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가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후 통일이 되면서 40년 간의 독일 분단은 끝이 났다. 그 이후 독일의 모습은 많이 변했고, 베를린은 국제적 대도시로 성장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현재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중요한 역사적 장소들을 만나보자.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 pa-picture alliance | © A. Ehrlicher, Bettina Rehmann
브란텐부르크 문은 베를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자 사진 명소이다. 1961년 8월 13일 베를린의 시장 빌리 브란트(사진의 가운데, 오른쪽은 사회민주당 정치가이자 목사인 하인리히 알베르츠)가 베를린의 국경선 작업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전날 밤 검문소 몇 군데를 제외하고 국경선 모두가 폐쇄되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장벽 공사가 시작되었다.
프리드리히 가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 pa-picture alliance | © A. Ehrlicher, B. Rehmann
1961년 10월 28일 소련 전차들이 외교관과 외국인들이 드나들던 프리드리히 가의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 앞에 배치된다. 미국의 전차들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국경선에 자리 잡은 것에 대한 반응이자 일종의 위협 조치이다. 오늘날에는 당시 냉전의 갈등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늘날 프리드리히 가는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핑거리 중 하나다.
베를린의 반제와 포츠담을 잇는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ü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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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베를린과 포츠담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인 글리니케 다리는 과거 동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글리니케 다리는 군대만 이용할 수 있었다. 냉전 시대에 이 다리 위에서 고위급 요원들의 교환이 세 차례나 이루어졌다. 그 중 한 번은 1962년 2월 10일에 이루어졌다. 소련은 얘기치 않게 미국 파일럿 게리 프란시스 파워스(Gary Francis Powers)의 억류를 풀고 미국 측에 넘겨준다. 그 대신 미국은 소련의 스파이 루돌프 이바노비치 아벨(Rudolf Iwanowitsch Abel)을 풀어준다. 사진은 포로 교환 직후 촬영된 것이다.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의 오버바움 다리(Oberbaumbrü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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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레 강 위를 지나는 이 아치형 다리는 오늘날 사람들이 밤에 서로 만나거나 파티를 여는 장소다. 1964년 12월 19일 저녁 서베를린 주민들이 오버바움 다리를 건너가 동베를린에 살고 있는 친척들을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 만난다. 바로 전 해에 통행증 협정이 체결되면서 동서베를린을 갈라놓았던 견고한 장벽이 잠시 동안 통행을 허용한 것이다.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
© pa-picture alliance | © A. Ehrlicher, B. Rehmann
언뜻 보면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베를린 중심에 위치한 알렉산더 광장의 분수는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편하게 쉬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1976년 6월 29일 그늘에서 측정된 기온은 31도다. 동베를린 주민들이 알렉산더 광장의 분수에 발을 담그고 열을 식힌다.
베르나우 가(Bernauer Strasse)
© ullsteinbild – Jürgen Ritter | © A. Ehrlicher, B.
사람들이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982년 동베를린에서 촬영된 사진의 배경에는 아직 베를린 장벽이 보인다. 장벽에 ‘룸미(Lummi)’라고 적힌 글자가 보인다. 이름의 주인공인 하인리히 룸머(Heinrich Lummer)는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서베를린의 내무위원이었다.
역사적 미테(Mitte) 지구
몽타주: A. Ehrlicher, B. Rehmann CC BY-SA 3.0, 과거 사진: 연방문서보관소, 사진 183-1984-0831-421 (CC BY-SA 3.0 de) 현재 사진: K. Krämer
오늘날의 이곳은 공사현장이지만, 동독 시절에는 동독의 공화국 궁전(Palast der Republik)이 서 있었다. 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오른쪽)와 그의 부인 마르고트(Margot/오른쪽에서 네 번째),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선수 카타리나 비트(Katharina Witt/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984년 8월 31일 공화국 궁전에서 열리는 스포츠인 무도회로 향하고 있다. 인민회의 청사였던 공화국 궁전에서는 정기적으로 행사들이 열리기도 했다. 2008년 12월 석면으로 오염된 마지막 건물 부분을 헌 후 오랜 논의 끝에 역사적 미테 지구를 다시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 2023년까지 베를린성의 공사가 마무리될 계획이다.
트렙토 공원의 소련기념상(Sowjetisches Ehrenmal)
몽타주: A. Ehrlicher, B. Rehmann CC BY-SA 3.0, 과거 사진: 연방문서보관소, 사진 183-1987-0727-24, Uhlemann Thomas (CC BY-SA 3.0 de) 현재 사진: A. Ehrlicher, B. Rehmann
트렙토 공원의 소련기념상 앞에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진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오늘날에는 이 장소를 더이상 동독 시절 때처럼 국가 의식이나 대규모 행사에 활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다. 1987년 7월 27일 레닌 소년 단원들, 콤소몰 청년들, 텔만 소년 단원들, 자유독일청년당원들이 전사한 소련 군인과 장교들을 추모한다.
보른홀름 가의 뵈제 다리(Bösebrücke)
몽타주: A. Ehrlicher, B. Rehmann CC BY-SA 3.0, 과거 사진: 연방문서보관소, 사진 183-1989-1118-028 (CC BY-SA 3.0) 현재 사진: A. Ehrlicher, B. Rehmann
과거에는 이곳에 동독의 대표 자동차인 트라비(Trabi)가 다녔다면, 오늘날에는 시내 전차가 다닌다. 1989년 11월 10일 서베를린 웨딩 구의 학생들이 동독의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국경 검문소가 있는 보른홀름 가의 뵈제 다리 위에 환영 대열을 만든다. 전날 밤 처음으로 장벽이 열린 곳이다. 오늘날에는 이 다리가 프렌츨라우어 베르크와 웨딩 사이의 교통을 연결해주고 있다.
제국의회의사당(Reichstag)
© pa-picture alliance | © A. Ehrlicher, B. Rehmann
1990년 10월 3일 밤 환호성, 깃발, 불꽃놀이와 함께 사람들이 통일을 축하한다. 그때 당시에는 아직 사진에 보이는 의사당의 유리 돔이 먼 미래의 일이었다. 1995년 제국의회의사당을 국회의사당 건물로 바꾸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기사 정보
사진 몽타주 제작을 위해 장벽 건설부터 통일까지의 기간 동안 베를린의 역사적인 장소들에서 촬영된 사진들이 활용되었다. 악셀 에어리허(Axel Ehrlicher)와 베티나 레만(Bettina Rehmann)이 유사한 각도에서 이 장소들을 다시 촬영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새로운 모티브로 재구성했다.
저자
울라 브룬너는 편집자와 기자로 활동한다.
제작: redaktion.brunner
현재 사진, 수정 작업, 몽타주: 악셀 에어리허(촬영기사, 사진사, 필름 편집자), 베티나 레만(편집자, 프리랜서 멀티미디어 기자 )
저작권: 괴테 인스티투트, 온라인 편집국. 2019년 10월에 업데이트.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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