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의 최근 디자인 트랜드
인식한 것에 대해 감정을 느끼기까지

슈테판 슈바베 | 거트 파더,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슈테판 슈바베 | 거트 파더,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 © 슈테판 슈바베

100년 이상의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할레의 부르크 기비헨슈타인 예술대학은 늘 형태와 디자인의 유용성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들을 모색해오곤 했다. 대학 이름에 포함된 ‘기비헨슈타인 성’이라는 지명 역시 할레 예술대학의 흔들림 없이 탄탄한 전통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디자인 학과의 현재 모습에는 약간의 변화가 일고 있는 듯하다.

노이베르크 거리에 위치한 현대적 디자인 캠퍼스는 중세 요새나 성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잘레 강을 낀 소박하고 포근한 주변 풍경과 대비를 이루며 위풍당당한 면모를 자랑한다. 이 대학 총장 출신으로 지금은 건축학 및 인테리어학을 가르치고 있는 악셀 뮐러-쉘(Axel Müller-Schöll)은 이것이 바로 이 대학의 특징이라 말한다.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예술대학이라는 위상과 명성을 이 지역 내에서 보다 드높여 나가야 한다. 그냥 이 도시 자체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류에 따른 작업실 역할의 변화

할레 예술대학의 작업실들은 1920년대 바우하우스와 더불어 독일 디자인 분야의 결정적 견인차 역할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바우하우스가 기능성을 강조한 ‘쿨’한 테크니시즘의 상징이었다면, 할레 작업실들은 디자인의 유기적 발전을 꾀한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 위해 당시 할레의 작업실들은 소재 자체나 생산 공정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전통이나 본능적 감정과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디자인을 추구해왔다. 지금도 할레 예술대학은 ‘작업실 원칙’이라는 슬로건 하에 수공업과 예술을 결합시키며 해당 분야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금도 대학의 커리큘럼은 산업디자인과 인테리어, 패션, 가상 설계 등 디자인과 관련된 과목들 외에도 다른 곳에서는 잘 가르치지 않는 도자기, 유리, 패브릭, 게임, 학습용 교재 디자인까지 다양한 과목들을 포함하고 있다. 할레 예술대학 캠퍼스에는 크고 작은 작업실 총 42개가 모여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작업실’이나 ‘수공예’ 같은 표현들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다.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도 디지털화와 하이브리드화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모든 작업실들이 말하자면 1개의 거대한 중앙집중형 작업실로 통합되었고, 모두가 함께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뮐러-쉘은 말한다. "작업실은 지나간 역사와 전통만을 보존하는 과거의 공간이 아니다. 작업실은 학생들이 디지털 프린터를 이용해 기존의 프린터들로 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도록 하는,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부르크 기비헨슈타인 예술대학은 산업디자인 분야의 강자로 유명세를 타면서 1956년 이후 동독 내 주요 교육기관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 시기에 수공예 기술은 공장의 대량생산에 밀려 뒷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당시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 시절에 대해 획일화된 디자인, 획일화된 단순한 형태, 개성의 부재를 먼저 떠올린다. 당시 루돌프 호른(Rudolf Horn)과 같은 아티스트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강단에 섰던 루돌프 호른은 대량생산 위주의 기획경제 속에서도 ‘민주적’ 디자인을 꿈꿨던 아티스트로, 이를테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가구들을 디자인하면서도 디테일한 형태는 개성에 맞게 변화가 가능한 방향을 추구했다. 악셀 뮐러-쉘에게 있어 동독 시절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그 시절의 역사가 ‘등 뒤의 바람’이 되어 이제 무언가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려는 시도, 좀 더 개선하려는 시도를 고취시키고 참여정신을 고무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 대학의 학생들도 이러한 가치관의 바탕 위에 잠재력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디자인

