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과 가곡
작은 규모의 위대한 음악 – 독일의 실내악과 가곡

현악4중주나 피아노3중주 혹은 가곡은 클래식 음악 분야에 있어 지금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르들이다. 독일의 많은 음악가들은 다시 ‘소규모 형태’의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실내악은 본질적인 것에만 고도로 집중하는 연주 형태이다. 그런데 ‘실내악’이라는 장르 이름에는 양면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적은 인원으로 연주하는 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사회적 교류의 장을 가리키는 전통적 개념이기도 한 것이다. '실내악'을 지칭하는 독일어 단어 '캄머무직(Kammermusik)'의 합성요소 '캄머(Kammer)’는 본디 궁정의 거실을 뜻한다. 봉건주의 시절 개인적 교류뿐 아니라 정치적 회합의 장으로도 쓰이던 곳으로 음악이 필요했던 장소이다. 실내악은 최소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민층이 대두되면서 더 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당시 실내악의 중심지는 대저택의 거실인 ‘살롱’이었다. 그 때부터 실내악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실내악은 소규모의 인원이 모인 개인적 공간에서 연주되기도 하고 대규모 공연장에서 연주되기도 한다. 이후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 연주자들이 등장하면서 실내악은 공공의 영역으로 무대를 넓혔고, 연주장의 규모도 점점 커졌다. 실내악이 최신식 대규모 공연장으로 진출하면서 본디 소규모 장소에서의 연주를 목적으로 했던 실내악의 ‘은밀함’은 조금씩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연장들 중에는 섬세한 예술 형태인 실내악에 딱 맞는 규모와 음향 시설을 갖춘 곳들도 있다. 베를린 필하모니 곁에 있는 실내악 공연장이나 본의 베토벤하우스가 그러한 공간들이다. 그렇다. 실내악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기려면 적절한 환경도 갖춰져야 한다.
 
빈 고전주의 이래 일부 실내악 장르들이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소나타, 피아노3중주, 현악4중주, 금관5중주가 그 장르들이다. 이 밖에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소나타'부터 루이 슈포어의 '9중주 곡'에 이르기까지 실내악은 그 악기 조합과 구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특히 더 큰 매력을 지닌다. 그런가 하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즉 슈베르트가 저녁이면 친구들과 만나 여흥을 즐기며 열었던 작은 음악회 덕분에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는 가곡도 귀족들의 살롱으로 진출했다. 성악가의 목소리로 연출하는 ‘미니 드라마’인 가곡들은 빈 고전주의 시대에도 이미 존재했지만, 이전까지는 전형적으로 낭만주의적 서정시를 통해 표현되었던 개인의 감정 세계는 노래의 형태를 통해 그 예술적 표현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 같은 위대한 연가곡집들은 서구 가곡 문화의 절정을 장식했다. 그러나 요제프 하이든 시절 이래 실내악의 ‘왕’은 누가 뭐라 해도 현악4중주였다.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 볼프강 림(Wolfgang Rihm), 외르크 비트만(Jörg Widmann)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이 고난도의 음악적 대화를 빚어내는 일에 도전했다. 한편 음악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았던 괴테도 4중주가 지닌 민주적 측면 즉, 각 악기들의 평등성에 대해 유명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현악4중주는 네 명의 지식인들이 나누는 대화이다. 그들의 토론에서 무언가를 얻고, 각 악기들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배우는 듯이다.”

실내악은 전문가와 애호가들만의 전유물이다?

