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의 세계사
베를린 장벽 붕괴와 아시아

국제학술회의,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RICH)와 공동 주최. 2014년 11월 6일 - 8일

4591호 ©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청산재단, 우베 게릭 사진기록 25년 전 베를린 장벽은 붕괴되었고 전 세계는 당시 분단된 독일의 가장 큰 도시 베를린을 주목하였다. 1년 후인 1990년 독일은 통일이 되었다. 그 당시 아직 동구권과 서구권으로 나눠졌던 때에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가? 독일 밖의 무엇이 독일의 통일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가능케 하였을까? 무엇보다도 1989년 중국의 6.4 천안문사건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학자들은 장벽 붕괴와1989년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고, 아시아적 관점에서 다시 한번 재평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얻으려고 한다.

일정

이 논문은 "전지구적 전환"이라는 범주를 1989년에 적용하기에 앞서 세계사 다시 읽기를 위한 유용한 방식으로서 전지구화의 중요한 시점으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전지구적 전환"의 범주는 다음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매우 중요하고도 혁명적인 역사적 분기점의 역할에 관해서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분기점들은 각각 장소와 지역에 따라 매우 중요하지만, 꼭 전세계적인 일은 아니다. 또한 문화와 대륙 그리고 권력배치 형태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분기점이 지닌 메시지나 의미도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전지구적 전환"이 기억의 정치와도 깊이 관련된다는 점이다. 1989는 수많은 "끝"과 관련되어 있지만, "아랍의 봄"과 같이 새로운 해방운동 역사의 시작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은 주지할 만한 일이다.
 
마티아스 미델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역사과 교수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지정학의 세계사, 프랑스와 독일의 교류사 그리고 19세기-20세기 사학사이다. 최근에 쓴 논문으로는 "성찰적 지역학" (2013), "민족 역사쓰기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도전" 등이 있다.
이 논문은 1989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났던 6.4운동에서 독일 나찌 정권의 과거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이용되었는지를 트랜스-문화적 기억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간 동안 민주주의 시위대는 자신들 운동이 가진 신성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외국의 과거사 사례를 다수 이용하면서, 정부의 공식적인 억압정책을 비판하였다. 이 중에서도 그들은 중국공산당 정부를 전제주의적 독재정부로 형상화하기 위해서 포스터나 광고전단 그리고 비밀소식지에 독일 나찌의 "유령"들을 그려 넣었다. 1989년 이후에는 6.4운동을 공식적으로 복권하기 위해서 이 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을 나찌 정권의 부당성과 비교했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 정부에게 독일이 나찌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국가적 트라우마를 극복한 방식을 배울 것을 촉구했다. 이렇듯 1989년과 그 후로 천안문을 둘러싼 논의들이 문화의 경계를 넘어 독일의 과거를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쯩이판은 기억연구 전문가이다. 그의 관심사는 중국의 공식기억 만들기와 국가 정체성 만들기의 물적, 정신적 근간에 대한 탐구이다. 그는 현재 타이페이의 "기억지구"라고 불리는 곳, 베를린의 홀롤코스트 기념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워싱턴의 링컨홀, 서울의 광화문 광장 등을 다니며 국가 기억 공간 만들기에 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1989년 1월7일, 일본에서는 쇼와(昭和) 천황 히로히토가 사망했다. 1926년에 즉위하여 20년 간 제국 일본의 통치권자이자 신성불가침한 군주로서 군림한 히로히토는 패전 후 민주・평화국가 일본의 '상징'으로 재규정되어 44년을 더 재위하였다. 그가 전쟁책임을 비껴가 천황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체제의 형성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1989년 쇼와 천황의 사망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중첩된 것은 우연이지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쇼와 천황의 사망은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 재구축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상과 같이 쇼와천황 사망 이후 국민축일인 '천황탄생일'이 변경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 재구축과 관련한 갈등의 새로운 전개 양상과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한영혜는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일본학 교수이다. 그의 관심사는 시민사회, 집합기억,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이다. 저서로는 "도쿄 메트로폴리스: 시민사회, 격차, 에스닉 커뮤니티" (2012), "다문화사회 일본과 정체성 정치" (2010), "일본 근현대 사회사" (2004), "일본사회개설" (2001) 등이 있다.
냉전 체제의 붕괴는 남한에 동구권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기회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적국이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 또한 개선시켰다. 이들 국가와의 무역량은 급속도로 증가했고 중국과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는 1989년 이후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주의라는 매우 보수적인 사상이 1989년 이래에 출현한 것도 사실이다. 이 논문은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촉발하였는지 그리고 1989년 이후로 한국 정치계와 학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박태균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교수이다. 그는 하바드 옌칭 연구소에서 교환교수로 지냈으며, 최근에는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2013)라는 책을 펴냈다.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포크송인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이라는 노래가 1970년도에 오사카 엑스포에서 초연되었을 때 이 노래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관련하여 반전가로 불려졌다. 그러나 이 노래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의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아는 세대"와의 세대갈등을 표현하는 곡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95년은 아무신리쿄(옴진리교)라는 광신도 집단이 자행한 도쿄 지하철 공격과 한신 대지진 등의 사건 때문에1989년 이래로 가장 큰 사회구조적 변화를 겪은 전환기였다. 25년 후에,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은 우파로 돌아섰고 자신들의 할아버지들이 겪었던 전쟁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하였다. 이 논문은 이러한 신세대들의 전후 인식과 더불어 전쟁에 관한 인식의 극적인 변화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히데토 쯔보이는 일본 문학과 문화연구자이며 리츠메이칸의 교수이다. 저서로는 "목소리의 향연: 근대 일본 시와 전쟁" (1997), "감각의 근대: 목소리, 육체, 그리고 재현" (2006), "섹슈얼리티가 말하다: 20세기 일본 문학에서 섹스/젠더와 육체" (2012)가 있다.
20세기 후반 민주화라는 소위 "제3의 물결"은 전지구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가로지르는 관통하는 이러한 전개과정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에 관한 지식은 아직까지 매우 제한적이다. 각 지역적 맥락에서 이러한 과정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해서는 상당한 연구성과들이 있지만, 이러한 과정이 후기냉전체제와 그 여파라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 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연구는 아직도 부족한 형편이다. 이 논문은 동유럽의 사례를 주로 살펴볼 것이다. 헝가리와 다른 여타지역에서 발견한 자료를 기반으로 이 지역의 영향을 받은 다른 지역 또한 살펴볼 것이다. 정치가, 경제전문가 그리고 반체제 인사 등 역사적 행위자들은 이러한 국제적 정세의 변화 속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위치 지었는가? 이러한 변화를 겪거나 겪고 있는 지역에서 파급된 지식이나 실천들은 동유럽의 행위자들이 자신의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게 했고 변혁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제임스 마크는 영국 엑스터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끝나지 않은 전쟁", "중-동부 유럽에서의 공산주의 과거를 이해하기", "유럽의 1968", "반란의 목소리", "동구권의 글로벌 혁명" 등이 있다.
1989년 5월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을 점거했을 때, 서구의 언론들은 이를 민주주의 운동이자 중국에서의 공산주의 통치가 무너지는 신호로 보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현재까지도 그 힘을 과시하고 있다. 6.4운동이 일어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이 논문은 1989년의 학생운동을 1957년과 1966년에 있었던 사회운동과 비교할 것이다. 이 세 개의 운동은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분열과 동유럽 국가사회주의의 위기와 맞물려 발생했다. 사회운동에 관한 논의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가운데, 이 논문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중국의 시위운동의 패턴에 관해서 연구할 것이다. 또한 국가와 사회간의 갈등이 왜 폭력으로 끝나야했는 지에 관해서 답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동구권에서 일어난 일들이 중국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유럽과 중국의) 시위의 성격과 공산주의 통치의 성격은 다르다. 이 논문은 마지막으로 1989년의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 중국공산당이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답할 것이다. 