한편, 동독 시절의 역사가 예전과는 다른 구조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부르크 대학’을 거쳐간 많은 졸업생들은 응용디자인 분야에 집중하거나 사회적 문제와 연관된 창의력을 남들보다 더 많이 발휘하고 있다. 좀 더 책임감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는 분명 과거 역사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뮐러-쉘은 “사회적 주제들에 더 큰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대학 입학생들 중 다수가 구동독 시절의 격변 상황을 가까이서 겪었고, 구서독 지역 학교들과는 달리 경제적 안전망이 없는 가정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분명 사회를 대하는 태도나 그 속에서 자신이 설 곳을 모색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말한다. 실제로 부르크 대학은 과거의 기본적 교육 원칙에 입각해 지금도 학생들에게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까지 가르친다. 이에는 자신들을 둘러싼 경제적 상황 속에서 각자가 취해야 할 태도도 포함된다. 오늘날 각 기업의 마케팅 부서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타깃그룹을 선정한 뒤 그 그룹에 통할 만한 디자인을 외부에서 구입하는데, 그럴 때 디자이너가 제품에 대해, 혹은 해당 기업에 대해 자신만의 태도를 주장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케이스는 없을 것이라고 뮐러-쉘은 말한다.
 
오늘날의 디자인계는 제품에 기능성을 더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능적 효용성이 반드시 폭발적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제품 자체와 그 목적에 부합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할레는 원래부터 시계가 느리게 돌아가는 고요한 도시이다. 이러한 특징은 오늘날의 디자인계가 목말라 하는 집중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뮐러-쉘은 말한다. “정보를 소화하기까지는 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우리가 인식한 것에 대해 감정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디자인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로 이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6명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모두 부르크 대학 출신으로, 실용성과 미학 사이의 경계에 놓인 디자인, 사회적 문제 제기와 예술적 스타일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디자인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오늘날의 디자인이 안고 있는 과제들에 대해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진지한 고민을 통해 답변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디자인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슈테판 슈바베

  • 슈테판 슈바베 | 그로잉 어 롤, 2012 © 슈테판 슈바베

    슈테판 슈바베 | 그로잉 어 롤, 2012

  • 슈테판 슈바베 | 그로잉 어 롤, 2012 © 슈테판 슈바베

    슈테판 슈바베 | 그로잉 어 롤, 2012

  • 슈테판 슈바베 | 거트 파더,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 슈테판 슈바베

    슈테판 슈바베 | 거트 파더,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 슈테판 슈바베 | 거트 멘토 시나리오,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 슈테판 슈바베

    슈테판 슈바베 | 거트 멘토 시나리오,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 슈테판 슈바베 | 거트 멘토 캡슐,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 슈테판 슈바베

    슈테판 슈바베 | 거트 멘토 캡슐, 2016 | 프라운호퍼 책임연구혁신센터 및 제바스티안 클레찬더와의 공동 작업

슈테판 슈바베(Stefan Schwabe)만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하이브리드화를 뚜렷이 보여주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디자인과 예술 그리고 자연과학이 만나는 경계지점을 공략하는 슈바베의 작품들은, 학문적 깨달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슈바베는 프라운호퍼 연구소 산하 책임연구혁신센터(CeRRI) 그리고 유리공예가 제바스티안 클라첸더(Sebastian Klatzender)와의 협업으로 2016년 ‘거트 파더(Gutfather)’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거트 파더는 인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미생물들의 영향을 받아 형상이 변화하다가 결국 스스로 미생물 군집이라는 대상물이 되어 체외로 분비되는 캡슐이다. 이 때 형이상학적으로 표현된 ‘거트 필링(gut feeling)’, 즉 ‘직감’이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닌 미생물 군집과 학문적 관점에서 만나면서 하나로 통합된다. 그런가 하면 2012년에는 ‘그로잉 어 롤(Growing A Roll)’이라는, 세균성 섬유소에서 끊임없이 회전하며 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치를 선보였다. 이 롤은 그 자체로 취식이 가능할 뿐 아니라 다른 제품의 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한다. 슈바베는 2010년부터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슈바베의 프로젝트들은 바이오 기술과 관련된 실험적 작품들로, 시촉각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슈바베는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인 공간 속에서 이미지와 재료에 기반을 둔 언어를 모색하는 가운데에(in search of an image and material based language for the space in which words stumble and fall)” 일종의 시학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트예 뫼니히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 프로젝트 | 독서 중인 소녀 헨리에테 © 마르코 바무트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 프로젝트 | 독서 중인 소녀 헨리에테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 안트예 뫼니히

