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이제는 즐겨라!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아이제 에르크멘의 ‘물 위에서’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아이제 에르크멘의 ‘물 위에서’ | 사진: 엘마 크렘저(picture alliance / Sven Simon)

독일 뮌스터와 마를에서 열리는 조각 프로젝트가 공공장소들을 탐색한다. 과거에는 이 행사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현대미술은 아직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현대미술은 더 이상 예전의 부랑아 같은 모습을 띠지 않는다. 특히 이 곳 뮌스터(Münster)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미술 대형 전시회인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가 개최되는 첫 주말, 사람들은 줄을 서서 관람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제 에르크멘(Ayşe Erkmen) 의 초청에 응하여 물가를 건너기 위해 노인들이 베이지색 여름바지를 접어 올리고, 법대 여학생들이 치마를 걷어 올린다. 뮌스터 미술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던 아이제 에르크멘이 항구 유역에 박아 놓은 울타리 덕분에, 한쪽 물가에서 건너편으로 건너는 동안 무릎까지만 물이 닿는다. 항구가 자랑했던 거친 풍모는 이미 옛날에 사라졌다. 물가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셀 수 없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뮌스터에서는 미술이 더 이상 위험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시적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미술은 사람들을 동굴 밖으로 유인하고, 자전거를 타게 만들고, 물건 찾기 게임을 하듯 도시 사이사이로 인도한다. 이렇듯 관객들이 많이 움직여야 하는 전시회인 만큼, 은행이나 문화재단 외에도 의료보험사들이 조각 프로젝트를 건강 예방책으로서 지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뮌스터 시민들은 10년마다 개최되는 이 조각 프로젝트를 거세게 반대했다. 1977년과 1987년에 개최된 첫 두 행사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뮌스터는 전후에 재건되면서 특유의 안락함을 자랑했는데, 조각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모더니즘이 이러한 분위기를 깨뜨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뮌스터 시민들과 수많은 관객들이 조각 프로젝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전독일이 아나키, 물리적 존재, 자칭 반상업주의의 숨결을 갈망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와 같은 테마들의 숨결은 국가가 지원하고 있는  현대미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술은 탄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저항한다. 하지만 미술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강한 저항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토마스 쉬테(Thomas Schütte)는 공원에 소형 핵대피소를 설치했는데, 녹슨 대피소의 붉은 빛이 꽃이 만개한 정원과 제법 조화를 이룬다.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의 작품은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 공표되었던 역사적 장소, 바로 뮌스터 시청사의 홀에서 진행된다. 여섯 명의 젊은 행위 예술가들이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 집회 등 다양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몸으로 표현한다. 관객들은 나무벽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사진을 찍는다. 세계의 역사도 하나의 관광 상품일 뿐이다.

마를 전시로 치솟은 자기만족감

미국 출신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가 운영하는 문신 시술소에서는 문신을 원하는 65세 이상의 고객들에게 문신 비용을 할인해 준다. 자녀들이 귀 뚫는 것을 반대했던 세대가 이제 스스로 문신을 하라는 것이다. 몸에 새길 수 있는 문구들로 ‘Older Lady(노파)‘, ‘nicht reanimieren(소생 금지)‘와 같은 단어들이 보이는데, 그다지 기분 좋은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이러한 차별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조각 프로젝트의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는 배부른 미술은 미술 본연의 의미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한 기자회견에서 ‘예술이 먹고 사는 문제를 대신하지 않는다‘ 며 비판했다. 먼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다른 것을 논할 여유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람은 이 사실을 잊기 쉽다. 금년에는 뮌스터 근처의 궁핍한 산업 소도시 마를(Marl)에서도 조각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 도시는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번성했는데,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호수 주위의 시청, 박물관, 쇼핑센터에 수많은 모더니즘 조각상이 설치되면서 마치 아방가르드 앙상블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돈이 없어서 시청 앞에 있는 분수의 물조차 말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뮌스터 시민들이 예전 조각 프로젝트의 초안들을 마를의 박물관 지하실로 옮기고 조각상 몇 개를 보낸다고 해서 마를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리한 점에서 보면, 금년 카셀의 도큐멘타 전시회가 제2의 행사장소인 아테네를 단지 곁다리 장소로만 생각하지 않고 동등한 권위를 가진 파트너로 대우한 것은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단호한 결정능력이 조각 프로젝트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방문자들은 반나절 정도 마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편안한 소나기 이상의 경험을 얻지 못한다.  쇼핑센터는 반쯤 비어 있고, 박물관은 이런 큰 행사에도 작업 선반 하나 마련할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드는 미술