실내악은 기이하게도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현상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독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관찰된다. 교육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가정 음악이나 학교 음악을 통한 사회화가 개인의 인격 형성이나 협동심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해 왔다. 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실내악은 늘 화려한 교향곡이나 오페라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합창과 더불어 실내악이야말로 취미로 즐기기에 매우 적합한 장르이지만, 실내악의 가정 음악으로서 가치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취미 음악뿐 아니라 전문 음악가들의 공연 분야에 있어서도 실내악은 청중에서 잘 전달되지 않는 복잡하고 은밀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늘 따라다닌다. 전문가와 애호가들의 전유물이요, 높은 수준의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앙상블의 수가 확연히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실내악의 미래가 밝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독일에 지금처럼 실력 있는 4중주단이 많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주단들이 앙상블 연주만으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지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유명 앙상블인 아르테미스 4중주단(Artemis Quartet)의 멤버들도 여러 대학에 출강 중이고, 1808년 결성된 게반트하우스 4중주단(Gewandhaus Quartet) 단원들의 본업도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파트 수석 연주자들이다. 대부분의 심포니 및 오페라 오케스트라들은 소속 단원들 중 일부를 뽑아 실내악 공연을 개최한다. 이로써 단원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더 큰 동기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의 앙상블 단원들 중에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않고 실내악에 전념하는 이들도 있다. 현대 앙상블곡들을 주로 연주하는 밍구에트 4중주단(Minguet Quartet), 몇 안 되는 피아노 4중주단 중 하나인 세계 최고 수준의 포레 4중주단(Fauré Quartet)은 실내악 활동만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귀를 열고 즐기기

수많은 이니셔티브들 덕분에 독일 실내악은 지금처럼 높은 수준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독일음악협회(Deutscher Musikrat)는 다양한 대회들을 개최하며 실내악의 발전을 뒷받침해 왔다. ‘청소년 음악 콩쿠르(Jugend musiziert)’는 지역 및 전국 차원에서 앙상블 연주를 장려하고 있고, ‘독일 음악 콩쿠르(Deutscher Musikwettbewerb)’는 입상자들에게 실내악 공연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약 10개의 독일 음악대학에 실내악 전공 과정이 있고, 공영 방송사들은 ‘ARD 국제 음악 콩쿠르(Internationaler ARD-Musikwettbewerb)’ 수상자들을 비롯한 재능 있는 앙상블들의 연주를 방영한다. 매년 다양하게 구성되는 ARD 국제 음악 콩쿠르의 경쟁 부문에는 실내악 부문도 주로 포함되곤 한다. 한편 독일에는 수익성이 크지 않은 현악4중주단이나 피아노3중주단 분야에 집중하며 실내악 발전에 기여하는 음악 에이전시들도 있다. 시민 차원에서 손해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실내악 공연을 조직하는 사례들도 많다. 이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단체는 아마도 뉘른베르크 민간음악협회(Nürnberger Privatmusikverein)일 것이다. 아이펠 산맥 인근에 위치한 하임바흐의 한 발전소에서 개최되는 ‘슈판눙엔(Spannungen)’ 여름 실내악 축제나 드레스덴 인근의 모리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축제 등 유명 실내악단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실내악 축제들은 대중들의 발길을 끄는 매력이 있다. 이러한 축제들은 광범위한 지역에 문화의 빛을 밝히는 등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 크리스티네 섀퍼(Christine Schäfer),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 같은 오페라계의 대스타들이 출연하는 가곡 공연은 실내악 공연보다는 청중들의 마음을 좀 더 쉽게 사로잡는 편이다. 크리스토프 프레가르디앙(Christoph Prégardien), 토마스 크바스트호프(Thomas Quasthoff),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 크리스티안 게르하허(Christian Gerhaher)처럼 서정적 음색을 지닌 성악가들도 독일 최고의 가곡 해석자들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가곡 분야도 실내악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마치 실내악이 교향곡 앞에서 늘 작아지는 것처럼,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 무한한 칭송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곡 역시 오페라에 비해 발 붙일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독일 음악대학들은 오래 전부터 성악 분야 내에 오페라와 가곡의 두 전공 과정을 동시에 운영해 왔다. 가곡 장르만 대상으로 하는 특별 콩쿠르들 역시 이 분야의 후진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후고볼프협회(Hugo-Wolf-Akademie)에서는 1987년부터 ‘가곡 예술을 위한 국제 콩쿠르(Internationaler Wettbewerb für Liedkunst)’를 개최하고 있는데,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가곡 대회 중 하나이다. 토마스 크바스트호프가 2009년 베를린에서 창립한 국제 가곡 콩쿠르 ‘다스 리트 (Das Lied)’는 가장 최근에 조직된 가곡 대회 중 하나이다. 실내악과 가곡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별한 사전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귀를 활짝 열고 선입견을 버리고 들리는 선율에 몸을 싣기만 하면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