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국경지대
“기억과 희망의 장소”

과거 동서독을 갈라놓았던 국경지대를 따라 녹색 띠 그뤼네스반트가 조성되었다. 독일 전국을 가로지르는 이 녹색지대는 동식물들에게 새로운 서식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갈등으로 뒤덮였던 역사를 투영하고 있다.
튀링엔 주 블랑켄베르크에서 출발한 소형 열차 한 대가 녹색 자연을 가로지르며 옛 제지공장을 향해 덜컹거리며 달린다. 이 협궤열차는 옛 동서독의 국경지대를 따라 이동한다. 기관사는 분단 당시에는 이 지역이 이렇게 평화롭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당시에는 무릎을 땅에 대고 기다란 막대기를 손에 쥐고 지뢰를 찾아야 했다.” 동독군에 복무하던 1980년대 시절의 기억이다.
한때 철의 장막이 북쪽의 발트해에서부터 남쪽의 바이에른 주까지 지나며 독일을 갈라놓았다. 철조망에 더해 처음에는 지뢰들이, 나중에는 자동발사장치가 동서독 사이의 국경지대를 철통처럼 감시했다. 1990년 통일이 되기 전까지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가려다가 국경지대에서 사망한 사람들만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자연이 이 지대를 다시 접수했다. 총 1,393 킬로미터 길이에 이르는 녹색 띠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가 독일을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른다. 수십 년간 이 지역은 허락 없이 출입이 불가능한 통제구역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멸종위기의 희귀 동식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현재 이 지대는 대부분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연-역사-문화 복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마리엔보른(Marienborn) 지역의 그뤼네스벨트에 남아 있는 구동독의 감시탑. 이 검문소는 동서독 분단 시절 국경지대에서 가장 크고 중대한 검문소였으며, 주로 서베를린으로의 왕래를 위해 이용되었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 Frank May
일찍부터 서로 접촉한 동서독의 자연보호 운동가들

옛 국경지대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전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1989년 장벽이 붕괴된 직후에 태동되었다. 서독 출신인 바이거는 그 전에 이미 동독 환경보호 운동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경이 열리고 4주 만에 BUND는 동서독이 함께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바이에른 주의 호프에서 열린 이 회의에는 400명의 동서독 환경보호 운동가들이 참가했다. 바이거에 따르면 “그때 처음으로 ‘그뤼네스반트’라는 말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물론 계획이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국경을 허무는 것이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대안으로 국경지대를 따라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는 안이 제시되었지만, 금새 다시 뒤로 밀려났다. 대신 연방자연보전청(Bundesamt für Naturschutz)이 수 년째 환경운동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연방자연보전청은 타당성 조사를 통해 소중한 생태자원들이 서식하고 있는 국경지대의 특별한 가치를 확인했으며, 2019년까지 5천6백만 유로를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되는 다수의 프로젝트들에 투입했다. 이 밖에도 기부금과 연방주들의 지원금도 더해졌다.
갈등에 취약한 목가적 풍경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목가적인 모습만큼 모든 것이 평화롭지만은 않다. 지역 정치인이나 농민들이 소중한 땅을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국경지대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뤼네스반트 중 약 170킬로미터 정도는 아직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땅들은 주로 농지로 이용되고 있다. 연방자연보전청에서 그뤼네스반트 담당부서를 이끌고 있는 우베 리켄은 “그 빈틈을 잇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뤼네스반트를 둘러싼 다른 작은 문제들도 있었다. 튀링엔 주 테타우의 시장인 페터 에베르치는 이러한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에베르치 시장은 국경지대를 따라 자전거길을 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생태서식지가 단절되는 것을 우려했고, 기나긴 논의 끝에 겨우 자전거 도로를 설치할 수 있었다. 결국 에베르치 시장이 환경운동가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자연보호
분단을 상징하는 철의 장막이 서 있던 지역들을 잇는 그뤼네스반트는 이제 국제적인 협력 프로젝트로 거듭나고 있다. 예컨대 바이에른 주는 인접 국가인 체코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에른 주 환경부 장관 토르스텐 글라우버는 “그뤼네스반트는 기억과 희망의 장소인 동시에 유럽 내 생물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말한다. 독일과 체코 사이의 국경은 총 346킬로미터에 달한다. 체코 행정부 차관 블라디미르 마나에 따르면, 양측은 장차 6년 동안 체코의 슈마바(Šumava) 국립공원의 지휘 하에 습지와 기후 보호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