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를린국제영화제 블로거
두려움을 이용한 초현실적 접근

영화 ‘우리는 죽어도 좋다(Wir könnten genauso gut tot sein)’에서 안나 옥토푸스. 감독: 나탈리야 시넬니코바의
영화 ‘우리는 죽어도 좋다(Wir könnten genauso gut tot sein)’에서 안나 옥토푸스. 감독: 나탈리야 시넬니코바의 | 사진(부분): © Jan Mayntz / HEARTWAKE films

공상 과학의 그로테스크함이거나 장기 관찰 다큐멘터리이거나: 세 편의 독일 영화는 아파트에서의 삶에 집중한다.

전염성 질병? 최근 들어 반사회적이거나 그 외 어떤 부도덕한 행동으로 눈에 띈 적이 있는가? 그렇다,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보안 검색은 까다롭고, 나탈리야 시넬니코바의 작품 ‘우리는 죽어도 좋다(Wir könnten genauso gut tot sein)’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공원이 딸린 목가적인 고층 주택단지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고층 주택단지는 차세대 영화인의 섹션인 독일 영화의 관점(Perspektive Deutsches Kino)의 포문을 여는 시넬니코바의 작품 속에서 초현실적인 디스토피아로 묘사된다.

신뢰는 좋고, 끊임없는 통제는 더 좋다. 이 공상 과학 비전이 실제로 어느 정도는 영화제 장소인 포츠다머 플라츠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물론 순전히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영화 속에서 검문을 담당하는 보안요원 안나는 또 하나의 음흉한 계략인 동시에 우리의 공감을 받는 존재이다.

연약한 안전감

신중하게 엄선된 이 부유한 입주민들은 지속적인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위협은 보이지 않거나 어쩌면 공상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저녁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끊임없이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요구하며 그 위협에 맞서 싸운다. 개 실종 사건처럼 한가지 평범한 사건에도 이곳 입주민들의 연약한 안전감은 공격받는다.

감독은 부르주아 편집증에 대한 이 어처구니없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독일에서 겪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 할당 난민(Kontingentflüchtling)으로, 199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모님과 함께 독일에 왔다. 이로써 영화 속 낯섦과 상호 불신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수긍된다. 그 외에는 이 영화가 완전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의 눈에는, ‘자기 복제 시스템으로서 두려움이 가진 힘’에 관한 시넬리코바의 이 연구를 민감성을 주제로 한 최근 사회적 담론에 관한 적절한 분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외곽으로 조망

아파트라는 주제는 묘하게도 두 편의 다른 독일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둘은 모두 베를린 외곽에서 촬영했다. 제너레이션(Generation) 부문에 속한 ‘칼레, 우주 비행사(Kalle Kosmonaut)’는 열여덟 살 진짜 건방진 ‘길거리 소년’ 칼레를 장기간 관찰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취약 가정 출신으로 감옥에 가고, 곧 더 나아질 삶을 꿈꾼다. 감독인 티나 쿠글러와 귄터 쿠어트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의 삶을 따뜻하며 현실에 가깝게, 그리고 진부하지 않게 보여준다. 파노라마(Panorama) 부문에 속한 이자벨 슈테버 감독의 ‘그랑 제떼(Grand Jeté)’가 말하는 바 역시 항상, 그리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은밀한 가족 드라마는 ‘도덕적 관습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아들 간의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물론 이는 가능한 모든 사회적 배경이나 주거 형식에서 등장할 수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주제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