    안트예 뫼니히 |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의 표지 및 내용


“앞으로 내가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걸 과연 정말 공부할 수 있게 될지,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모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예술 쪽을 공부하고 싶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 분야에서 과연 나 같은 … (손바닥을 마주치며) 시각장애인을 받아줄지 모르겠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6세 소녀 헨리에테 쉐트너(Henriette Schöttner)의 말이다. 헨리에테는 시력이 정상인의 10-20%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할레의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11학년 학생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안트예 뫼니히(Antje Mönnig)가 자신의 책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포용(Unmöglich. Aber machbar. Inklusion für blinde und sehbehinderte Schüler)’을 쓰기 위해 인터뷰한 인물들 중 하나이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처한 교육상황과 교육제도의 현실을 헨리에테 같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주는 이 저서는 안나 베르켄부쉬(Anna Berkenbusch) 교수의 지도 하에 편집디자인을 전공한 뫼니히의 졸업논문으로, 2016년 라이프치히 독일중앙점자도서관(DZB)을 통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시각장애 학생들과의 대화들과 더불어 ‘포용(inclusion)’과 ‘통합(integration)’의 차이에 관한 뫼니히의 고찰, 시각장애우들의 편의를 돕기 위한 타이포그래피 등도 실려 있다.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학교에 관한 견해를 제시하고, 기존 출판사들을 통해 출간된 교재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교사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 수업 보조도구들을 찍은 사진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매우 유용한 책이며, 정성과 비용이 많이 투자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텍스트로 된 정보 외에도 가독성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개발을 위한 기반을 제시한다. 점자가 인쇄된 검은 표지, 가독성 저하 체험을 위해 일부러 끼워 넣은 비닐 페이지 등이 그 예인데, 이를 통해 일반 독자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불가능하지만 해낼 수도 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포용’은 2014년 해당 분야에서의 기여도를 인정 받아 할레 예술대학교에서 시상하는 디자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로만 빌헬름 羅小弟

  • 로만 빌헬름 | ‘향(香) – 시각적 방언들과 지역적 문화정체성의 힘(Heung – visual dialects and the power of local cultural identity)’ 프로젝트의 포스터,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향(香) – 시각적 방언들과 지역적 문화정체성의 힘(Heung – visual dialects and the power of local cultural identity)’ 프로젝트의 포스터, 2015

  • 로만 빌헬름 | ‘향(香) – 시각적 방언들과 지역적 문화정체성의 힘(Heung – visual dialects and the power of local cultural identity)’ 프로젝트의 포스터,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향(香) – 시각적 방언들과 지역적 문화정체성의 힘(Heung – visual dialects and the power of local cultural identity)’ 프로젝트의 포스터, 2015

  •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라오와이 송’ 폰트, 타이포그래피 타입들, 2015

  • 로만 빌헬름 | ‘향(香) – 시각적 방언들과 지역적 문화정체성의 힘(Heung – visual dialects and the power of local cultural identity)’ | 홍콩, 2015 © 로만 빌헬름

    로만 빌헬름 | ‘향(香) – 시각적 방언들과 지역적 문화정체성의 힘(Heung – visual dialects and the power of local cultural identity)’ | 홍콩, 2015

‘라오와이(老外)’는 ‘외국인’을 뜻하는 중국어 속어이다. 로만 빌헬름(Roman Wilhelm)은 자신이 최초로 개발한 한자 폰트에 ‘라오와이 송(Laowai Sung, 老外宋)’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빌헬름은 33,000개에 달하는 상형문자들을 작업하기 위해 무려 5년을 투자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완벽하고 원활한 사용을 위해 이 모든 폰트들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미비함, 즉 불완전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과 목적으로 개발했다는 것이 작가 자신의 설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개발된 글자들은 타이포그래피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낯설음'을 주제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빌헬름은 할레 대학과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연구작업을 진행해 왔고, 베이징, 홍콩, 서울에서 강의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와 저서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그리고 사운드 설치물들을 통해 청각적으로 발현된다.  빌헬름의 작업 속에서 사운드와 타이포그래피는 경계선을 가진 길을 설정해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스스로 새로운 신호들을 만들어 내며 외연을 넓혀가는 도구이다.