 이 행사는 뮌스터 시민들, 더 크게 보면 서독 사람들의 자기만족감에 타격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만족감을 치솟게 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마를을 진정한 두 번째 중심지로 만들었다면 정말 놀라운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마를에서는 음식도 변변치 않고, 역에서 내려 여행가방을 보관할 수도 없고, 극장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마를을 동등한 권위를 가진 파트너 전시장으로 여겼다면, 적어도 전시 기간에만이라도 이런 부분들을 개선시켰어야 했을 것이다. 전시장에 뮌스터 시민들만큼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았다고 해서 마를 시민들만을 탓하긴 힘들다. 예를 들어 마를 인근 학교에서 상영된 영상 작품들을 보면 뮌스터에 전시된 우수한 작품들과 수준 차이가 드러나는데, 지역적 격차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들 정도이다.
 
뮌스터는 최근 작품 교류를 통해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골프 선수와 교회 첨탑과 함께 꾸며진 루드거 게르데스(Ludger Gerdes)의 ‘두려움(Angst)’이라는 네온사인 작품은 원래 마를 관청 앞에 걸려 있는데, 최근에는 이 작품을 뮌스터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조각 프로젝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LWL 미술문화박물관 건너편에 이 작품이 걸려 있다. 세계가 모더니즘 미술을 두려워했던 혁명적인 시대와 비교해보면, 미술의 모습이 너무나도 변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엔터테인먼트가 미술계를 잠식하고 있는 오늘날, 섬뜩함의 대가라고 불리는 그레고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마저 이 흐름에 휩쓸려가고 있다. 그는 박물관 외벽에 문을 사용해서 미로를 만들었는데, 유령열차가 유치하게 느껴지는 방문객들에게 적당한 오싹함을 주는 작품이다.
 
오늘날 미술은 경험을 창조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현실 장소로 모여들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미술의 능력이 상업적 압박과 무관하게 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각 프로젝트는 축구 경기나 놀이공원과 구별된다. 조각 프로젝트는 미술가와 관람객들이 공공장소에서 새로운 형식의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한다. 뮌스터의 수많은 장소에서 이러한 일들이 환상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 출신의 미술가 오스카 투아존(Oscar Tuazon)은 사람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화덕 하나를 항구에 설치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술가 미카 로텐베르그(Mika Rottenberg)는 뮌스터의 한 아시아 상점을 멕시코 국경 지역의 중국 상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플라스틱 상품의 세계로 만들었다. 카메룬 출신의 헤르브 요움비(Hervé Youmbi)는 묘지에 있는 나무들에 유리구슬로 제작한 판자들을 걸어 놓았다. 이 작품은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의 원시성을 상징하기보다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공포영화 ‘스크림‘의 가면처럼 대중문화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심에서 진행된 프랑스 출신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빙상 경기장의 바닥을 드러내자 그 이면에 흙으로 덮인 원시적인 지형이 펼쳐진다. 위그는 벌과 공작새를 이곳에 살게 했고 장치도 하나 설치했는데, 이 장치 안에서 사람의 암세포가 분열하면 그 옆에 설치된 수족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치 인류 종말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실험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작품은 그야말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준다.
 

조각 프로젝트는 뮌스터와 마를에서 2017년 10월 1일까지 진행된다. 카탈로그: 1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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