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스너 맥주
용기 있는 자만이 승리한다

필젠 양조장의 지하실
필젠 양조장의 지하실 | 사진(부분): © Pilsner Urquell

필스너 맥주는 체코 맥주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필젠 시민들은 한때 자신들의 맥주에 커다란 불만을 품었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항의의 의미로 시청사 앞에서 맥주통들을 거꾸로 뒤엎어 맥주를 쏟아내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매우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외국인들에게 ‘체코’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 묻는다면, 대부분이 ‘스코다’나 ‘바츨라프 하벨’ 혹은 ‘프라하’라고 대답할 것이다.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대답은 아마도 ‘맥주’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든 아니든 현실이 그렇다. 물, 맥아, 호프를 섞어 효모로 빚은 맥주, 부드러운 쓴맛을 지닌 맥주는 ‘착한 병사 슈베이크(Švejk)’나 ‘리프 산(Říp)’과 같이 부인할 수 없는 보헤미아의 유산이다. 그런데 필스너 맥주가 지금처럼 체코의 대표 맥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맥주는 유럽에서 중세 시대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냈다. 예전에는 맥주 생산권이 커다란 특권을 의미했고, 그렇기에 많은 도시들이 양조권 취득을 갈망했다. 허가 받은 이들은 열심히 맥주를 제조했다. 당시 우물물의 수질은 순도가 매우 낮았다. 그래서 물보다 맥주가 더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음료로 여겨졌다. 좀 더 정확히 따지자면 당시 맥주는 진짜 맥주라기보다 ‘맥주라 불리던 음료’였다. 상면발효식의 탁한 이 맥주는 오늘날의 풍성한 맛의 맥주나 생맥주와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이후 다양한 변종 맥주들이 등장했다. 아침 식사 때 마실 수 있는 도수 낮은 맥주부터 점심이나 해질 무렵부터 마시는 도수 높은 맥주까지 매우 다양한 맥주가 생산되었다. 16세기 사람들은 하루 평균 750cc의 맥주를 마시곤 했다. 맥주는 모두가 사랑하는 음료, 비교적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료였다. 하지만 품질은 천차만별이었다. 길거리와 광장에는 선술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맥주집 주인들은 각자의 능력껏 술을 빚었다. 개중에는 물론 양조 실력이 형편없는 이들도 있었다.

싸구려 음료에서 기적의 음료로 거듭난 필스너

서보헤미아의 도시 필젠도 예외는 아니었다. 맥주 양조장들은 1295년 도시가 건립되던 시기부터 발전을 거듭했다. 필젠 시민들은 260개의 맥주집에서 각종 맥주들을 마시고 즐겼다. 그런데 양조업자들은 시체의 뼈를 갈아 넣거나 사형용 밧줄 부스러기, 심지어 개똥까지, 다양한 형태의 ‘비법 재료들’을 맥주에 몰래 섞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리 지 포데브라드(Jiří z Poděbrad) 국왕이 통치하던 시절 한 맥주 애호가가 이곳의 맥주는 “독성이 있고, 끔찍할 정도로 쓰며, 담석증을 유발하고, 신장을 망가뜨린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맥주의 품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맛있는 맥주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작센이나 바이에른에서 맥주를 공수해 와서 마셨다. 결국 현지 양조업자들에 대한 의원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 버렸다. 1838년 필젠 의회 소속 의원들은 경고 차원에서 썩은 맥주가 든 맥주통 36개를 광장에서 쏟아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시정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이듬해 1월에 개최된 시민공청회에서 기발한 제안이 나왔다. 필젠 시민들이 힘을 합쳐 현대식 대규모 양조장을 건립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 계획은 곧장 추진되었고, 단 3년 만에 ‘필젠 시립양조장(체코어: Měšťanský pivovar Plzeň)’이 화려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 필젠 시청사 앞 광장 사진 (부분): © Libor Sváček, archiv mcumedia.cz

    1838년, 필젠 시민들은 현지 맥주가 맛이 없다는 이유로 시청사 앞에서 36개의 맥주통을 뒤집어 엎었다. 사진은 필젠 시청사의 모습이다.

  • 1842년에 생긴 필스너 사진 (부분): © Pilsner Urquell

    1842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초빙된 전문 양조업자 요제프 그롤이 첫 작품을 선보였다. 바로 지금의 필스너 우르켈이다.

