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시대의 변화 – 독일의 오케스트라

독일에는 130개가 넘는 전문 오케스트라가 있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수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성장해 온 이 수많은 오케스트라들을 유지하는 일은 모두에게 쉽지 않은 도전 과제이다.

독일은 오케스트라 종목의 세계 챔피언이다. 특히 공공 재정으로 운영되는 극장 오케스트라나 연주 오케스트라, 방송관현악단 등은 독일 음악계의 구조와 색채를 이루며 폭넓은 사운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세계 각지에서 초빙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진정한 ‘독일의 소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일부 청중들은 영국 출신의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le)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베를린 필하모니의 음악적 전통의 고유한 소리에도 변화가 일었다고 말하기도 하며, 심지어 그 소리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는 평가도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음악 해석 방식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아름다운 소리의 기준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숫자뿐이다. 독일 지도에 오케스트라들의 소재지를 표시하면 얼마나 조밀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케스트라가 밀집된 다섯 지역이 있다. 라인-루르 지역, 튀링겐과 작센 주, 라인-마인 지역, 뮌헨 시 그리고 수도 베를린이다. 이 밀집지역을 제외하고는 오케스트라의 분포가 고른 편이다. 독일에는 총 130개의 전문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그 중 약 80개는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 30개는 독립된 연주 오케스트라, 13개는 방송관현악단이다. 단원 수는 모두 합해 약 만 명에 달한다. 브레멘 챔버필하모니(Kammerphilharmonie Bremen), 콘체르토 쾰른(Concerto Köln), 뮌헨 챔버오케스트라(Münchner Kammerorchester),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와 같은 수많은 챔버오케스트라와 구음악 또는 신음악에 특화된 특별 앙상블들도 독일 오케스트라계를 지탱하는 주요 버팀목 중 하나이다. 연방청소년오케스트라(Bundesjugendorchester)나 청년독일필하모니(Junge Deutsche Philharmonie)처럼 음악 꿈나무들로 구성된 대규모 앙상블들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및 앙상블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의 단원수와 악기 조합은 매우 다양하다.
독일이 그 어느 국가보다도 많은 오케스트라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정치사와 관련이 깊다.

독일 오케스트라의 역사

18-19세기 수많은 군소국으로 영토가 갈라져 있던 시절, 각국의 중심지에 궁정 극장과 궁정 오케스트라들이 생겨났다. 이후 절대왕정 시대가 마감되면서 이들은 시민계층을 위한 국가 및 지자체 기관들로 변모했다. 하지만 문화적 야심은 그대로 계승되어 연방주와 시 당국은 음악 진흥 활동들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통일 전까지 동독 정부 차원에서 보장되었던 동독의 막강한 오케스트라계도 변화를 겪어야 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많은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의 해체나 합병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시민들이 클래식 공연에 눈을 뜨게 되면서 오케스트라들은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연주하게 되었다. 고전파, 낭만파 그리고 고전파를 계승한 현대음악 등은 지금도 오케스트라 공연 프로그램을 늘 장식한다. 레퍼토리의 중심에는 대개 베토벤과 브람스 혹은 말러와 쇼스타코비치의 유명 심포니들이 있다. 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쇤베르크, 베르크, 프로코피예프, 라벨의 작품과 같은 20세기 초반의 현대음악이 한스 베르너 헨체나 볼프강 림과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보다 더 자주 연주된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거장의 연주가 지니는 흡입력 역시 클래식 공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독일 오케스트라계에서는 공영 방송사들이 매우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독일에는 공영 방송사들이 운영하는 총 13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그 중에는 함부르크, 베를린, 쾰른,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바덴바덴/프라이부르크, 자브뤼켄, 뮌헨의 방송교향악단과 같은 대규모 오케스트라들도 있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들도 있다. 방송관현악단들은 초기에는 동시대 음악을 공연하거나 녹화해서 방영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가 하면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무지카 비바(Musica viva)’와 같은 공연 시리즈가 기획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송관현악단들은 레퍼토리 면에서나 연주 실력 면에서나 국제적인 대형 오케스트라들과 우열을 다투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초빙된 수석 지휘자들은 점점 더 높은 수준을 추구하고 있고, 수많은 순회 공연과 음반제작 활동들은 오케스트라의 예술적 수준과 국제 경쟁력을 입증해준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걱정

독일의 오케스트라들은 1952년부터 독일오케스트라연합(Deutsche Orchestervereinigung)에 소속되어 있다. 독일오케스트라연합은 처음에는 독일사무직노조(Deutsche Angestellten-Gewerkschaft)와 손을 잡았다. 단원들의 고용관계, 저작권 관련 문제, 임금 문제도 이 노조와의 협상으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2002년 통합서비스노조(Vereinte Dienstleistungsgewerkschaft)와 협력계약을 맺었다. 독일 오케스트라들의 채용 규모나 임금 수준은 법적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오케스트라들은 단원 수에 따라 A, B, C, D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A등급 오케스트라로는 예술적 수준 면에서나 국제적 명성 면에서나 벌써 100년째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니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니, 베를린 국립관현악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밤베르크 교향악단 등이 A등급 오케스트라에 속한다. 이 오케스트라들은 사이먼 래틀 경, 크리스티안 틸레만, 발레리 게르기예프, 다니엘 바렌보임, 안드리스 넬슨스, 로저 노링턴 등과 같은 국제적으로 이름난 수석 지휘자들 덕분에 더욱 더 큰 명성을 누린다.

‘음악의 나라’ 독일에서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극장과 더불어 매우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독일 오케스트라들이 겪고 있는 존속 위협의 문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은행권이 재정 위기를 맞고 있고 공공 분야는 재정 감축만 외치는 상황에서 그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혹은 얼마나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