펠릭스 벰호이어는 독일 쾰른대학의 근대중국학 교수이다. 그는 마오쪄뚱 시대와 대약진 정책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책을 출판하였다. 2014년에 예일대학교 출판부에서 "마오쪄뚱 시대 중국과 소련의 기근 정치학"이 출간되었다.
냉전이 남긴 세 개의 분단국가 중 하나인 타이완에 베를린 장벽 붕괴는 상당히 모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통일은 먼저 타이완과 중국을 비무장화하자는 뜨거운 논의를 이끌어 냈지만, 10년쯤 지나자 타이완이 독립을 통해서 "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리주의도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은 전세계적으로 좌파의 몰락을 가져왔고, 중국과의 통일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었던 타이완의 좌파들은, 분배정의와 사회평등 추구라는 이제는 인기 없는 정치적 선택을 함으로써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 논문은 공적 기록, 뉴스 아카이브, 그리고 좌파 출판물 등을 통해서 타이완 민족주의와 계급 정치 사이의 모순적 관계를 풀어내려고 한다.
 
화젠 리우는 국립 타이완 대학교 사회학과의 부교수이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 페어뱅크 센터에서 박사후 과정을 연수했다. 그녀의 관심사는 사회운동, 후기산업화, 역사, 비교, 사회 이론이다.
1989년은 냉전체제에 붕괴가 일어난 해이다. 1989년 이후의 역사적 상상력은 전지구적 냉전이라는 광기의 정치학에서부터 벗어나, 트랜스-내셔널, 트랜스-지역, 트랜스-대륙적 미래를 예견하는 과거를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에 빛을 던져주었다. 이것은 1989년 이후 역사논쟁이 왜 전지구적으로 융성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대중독재는 1989년 이후의 역사적 상상력에 의에 촉발된 역사논쟁의 대표적인 예이다. 독재, 식민주의, 학살과 공동체적 죄책감에 대한 무조건적 악마화에서 벗어나, 대중독재는 20세기 과거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요구했고, 1999년에 한국에서 첨예한 역사논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논쟁을 시작한 사람으로써 나는 대중독재 논쟁을 1989년 이후 세계적인 지성사의 변화라는 사학사적 측면에서 조명하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대중독재 논쟁의 궤적을 찾는 일과 이것의 트랜스내셔널한 반향을 정리하는 것은 세계 지성사와 역사적 상상력적 측면에서 1989년의 "얽힌 역사"에 관한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임지현은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 연구소의 소장이다. 저서로는 "적대적 공범자들", "오만과 편견" 등이 있고, 팔그레이브 "대중독재 시리즈"의 편집자이다.

강연 녹취록

마티아스 미델 (라이프치히 대학교, 독일): "1989와 전지구적 전환"
Audio wird geladen

쯩이 판 (국립동화대학교, 타이완): "천안문과 “귀신”의 소환: 기억 만들기에 대한 트랜스-문화적 접근 "
Audio wird geladen

히데토 쯔보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일본): "전환기로서의 1995년: 탈냉전기 일본의 역사 자각에 관한 논쟁"
Audio wird geladen

화젠 리우 (국립 타이완대학교, 타이완): "벽은 무너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바다로 갈려있는가? 1989이후의 타이완 정체성과 계급 정치"
Audio wird geladen

임지현 (한양대학교): "1989년 이후의 역사적 상상력과 대중독재"
Audio wird gela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