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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의 국경지대
“기억과 희망의 장소”

새로운 생활권으로 거듭난 죽음의 띠: 동서독을 가르던 옛 국경지대에 총 1천4백 킬로미터 길이에 달하는 자연보호구역이 탄생했다.
새로운 생활권으로 거듭난 죽음의 띠: 동서독을 가르던 옛 국경지대에 총 1천4백 킬로미터 길이에 달하는 자연보호구역이 탄생했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dpa-Zentralbild/ZB/Peter Gercke/

과거 동서독을 갈라놓았던 국경지대를 따라 녹색 띠 그뤼네스반트가 조성되었다. 독일 전국을 가로지르는 이 녹색지대는 동식물들에게 새로운 서식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갈등으로 뒤덮였던 역사를 투영하고 있다.

튀링엔 주 블랑켄베르크에서 출발한 소형 열차 한 대가 녹색 자연을 가로지르며 옛 제지공장을 향해 덜컹거리며 달린다. 이 협궤열차는 옛 동서독의 국경지대를 따라 이동한다. 기관사는 분단 당시에는 이 지역이 이렇게 평화롭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당시에는 무릎을 땅에 대고 기다란 막대기를 손에 쥐고 지뢰를 찾아야 했다.” 동독군에 복무하던 1980년대 시절의 기억이다.

한때 철의 장막이 북쪽의 발트해에서부터 남쪽의 바이에른 주까지 지나며 독일을 갈라놓았다. 철조망에 더해 처음에는 지뢰들이, 나중에는 자동발사장치가 동서독 사이의 국경지대를 철통처럼 감시했다. 1990년 통일이 되기 전까지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가려다가 국경지대에서 사망한 사람들만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자연이 이 지대를 다시 접수했다. 총 1,393 킬로미터 길이에 이르는 녹색 띠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가 독일을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른다. 수십 년간 이 지역은 허락 없이 출입이 불가능한 통제구역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멸종위기의 희귀 동식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현재 이 지대는 대부분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연-역사-문화 복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마리엔보른(Marienborn) 지역의 그뤼네스벨트에 남아 있는 구동독의 감시탑. 이 검문소는 동서독 분단 시절 국경지대에서 가장 크고 중대한 검문소였으며, 주로 서베를린으로의 왕래를 위해 이용되었다.  마리엔보른(Marienborn) 지역의 그뤼네스벨트에 남아 있는 구동독의 감시탑. 이 검문소는 동서독 분단 시절 국경지대에서 가장 크고 중대한 검문소였으며, 주로 서베를린으로의 왕래를 위해 이용되었다. | 사진(부분): © picturealliance/ Frank May

일찍부터 서로 접촉한 동서독의 자연보호 운동가들

미트비츠(Mitwitz) 인근에 있는 튀링엔 주와 바이에른 주 경계지역의 그뤼네스반트 풍경. 미트비츠는 그뤼네스반트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 곳이다. 미트비츠(Mitwitz) 인근에 있는 튀링엔 주와 바이에른 주 경계지역의 그뤼네스반트 풍경. 미트비츠는 그뤼네스반트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 곳이다. | 사진(부분): © Otmar Fugmann 이렇게 되기까지 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Bund für Umwelt- und Naturschutz, BUND)의 대표인 후버트 바이거의 공이 매우 컸다. 독일 최대 환경단체인 BUND는 그뤼네스반트 조성이라는 컨셉트를 개발하고, 지금까지도 매입이나 교환을 통한 국경지대 부지의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렇게 확보된 부지는 생태보호구역으로 전환된다.

옛 국경지대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전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1989년 장벽이 붕괴된 직후에 태동되었다. 서독 출신인 바이거는 그 전에 이미 동독 환경보호 운동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경이 열리고 4주 만에 BUND는 동서독이 함께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바이에른 주의 호프에서 열린 이 회의에는 400명의 동서독 환경보호 운동가들이 참가했다. 바이거에 따르면 “그때 처음으로 ‘그뤼네스반트’라는 말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물론 계획이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국경을 허무는 것이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대안으로 국경지대를 따라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는 안이 제시되었지만, 금새 다시 뒤로 밀려났다. 대신 연방자연보전청(Bundesamt für Naturschutz)이 수 년째 환경운동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연방자연보전청은 타당성 조사를 통해 소중한 생태자원들이 서식하고 있는 국경지대의 특별한 가치를 확인했으며, 2019년까지 5천6백만 유로를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되는 다수의 프로젝트들에 투입했다. 이 밖에도 기부금과 연방주들의 지원금도 더해졌다.

갈등에 취약한 목가적 풍경


가시검은딱새는 그뤼네스반트를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구동독의 국경 말뚝 위에서 노래하는 가시검은딱새. 가시검은딱새는 그뤼네스반트를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구동독의 국경 말뚝 위에서 노래하는 가시검은딱새. | 사진(부분): Thomas Stephan 국경지대의 폭은 최대 200미터에 달한다. 그곳에는 5천2백 종 이상의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고, 그중 최소한 1천2백 종은 멸종이 우려되는 적색 목록에 포함된 생물종들이다. 그런데 이 지대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이 한때 감시의 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두운 과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600개에 달하던 감시탑들 중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고, 이들을 통해 당시 양국간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때 국경수비대가 순찰을 돌던 이 곳에서 이제는 관광객들이 걷고 자전거를 탄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목가적인 모습만큼 모든 것이 평화롭지만은 않다. 지역 정치인이나 농민들이 소중한 땅을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국경지대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뤼네스반트 중 약 170킬로미터 정도는 아직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땅들은 주로 농지로 이용되고 있다. 연방자연보전청에서 그뤼네스반트 담당부서를 이끌고 있는 우베 리켄은 “그 빈틈을 잇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뤼네스반트를 둘러싼 다른 작은 문제들도 있었다. 튀링엔 주 테타우의 시장인 페터 에베르치는 이러한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에베르치 시장은 국경지대를 따라 자전거길을 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생태서식지가 단절되는 것을 우려했고, 기나긴 논의 끝에 겨우 자전거 도로를 설치할 수 있었다. 결국 에베르치 시장이 환경운동가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자연보호

분단을 상징하는 철의 장막이 서 있던 지역들을 잇는 그뤼네스반트는 이제 국제적인 협력 프로젝트로 거듭나고 있다. 예컨대 바이에른 주는 인접 국가인 체코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에른 주 환경부 장관 토르스텐 글라우버는 “그뤼네스반트는 기억과 희망의 장소인 동시에 유럽 내 생물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말한다. 독일과 체코 사이의 국경은 총 346킬로미터에 달한다. 체코 행정부 차관 블라디미르 마나에 따르면, 양측은 장차 6년 동안 체코의 슈마바(Šumava) 국립공원의 지휘 하에 습지와 기후 보호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예정이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후버트 바이거: 1989년 12월 9일 약 400명의 동서독 환경운동가들이 오버프랑켄의 호프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 곳에서 그뤼네스반트를 지정하고 보존하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왼쪽부터: 발터 히켈, 카이 프로벨, 베르너 베스투스, 난네 비난츠, 우도 벵커-비난츠, 후버트 바이거, 라이너 하우프트). 처음부터 함께 했던 후버트 바이거: 1989년 12월 9일 약 400명의 동서독 환경운동가들이 오버프랑켄의 호프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 곳에서 그뤼네스반트를 지정하고 보존하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왼쪽부터: 발터 히켈, 카이 프로벨, 베르너 베스투스, 난네 비난츠, 우도 벵커-비난츠, 후버트 바이거, 라이너 하우프트). | 사진: © Ernst Sa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