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내용 바로가기(Alt 1)서브 내비게이션 바로가기(Alt 3)메인 내비게이션 바로가기(Alt 2)

2018년 9월 12일
언어로 유희하라!

언어유희에 관한 태그 클라우드
© 주한독일문화원

사비네 뮐러 글. 토마스 멜레와 머크 소셜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한 10명의 번역가들은 거의 날마다 렉토리 전자책 플랫폼에서 만난다.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저자와 번역가들의 토론에 접근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렉토리 플랫폼에서 논의되는 질문과 수많은 창의적 해결안들을 여러분에게 잠시 소개하려 한다.

글자와 낱말 또는 어순이 언어의 일상적 사용법에서 벗어나는 경우, 이는 독자들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싱긋 웃게 만든다. 언어의 유희적 사용법에는 단어의 의미를 전도시키는 표현이나 다의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비원어민이 외국어에 등장하는 신조어와 낱말 비틀기를 힘들이지 않고 이해하고 거기에 담긴 뉘앙스를 파악한다면 그건 그의 특별한 언어적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머크 소셜 번역 프로젝트에서는 언어유희와 말재간이 특히 풍성한 토마스 멜레의 ‘등 뒤의 세상’이 선정되었다. 이로써 이 책은 번역가들에게 아주 특별한 도전을 안겨주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번역가들이 이 언어유희라는 걸림돌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리고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여기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몇 개의 예를 들어 보여주려 한다.

언어유희에 관한 토론

소설의 3장은 저자가 첫 조증이 발생했던 1999년 9월 17일부터 21일까지 쓴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적 변칙, 언어유희, 신조어가 가득하다. 각 단락의 앞엔 정확한 시간과 분까지 적혀 있다. 토마스 멜레는 해당 장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장 전체가 사실상 그때 정신질환자였던 제가 실제로 기록한 글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논리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Lectory Sauna und doch so fern© Goethe-Institut Korea via lectory.io

원문
11시: SAUNA UND DOCH SO FERN

번역가 1
여러분은 이 표현을 어떻게 번역했나요? 글자 그대로 번역했나요?
 
토마스 멜레
“가깝고” “먼”의 뜻을 담은 언어유희를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무척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번역가 2
“So nah und doch so fern”(가깝고도 먼)이라는 관용구를 이용한 기발한 언어유희로군요!

Lectory Schrägere-als-sonst© Goethe-Institut Korea via lectory.io

원문
아주 사소한 행동, 어쩌면 평소보다 조금 기괴한 행동들을 금방 작당해서 소문 내다가 결국엔 그 행동들이 나와 한 통속(verwandt)이라며 뒤통수를 치는 (gegen einen verwandt werden) 가까운 친구들을 과연 어떻게 믿어야 하나? 아니 대체 무슨 말이 이런가? “한 통속”이라니?

사비네 뮐러, 사회자
주옥 같은 표현인데, 번역하기는 매우 어렵겠습니다.
 
토마스 멜레네
“verwandt”를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의미의 동사 “verwenden”의 과거분사 “verwandt”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는 뜻의 “verwandt”) 사용했습니다. 가능하다면 각각 비슷한 뜻을 지닌 표현을 찾아야겠지요.

Lectory Dichter dicht© Goethe-Institut Korea via lectory.io

원문
지배인 집무실 침대에서 야간 취침. 우리는 그렇게 한다. 시인들은 촘촘하고, 시끄럽고 유창하다. 그러는 사이
(Nachtruhe im Direktoratsbett, so machen wir das. Dichter dicht, laut und flüssig inzwischen)

토마스 멜레
언어유희입니다.
 
번역가 3
Das Dichter dicht, laut und flüssig machen이 무슨 뜻입니까?
시인들이 문을 닫아걸고 취하도록 마시며 시끄럽게 떠든다? 저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습니까?
 
토마스 멜레
“Dichter dicht”을 시인들이 술에 취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자는 병원에서 술에 취할 일이 없긴 하지만요). 이 표현은 그냥 언어유희입니다. “Laut und flüssig”에는 분명하게 느낌이 와 닿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말 뜻 그대로 번역하면 됩니다. 이 텍스트는 난해합니다. 정신질환자가 쓴 텍스트이니 그럴 수밖에요.

Lectory Entlösung© Goethe-Institut Korea via lectory.io

원문
17시 47분: 당장 다음 달에 울리히 야네츠키와 연락한다. 담배 피우기와 바라보기. 구원 또는 최종 해결책 (Entlösung, mit -t-) 기다리기. 미안해. 나는 나쁜 짓을 할 마음이 없었어. 나는 착해. 착하고 아파. 정신병원에 있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토마스 멜레
“Entlösung” 을 매끄럽게 번역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정신질환자의 특성이 가득한 이 일기의 대목에는 논리와 취향의 파괴가 나타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Entlösung”(최종 해결책)은 독일 역사에서 불행했던 한 시대를 암시합니다.
https://de.wikipedia.org/wiki/Endl%C3%B6sung_der_Judenfrage
그러나 “Entlösung”은 “Erlösung”(구원)과 문제의 사적인 “최종 해결책”의 혼합 형태입니다 (긴장 해소를 뜻하는 “Entspannung”의 의미도 있습니다). 정신병 환자들이 이런 언어유희를 (멋없는 것까지 포함해) 생각해내는 건 흔한 일입니다. 여기서는 역사에서의 “최종 해결책”(Endlösung)이 주는 잔향은 무시하고 그냥 “구원”이라고 번역하되 가능하면 독특한 언어유희를 넣어 연결하면 될 듯합니다.
 
번역가 4
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상의 토론을 보면, 토마스 멜레가 소설의 저자로서만이 아닌 번역가의 입장에서도 다른 번역가들의 질문에 답하고, 미리 설명하고, 언어유희를 다른 언어로 옮길 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난다. 토마스 멜레는 영어로 쓰인 소설 여러 권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 중에는 윌리엄 T. 볼먼의 “영광을 위한 매춘부”와 “호보 블루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독신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