  • 필젠 시 풍경 사진 (부분): © Libor Sváček, archiv mcumedia.cz

    당시 필스너 맥주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이내 도시 전체로 확산되었다: 필젠 시 풍경

시립양조장 창업자들은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았다. 필젠 시민들이 원한 것은 단지 바이에른 맥주와 같은 안정적인 맛의 고품질 맥주를 만들어내는 것뿐이었다. 이를 위해 독일 파사우 인근의 소도시 빌스호펜에 거주하고 있던 전문 양조업자 독일인 요제프 그롤(Josef Groll)이 초빙되었다. 1842년 11월, 드디어 그롤의 첫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음회가 열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자텍(Žatec) 산 호프와 부드러운 맛의 필젠 물, 밝은 색상의 맥아를 조합한 결과 새로운 황금빛 하면발효 맥주 필스너 라거 맥주가 탄생했다. 사람들은 “강렬하고, 고급스러우며, 지금껏 어느 맥주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맛”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롤의 맥주가 필젠 뿐 아니라 프라하와 빈에도 순식간에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롤은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승리한다.' 새로운 원료들을 과감히 사용한 덕분에 그롤은 완전히 새로운 맥주, 필젠 고유의 맥주를 빚어낼 수 있었다. ‘필스’ 혹은 ‘필스너’라 불리는 이 맥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이다.

유럽 최대의 양조업체

프라하 시민들 중 그롤의 필스너 맥주가 지닌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야쿱 핀카스(Jakub Pinkas)라는 재단사였다. 출시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1843년 봄에 이미 필스너의 힘을 꿰뚫어본 핀카스는 주저하지 않고 바늘과 실을 내던지고 즉시 맥주집을 열었다. 핀카스의 술집은 금세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츨라프 광장 모퉁이에 위치한 핀카스의 맥주집에는 당대 거물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역사학자 프란티셰크 팔라츠키(František Palacký), 언어학자 요제프 융만(Josef Jungmann), 정치가 프란티셰크 라디슬라프 리게르(František Ladislav Rieger)도 핀카스의 고객들이었다. 대학교수였다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된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Tomáš Garrigue Masaryk)도 후에 단골 손님이 될 정도로 핀카스의 맥주집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필스너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제는 상표 등록이 된 맥주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Plzeňský Prazdroj)’의 명성은 19세기 후반부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롤이 자신의 첫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지 약 20년 만에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 미국인들도 필스너를 즐기게 되었다. 필스너 우르켈은 그 후 단기간 안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까지 진출했다. 필젠 시립양조장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유럽 최대의 양조업체로 등극했다. 물론 힘든 시절도 있었다. 독일에 점령당하고 있던 시절, 미국은 필스너 우르켈을 독일 제품으로 규정하며 불매운동을 벌였고, 수출 지역도 독일 제국으로 제한되었다. 1945년 4월 17일에는 연합군의 폭격에 지하 발효실, 주방, 병 주입 시설이 타격을 입었고, 2차 대전 직후에는 양조장이 국영 기업으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다시 민영 기업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0년이 걸렸다. ‘벨벳 혁명’이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재민영화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 필젠 양조장 입구 사진 (부분): © Libor Sváček, archiv mcumedia.cz

    필젠 양조장 입구

  • 요제프 그롤이 자신의 첫 작품을 빚었던 구리 탱크 사진 (부분): © Petr Eret/ČTK

    자텍 산 호프, 부드러운 맛의 필젠 물, 밝은 빛깔의 맥아: 요제프 그롤이 자신의 첫 작품을 빚었던 구리 탱크

  •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맥주집 사진 (부분): © Pilsner Urquell

    건배!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맥주집

현재 주식회사 형태인 필스너 우르켈 사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창업하던 당시의 소박한 규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했다. 연간 생산량만 해도 1천1백만 헥토리터에 달하고, 자사 브랜드들을 통해 총 12종의 음료, 총 40종의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필스너 우르켈은 이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체코 최대의 맥주 수출업체가 되었고, 전 세계 50개국 이상의 맥주 애호가들이 필스너 우르켈 사에서 만든 맥주를 마시고 있다. 한 때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이에 필스너 우르켈은 2002년 폴란드의 티히(Tychy)에서 생산한 맥주를 자사 브랜드로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티히의 생산 공정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중단되었다. 폴란드와 체코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관세 장벽이 무너졌고, 필젠의 생산량도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필스너 우르켈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눈길을 돌린 해외 생산지는 러시아의 칼루가(Kaluga)였는데, 이 곳 공장 역시 본사의 결정에 따라 2018년 초 문을 닫았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은 자신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황금빛 음료가 모두 필젠산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필스너 맥주는 체코의 확고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근거를 하나 더 확보했다. 사실 체코뿐 아니라 중부 유럽 전체의 문화자산이라 해도 거짓이 아니다. 독일의 한 전문 양조업자와 필젠 시민들의 합작품인 필스너 맥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최초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 폴란드는 지금도 최대의 필스너 맥주 수입국이다. 지난 175년간 필젠 양조업체와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브랜드는 유럽의 역사적 대변혁과 붕괴를 함께 겪어 왔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견고한 장벽들이 다시 사라지고 있는 지금, 필스너 맥주가 다시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