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증언들을 소개하는 포털사이트들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 보존 작업

붉은 군대 소속 여군이 베를린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모습(1945년)
붉은 군대 소속 여군이 베를린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모습(1945년) | 사진(부분): © 픽처-얼라이언스 / RIA 노보스티

시대적 증언들을 소개하는 포털사이트들이 독일의 기억문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은 추방당한 이들, 억압받은 이들, 자유를 강탈당한 이들이 직접 들려주는 증언들을 누구나 보고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훈적 자료들을 제공한다.

1925년에 태어난 지크리트 오토는 미텔작센 출신으로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룬체나우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했다. 그녀는 동독에서 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동서독 간에 큰 격차가 있었지만, 그래도 서독으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내 삶과 내 일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형편만 허락된다면 교직에 더  머물고 싶어했다. 하지만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 당원이 새 교장으로 부임했고, 그 시기쯤 갑자기 군대개혁도 시작되었다. 군입대 사전교육을 위해 공산주의 청소년 조직인 자유독일청년단(FDJ)이 조직한 ‘사격훈련단(Schießzirkel)’은 이 때 진행된 군대개혁의 대표적 사례이다. 1951년에서 1952년으로 넘어가던 때, 그녀가 근무하던 학교의 교사들은 모두 다 “손에 무기를 쥐고 서독에 맞서 동독의 과업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몇몇 동료 교사들은 서명을 거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생생한 기억 온라인 박물관(LeMo)

시대의 증인들을 소개하는 포털사이트 중 하나인 ‘생생한 기억 온라인 박물관(Lebendiges Museum Online (LeMo))’에 오토가 기고한 5건의 문건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회고를 담은 글이 있다. "나는 그 즉시 서독으로 도피할 준비를 시작했다." 생생한 기억 온라인 박물관은 독일역사박물관(Deutsches Historisches Museum)과 독일연방 역사의 집 재단(Stiftung Haus der Geschichte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이 함께 빚어낸 합작품이다. 19-20세기의 독일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일반 대중에게 일목요연하게 공개하기 위해 두 기관이 손을 맞잡고 포털사이트를 구축한 것인데, 이 사이트에는 독일제국 시절부터 2차 대전과 분단 시절을 거쳐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역사가 관통하고 있다. 시대의 산증인들은 독일역사박물관에 연락을 취하여 개인적 기억을 진술할 수 있다. 서신이나 일기문 같은 문건들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접수된 텍스트들은 편집 과정을 거친 뒤 관련 사진이나 정보들과 함께 사이트에 공개된다.
 
역사의 집 재단에서 디지털 서비스 부문을 이끌고 있는 루트 로젠베르거(Ruth Rosenberger)는 말한다. “우리는 다양한 시대의 증인들과 관련된 다수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연방의 지원을 받는 기관들에 보관 중인 시대 증인 관련 자료들의 유실 방지와 수집, 발굴을 위한 서비스 및 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록물 관리 업무와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포털사이트는 2017년 7월 온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시대의 증인들(www.zeitzeugen-portal.de)'로, 시대 증인들과의 인터뷰 동영상들을 모아 놓은 포털사이트이다. 이 사이트는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들의 소장 자료들을 한데 묶어 보관하는 곳인데, 이미 약 1천 건에 달하는 인터뷰들이 약 8천 개의 동영상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이 포털사이트에는 ZDF(독일 제2공영방송)의 보유 자료들도 게재되어 있는데, 개중에는 시대적 거물들과의 인터뷰 영상들도 있다. 앞으로는 역사의 집 재단이 직접 진행한 시대 증인들과의 인터뷰도 시대의 증인들 포털사이트에 게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역사의 집 재단에서는 수년 전부터 시대 증인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오고 있으며, 이 자료들은 재단에서 주관하는 전시회들에 사용되기도 했다. 시대 증인들의 생생한 진술이야말로 지나간 역사를 가감 없이 전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자료이다." 루트 로젠베르거의 설명이다. 로젠베르거는 또한 "이것이야말로 개개인의 경험을 역사적 자료로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역사의 집 재단에서 그간 진행한 시대 증인들과의 인터뷰만 해도 백 건이 넘는다고 한다.

역사 보존에 발을 맞추는 방송매체들

시대 증인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생생한 기억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비단 역사 관련 박물관이나 재단들만은 아니다. 바이에른 주의 주립방송사인 BR(Bayrischer Rundfunk)도 오디오 기록자료들을 통해, 고통과 압제의 역사가 망각되고 있는 현실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 예를 들어 '시대 증인들이 말하다(www.die-quellen-sprechen.de)'의 포털사이트와 바이에른2(Bayern 2) 라디오 채널을 통해 나치 희생자들의 목소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와 채널은 라디오 방송과 온라인 ‘다시 듣기’ 서비스를 통해 관련 인터뷰들을 팟캐스트 형태로 제공하고 있는데, 인터뷰에 등장하는 유태인들은 나치 시절 자신들이 생활과 생존을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준다. BR 방송사는 현대사연구소(Institut für Zeitgeschichte)와의 협력 하에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총 16개의 주제들을 다루고자 계획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억·책임·미래 재단(Stiftung Erinnerung, Verantwortung, Zukunft)은 단순히 온라인 상에 기록을 보관하고 공개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더 큰 사업을 추진 중이다. 나치 시절 생존자들과 청년들의 만남을 주선하여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자체 보고에 따르면, 재단은 시대 증인들과의 교류사업 분야에 있어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유일한 기관으로, 2016년에만 176명의 시대 증인들과의 만남 총 59건을 성사시켰다.
 
지크리트 오토는 1952년 서독으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기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베를린 첼렌도르프의 여러 곳들과 함부르크의 난민수용소를 거쳐 결국 서독에 살고 있던 큰고모의 집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오토는 자유의 숨결 속에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동독 주민들이 오토처럼 큰 행운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