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방금 뭐라고 하셨죠?”

독일어 발음
독일어 발음 | 사진(부분): © undrey – fotolia.com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들 중 많은 이들이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겪곤 한다. DaF(외국어로서의 독일어) 수업에서 발음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리자 괴벨은 올바른 독일어 발음이야말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필수 조건인 동시에 학습자의 정체성 확립에도 크나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능동적인 말하기 과정 없이도 독일어를 배울 수 있다고 보는가?
 
작문만 배우고 싶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구두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면 말하기와 듣기를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서C1 수준의 작문은 가능하지만 말하기에 있어서는 발음 때문에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문의 메일을 많이 받는다. 발음이 부정확한 경우, 상대방은 대체로 그 학생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 상황을 유발하는 가장 중대한 원인은 무엇인가?
 
독일어에서는 모음의 길이가 매우 중요하다. 독일어는 모음이 비교적 풍부한 편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그 때문에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크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강세이다. 잘못된 지점에 강세를 두거나 강세를 둬야 할 지점을 너무 약하게 발음할 경우, 상대방으로서는 잘 알아듣기 어렵다.
 
그와 관련된 한 가지 사례를 든다면?
 
독일어가 모국어인 이들은 ‘마비된(lahm, 라-암)’과 ‘어린 양(Lamm, 람)’의 발음상 차이를 대체로 또렷하게 구분하는 편이다. 하지만 독일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여러 차례 듣고 말하는 훈련을 해보아야 비로소 장모음과 단모음의 차이를 인지한다. 그와 다른 사례로, ‘치즈’를 뜻하는 독일어인 ‘캐제(Käse)’’라는 단어의 경우, 강세가 앞 음절에 있다. ‘캐’에 강세를 두고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반대로 두 번째 음절인 ‘제’에 강세를 둘 경우, 독일인들은 금세 ‘호수’를 뜻하는 ‘제(See)’를 떠올리고, ‘저 사람이 말하는 호수가 무슨 호수이지?’라고 반문하게 된다.
 
외국인이 말하는 독일어를 독일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P, t, k 같은 파열음도 매끄러운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소리들을 또렷하게 강조해서 발음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건 자음 무성화 현상이다. 독일어에서는 유성 파열음인 b, d, g가 음절이나 단어의 끝에 올 경우 무성 파열음인 p, t, k로 소리난다. 즉, ‘lieb(리-입)’이라는 단어의 경우 ‘liep(리-이프)’으로, ‘Wald(발드)’는 ‘Walt(발트)’로, ‘Weg(베-엑)’은 ‘Wek(베-에크)’로 발음해줘야 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거의 다뤄지지 않는 발음 문제

올바른 발음이 그토록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DaF 수업에서 발음 훈련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강사들이 거기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수업 내용이 대개 문법과 어휘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재에 발음 연습과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들은 그저 지나가듯 다루거나 아예 건너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DaF 교육과정 내에 발음 관련 콘텐츠가 부실한 것은 사실이고, 현장 강사들 역시 그 분야에 관련된 지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독일어를 배우는 이들이 특별히 습득하기 어려워하는 발음이 있는가?
 
입을 상당히 크게 벌리고 입술을 많이 활용해야 하는데,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언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독일어의 경우, 강세가 있는 음절을 제대로 발음하기 위해 입술에 긴장이 필요하다. 반면 강세가 없는 음절들은 이완된 상태로 발음된다. 그러한 대비 효과 때문에 독일어는 매우 특별한 소리를 지닌다. 예를 들어 러시아어나 프랑스어는 독일어에 비해 멜로디가 훨씬 더 풍부한 편이다. 러시아인이나 프랑스인이 자신들의 모국어 액센트로 독일어를 말할 경우, 독일인들이 거의 매번 그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발음 훈련을 집중적으로 할 경우, 독일어 학습자들의 의사소통 능력이 얼마나 향상될 수 있다고 보는가?
 
모음이나 강세를 제대로 구사하면 사람들이 더 잘 알아듣고, 그래서 더 이상은 “방금 뭐라고 하셨죠? 다시 한 번 말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누군가 반문해올 경우, 학습자들은 창피함과 긴장감을 느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인지감각이 향상된다는 장점도 있다. 예컨대 장모음과 단모음의 차이를 느끼는 데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들은 상대방의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된다. 상대방이 ‘철도(Bahn, 바-안)’라고 말하는지 ‘금지 조치(Bann, 반)’라고 말하는지, 혹은 ‘누구를(wen, 베-엔)’이라 말하는지 ‘만약(wenn, 벤)’이라 말하는지의 차이를 모음의 장단 차이로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독일어 표준 발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표준 발음과 그렇지 않은 발음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이로써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독일어를 보다 확실히 구분해낼 수 있게 된다.
 

정확한 발음과 정체성 확립

어느 발간물에서 발음이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한다고 말한 적이 있던데,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집중적 발음 훈련을 하다가 개인적 한계에 부딪치는 학습자들을 종종 보곤 했다. 그 학습자들은 결국 제대로 된 독일어를 구사하고 싶다면 독일어로 말을 하는 동안 모국어 억양뿐 아니라 자기 본연의 정체성 일부까지 내려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완전히 새로운 말하기 방식 및 정체성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말을 하는 동안의 신체를 활용하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변화는 어찌 보면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모국어 액센트가 완전히 느껴지지 않게 독일어를 구사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입술을 최대한 활용하고 혀도 최대한 많이 놀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독일어에 대한 기본 감각에 익숙해질 수 있고, 목소리 톤 역시 독일어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말하기나 목소리는 매우 개인적인 요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훈련하는 과정 역시 각자의 성격이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어떤 단어를 올바르게 발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학습자들이 보다 더 안심하고 보다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떤 언어를 구사함에 있어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될 경우, 정체성에도 자연히 변화가 오고,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느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를 통해 소외감 역시 줄어든다.
 
리자 괴벨은 1985년생으로 화법을 전공하고 화법 교육학자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발음 및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동시에 외국인 및 사투리를 쓰는 독일어권 학생들에게 표준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DaF 과정 강사들을 위한 음성학 연수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