카롤린 슐체

  •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 카롤린 슐체

    카롤린 슐체 | 가짜 토끼 / 벅스 버니, 2014

세균성 섬유소가 또 한 번 등장한다. 카롤린 슐체(Carolin Schulze)의 ‘문화주머니’도 세균성 섬유소로 만든 것이다. 문화주머니는 ‘요리 해킹(Culinary Hacking)’ 프로젝트의 스타터 키트로, 발효의 기본 기술들을 전달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슐체는 식품영양학적 문화기술을 연구하는 동시에 이 기술이 오늘날 지니는 사회생태학적 의미를 파고드는 디자이너이다. 여러 개의 상을 수상한 프로젝트 ‘가짜 토끼/벅스 버니(Falscher Hase / Bugs’ Bunny)’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사실 ‘가짜 토끼’는 독일식 미트로프를 뜻하는 말로, 잘게 간 고기로 만든 요리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거저리 반죽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작은 토끼 모양으로 만든 뒤 튀기는 요리이다. 산업디자이너인 슐체는 자신의 작업이 식료품 분야에 새로운 영감을 심어주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슐체의 의도는, 현재의 문화적 특성이 생태사회학적 진보를 거스르고 있고, 원재료를 감축하는 식료품 생산 방식에 방해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트랜드를 수정하는 길은 문화적 방법을 활용하는 길 밖에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즉, 우리 눈을 좀 더 넓은 미식의 세계를 향해 뜨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니 토끼 튀김은 책임 있는 푸드디자인 방식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너무 진지한 방식보다는 조금은 황당한 방식으로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슐체에게 있어 디자인은 문화적 관습들을 위트와 신기술을 이용해 가시화하는 동시에, 이러한 문화적 관습들에 맞서는 실현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도구이다.

크노트 & 렌너

  • 크노트 & 렌너 ‘move-ON’ | 베르클라이츠 축제 웹사이트, 2015 © 크노트 & 렌너

    크노트 & 렌너 ‘move-ON’ | 베르클라이츠 축제 웹사이트, 2015

  • 크노트 & 렌너 | 스포트라이트 | 스위스 뮤지션 ‘괼딘 & 비트 튜너’의 앨범 웹사이트, ‘!메디엔그루페 비트니크(!Mediengruppe Bitnik)’와의 공동 작업 © 크노트 & 렌너

    크노트 & 렌너 | 스포트라이트 | 스위스 뮤지션 ‘괼딘 & 비트 튜너’의 앨범 웹사이트, ‘!메디엔그루페 비트니크(!Mediengruppe Bitnik)’와의 공동 작업

