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잉크 얼룩은 이제 그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럽에서 점점 더 정교한 필기구로 자리잡게 된 만년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럽에서 점점 더 정교한 필기구로 자리잡게 된 만년필 | 사진(부분): © Adobe

과거에는 몇 백 년 동안 계약서, 연애편지, 학교숙제 같은 문서들이 늘 잉크 얼룩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유럽은 단순한 깃펜으로부터 만년필이라는 똑똑한 필기구를 개발해냈다.

우리는 마틴 루터, 테오도르 폰타네, 고고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이 한 손에 깃대를 잡은 채 다음 줄은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는 모습을 수백 년 동안 유화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깃펜들이 얼마나 성가시는 문제를 일으켰는지 말이다. 평생에 걸쳐 수천 장의 글을 써내려간 괴테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잉크는 분명 우리의 학식을 드높여준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잉크 자국은 화를 돋운다. 활자는 진주와 같고, 잉크 얼룩은 성가신 장난과도 같다!”

이제는 다행히 잉크 얼룩으로 중요한 서류를 망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년필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대통령도, 유럽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필기구인 만년필에는 손글씨만큼이나 화려한 우여곡절의 역사가 있다.

갈대펜 대신 깃펜이 등장했다. 하지만 깃펜으로 글쓰기를 즐기기에는 잉크 얼룩이라는 성가시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갈대펜 대신 깃펜이 등장했다. 하지만 깃펜으로 글쓰기를 즐기기에는 잉크 얼룩이라는 성가시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 사진(부분): © picture alliance / Philippe Maillard / akg-images
기원후 2-4세기 무렵부터 유럽에서는 갈대펜 대신 깃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만년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깃펜에 관하여는 프랑켄 지역 출신의 학자 다니엘 슈벤터(Daniel Schwenter)가 1636년에 쓴 ‘물리수학의 환희(Deliciae Physico-Mathematicae)’에서 최초로 언급된다.

수학자이자 동양어 교수였던 슈벤터는 본 저서에서 깃대 두 개가 결합된 필기구에 관하여 설명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 삽입되어 있는 구조인데, 우선 한 개의 깃대에 잉크를 채운 뒤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는다. 코르크에는 가느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코르크를 눌러 짜서 잉크가 두 번째 깃대로 스며들면, 이 기구로 종이 위에 글씨를 쓸 수 있다.
갈대펜 대신 깃펜이 등장했다. 하지만 깃펜으로 글쓰기를 즐기기에는 잉크 얼룩이라는 성가시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갈대펜 대신 깃펜이 등장했다. 하지만 깃펜으로 글쓰기를 즐기기에는 잉크 얼룩이라는 성가시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 사진: © Adobe
그로부터 대략 200년이 지난 뒤 루마니아 사람 페트라케 포에나루(Petrache Poenaru)가 최초의 만년필을 개발하고 프랑스에서 특허권를 취득했다. 후에 루마니아의 교육체제 구축을 담당했던 포에나루는 파리에서 지도제작을 전공했다. 1827년 파리 시의 담당자들은 포에나루가 “내부 잉크통에서 자동적으로 잉크가 흘러나오는 휴대용 잉크펜(Plume portable sansfinquis’alimenteelle-mêmeavec de l’encre)”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펜촉을 병에 든 잉크에 찍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잉크 얼룩에 대한 걱정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윌리엄 톰슨(Robert Willian Thomson)이 두각을 드러냈다. 1822년 12자녀 중 11번째로 태어난 톰슨은 소년 시절부터 발명가적 기질이 두드러진 아이였다. 17세 때 이미 압착식 다리미, 띠톱, 회전식 증기엔진을 발명했다. 후세가 기억하는 톰슨의 가장 큰 업적은 아마도 공기주입식 타이어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도 톰슨의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1849년 톰슨은 자신이 개발한 만년필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고, 그로부터 2년 뒤 런던 세계박람회에서 이를 선보였다.

톰슨의 만년필은 끝으로 갈수록 뾰족하게 고안된 유리심 안에 잉크를 채우고 고무를 장착하여 ‘모세관 작용 원리’를 이용한 만년필이었다. 잉크가 얇은 관을 통해 위쪽으로 이동하게 한 뒤 잉크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것이었다.
루마니아 출신의 페트라케 포에나루의 발명품은 현대 만년필의 개발에 기여했다.
루마니아 출신의 페트라케 포에나루의 발명품은 현대 만년필의 개발에 기여했다. | 사진: 공공저작물 (초상) | CC BY-SA 4.0 (특허)
만년필은 19세기의 세 가지 발전과 함께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첫째는 경질 고무의 등장이다. 톰슨도 저비용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는 이 경질 고무를 이용했다. 둘째, 이물질의 양이 적은 잉크가 개발되었다. 그 덕분에 글을 쓰는 도중 펜촉 구멍이 막히는 사태도 줄어들었다. 셋째, 좋은 품질의 펜촉이 등장했다. 쇠나 철로 만든 펜촉과는 달리 금으로 만든 펜촉은 잉크에 반응하지 않았고, 종이 위에 미끄러지듯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또한 플라티늄족에 속하는 강철인 이리듐으로 만든 펜촉 팁은 마모 걱정을 줄여주었다. 독일에서는 1871년 프리트리히 죄네켄(Friedrich Soennecken) 사와 1872년 코흐/베버(Koch/Weber) 사가 처음으로 만년필을 대량 생산했다.

책상 위를 점령한 '펠리칸'

하지만 글을 쓸 때 깔끔함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가 있었다. 그 어떤 만년필도 잉크가 균등하게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이는 바로 미국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Lewis Edson Waterman)이었다. 워터맨은 1884년 뉴욕에서 잉크 피더가 장착된 만년필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워터맨 레귤러(Waterman Regular)’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만년필에는 펜촉과 잉크관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 장치는 잉크가 흘러나올 때 공기가 잉크관 안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해주었고, 이로써 잉크관 속의 진공 상태로 인해 잉크가 막히는 사태가 방지되었다. 이제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잉크 얼룩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스포이트 같은 기구를 이용해 잉크 배럴 속에 잉크를 똑똑 떨어뜨려 넣어야 했는데, 20세기 초반 잉크 카트리지가 만들어졌고, 헝가리 출신의 엔지니어 테오도르 코바츠(Theodor Kovács)는 1925년 스크루 나사를 이용한 피스톤식 주입 방식을 개발했다. 코바츠는 자신이 획득한 특허를 ‘펠리칸(Pelikan)’이라는 독일 회사에 팔아넘겼다. 펠리칸 사는 이미 크로아티아의 화학자 슬라볼유브 에두아르드 펜칼라(Slavoljub Eduard Penkala)가 개발한 고체잉크 만년필에 대한 특허권을 구입해놓은 상태였다. 펠리칸 사는 1929년 만년필 생산에 돌입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까지도 독일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펠리칸 만년필은 1950년대 책상 위를 독보적으로 점령했던 필기구였다. 하지만 그 후 이에 도전하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볼펜이다. 볼펜은 만년필과는 또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