화센터 프리다 23의 원목 테이블 앞에는 대부분 남성 구성원으로 이뤄진 모임이 열린다. 물론 지붕 바로 밑, 공유기 아주 가까이 에서다. 대부분은 20세부터 50세 사이의 컴퓨터 과학자들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오픈넷이 구축되기까지 2~ 3년이 걸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무엇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빠르고 합리적인 가격의 인터넷 접근이 힘들었습니다. ”
초창기 멤버인 39세의 컴퓨터과학자 마티아스 만케가 말한다.
 
이제 개인정보의 상업적 이용이나 정보기관에 의한 감시가 주요 화두가 되었다. 사실 거의 150명에 달하는 협회 회원들이 시내에 설치된 3개의 서버만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기 때문에 각각의 데이터를 정확히 누가 이용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유기용 소프트웨어도 오픈 소스여서, 당연히 어떤 기업도 정보가 탐지되어 나가는 뒷문을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직접 손에 쥐고 있어야 조정하는 힘을 되찾을 수 있죠. ” 만케가 전한다.

다른 자유 통신들과의 교류와 지원

여기에서 핵심 가치는 지식을 나누고 민주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스톡 협회는 자신들의 기술을 전세계가 볼 수 있도록 누구나 이용하고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위키에 공시한다. 또한 누군가 자유 통신 중계기를 구축하려 하거나 일상적인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에도 도움을 주고, 다른 지역의 유사한 프로젝트들도 지원한다. “10년 전에 뿌린 씨앗이 싹텄습니다. 이제 독일에는 100킬로미터 간격으로 어디에나 자유 통신망이 있습니다. ” 만케의 말이다. 이 자유 통신망의 섬에서는 인터넷이 추구하는 이상이 공유재산으로서 군림한다. 그러하기에 권력이 분산되고 아래로부터 조정되며 어떠한 위계질서도 상업적 착취도 없는 것이다.
 
“네트워크가 함께 성장하고 인터넷이 대형 공급자들로부터 독립하게 된다면 아주 좋은 일일 것입니다.“라고 34세의 컴퓨터 과학자 로베르트 발테마트는 꿈꾼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구조에도 이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상업적 공급자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데이터를 업로드하기보다 다운로드하기가 더 쉽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수동적 역할이 기술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반면에 시민에 의한 풀뿌리 문화적 서비스는 누구나, 받는 사람은 물론 보내는 사람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즉 수평적 관계의 네트워크가 가능한 것이다.

온·오프라인 상의 활동

오픈넷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환경과 세계 노동환경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생각한다. 모든 공유기들처럼 그들이 사용하는 공유기도 지금까지는 아시아의 부실한 환경에서 제조된다. 뿐만 아니라 희토류가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을 획득하는 데는 독성의, 일부는 심지어 방사성의 슬러리가 생겨난다.  그래도 오픈넷에서는 다수가 한 개의 장치를 공유함으로써, 총수량에서는 기존의 가계당 한 개의 공유기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더 적다. 태양이나 풍력을 이용한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 가능성보다 인력이 부족합니다. 물론 누군가 하려 한다면, 우리는 오픈 되어 있습니다. ” 만케가 말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서열 없이 서로 뒤섞인 네트워크, 이것이 여기 다락층의 이상이다. 여기에서는 거의 모두가 다른 활동에도 참여한다. 지역 통신 로로, 마을 공동체 협의회, 먹거리 연합, 농업 협동조합 등이다. “우리는 재분산이라는 큰 움직임의 일부입니다.” 로베르트 발테마트씨가 말한다. 또한 오픈넷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 사그라들지 않은 이유가 무엇보다 적극적인 행동가들이 늘 있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끊임없이 큰 부담을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제이든 그것을 떠맡을 사람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활동할 시간을 갖고 있는 크리스티안 베델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는 2년 전에 철학과 역사학 전공을 마치고 대학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그 외에 두 개의 IT행정직도 맡고 있는데, 그는 비단 몇몇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해낼 능력이 있는 듯하다. 지금도 오픈넷 관련 콘셉트를 개발하는 와중에 오픈랩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정기적 무료 워크숍 시리즈를 개최할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다음주엔 고층 건물 지붕 위에 새로이 올라가려고 한다. 거기에서 동료 한 명과 함께 새로운 무선 연결망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