  • 크노트 & 렌너 | 베르클라이츠 축제 포스터, 2016 © 크노트 & 렌너

    크노트 & 렌너 | 베르클라이츠 축제 포스터, 2016

  • 크노트 & 렌너 | 베르클라이츠 축제 웹사이트, 2016 © 크노트 & 렌너

    크노트 & 렌너 | 베르클라이츠 축제 웹사이트, 2016

  • 크노트 & 렌너 | 베르클라이츠 축제 포스터, 2016 © 크노트 & 렌너

    크노트 & 렌너 | 베르클라이츠 축제 포스터, 2016

  • 크노트 & 렌너 | 빌레펠트 및 뉘른베르크 예술협회 주관의 ‘투명성(Transparenzen) 2015’ 전시회 웹사이트 © 크노트 & 렌너

    크노트 & 렌너 | 빌레펠트 및 뉘른베르크 예술협회 주관의 ‘투명성(Transparenzen) 2015’ 전시회 웹사이트

크리스토프 크노트(Christoph Knoth)와 콘라트 렌너(Konrad Renner)의 첫 만남은 2005년 부르크 기비헨슈타인에서 이루어졌고, 이후 2011년부터 두 사람은 베를린과 라이프치히에서 공동 작업을 추진해왔다. 작업 대상 분야는 주로 예술 및 학술 분야의 웹사이트 디자인이나 시각적 정체성 전시 분야이다. 두 사람은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독일관과 뉴질랜드관의 디자인을 담당했고, 취리히의 쿤스트할레,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 할레의 베르클라이츠(Werkleitz) 축제를 담당하기도 했다. 크노트와 렌너가 디자인을 담당한 웹사이트들은 사이트 방문객들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다. 웹사이트 자체에 유저들이 흔적을 남길 수도 있고, 배경을 조절하거나 탐사할 수도 있다. 크노트와 렌너는 콘셉트아티스트인 괼딘(Göldin)과비트튜너(Bit-Tuner)의 오디오비주얼 웹앨범 ‘쉬베르퍼(Schiiwerfer)’의 그래픽 및 타이포그래픽 작업에도 참가했다. 크노트는 최근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Creators Projec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그래픽디자이너에게 있어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앨범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 되었다.” 크노트와 렌너는 대학에도 출강하고 있다. 현재는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학과의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콘라트 로외페너

  • 콘라트 로외페너 | 수납용 시스템 선반 ‘스플리트’ 사진 © 레오 피알라

    콘라트 로외페너 | 수납용 시스템 선반 ‘스플리트’

  • 콘라트 로외페너 | 수납용 시스템 선반 ‘스플리트’ 사진 © 레오 피알라

    콘라트 로외페너 | 수납용 시스템 선반 ‘스플리트’

  • 콘라트 로외페너 | 접이식 의자 ‘서클’ 사진 © 콘라트 로외페너

    콘라트 로외페너 | 접이식 의자 ‘서클’

  •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사진 © 콘라트 로외페너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사진 © 콘라트 로외페너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사진 © 콘라트 로외페너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사진 © 콘라트 로외페너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사진 © 콘라트 로외페너

    콘라트 로외페너 | ‘trouble의 t’

‘순수한 형태’를 둘러싼 논란은 디자인 역사상 가장 오래된 논란 중 하나이다. 할레 예술대학과 코펜하겐 덴마크디자인스쿨을 졸업한 뒤 각종 제품 및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콘라트 로외페너(Konrad Lohöfener)가 자신의 버전으로 그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로외페너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이다. 그는 기본에 충실한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을 통해 여유와 긴장이 넘치는 공간을 창출해낸다. 매우 심플하면서도 높낮이와 폭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수납용 시스템 선반 ‘스플리트(split)’나 여러 개의 상을 휩쓴 접이식 의자 ‘서클(circle)’이 대표적 작품들이다. 이 중 서클은 단 2개의 줄만으로 의자의 모양이 유지되는 시스템인데, 이 줄들이 의자에 앉은 이의 체중과 결합하며 의자의 형태를 유지하는 장력으로 전환되는 원리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도 대상으로 개발된 나무퍼즐 ‘포르마(forma)’는 3개의 기본 모양과 2개의 색상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각 조각들을 돌리고 조합하고 결합하면 수많은 모형들이 탄생된다. 현수교의 원리에서 영감을 받은 로외페너의 오브제들은 무겁고 튼튼한 물체와 초경량 물체가 대비를 이루며 공중에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콘크리트 소재가 매우 단순한 설치 방식을 만나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형 물체가 가느다란 줄이나 막 형태의 구조물과 만나며, 정역학이 동역학을 만나는 식이다. 그러다가 때로는 디자인과 실용성이 갈등으로 치닫기도 한다. ‘trouble의 t(t stands for trouble)’는 밑쪽에 벨트끈이 달려 있는 탁자로, 패싸움용 방패로 쓰일 것만 같이 생겼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