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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황금 저울에 올리기

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15호
과장, 이해하기, 이해시키기 | © 괴테 인스티투트/일러스트: Tobias Schrank

에르난 데 까로는 독일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때로 과장해서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대부분 어리둥절해서 쳐다본다. 어떤 곳에서는 모호해질 수 있는,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에 대해 숙고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내 삶에서 이런 일은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 독일에서 친구에게 뭔가를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약간 과장을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콘서트가 엄청나게 꽉 찼었지”라면서 “적어도 300명은 왔을 거야!”라고 내가 말하면, 상대방은 미심쩍게 대답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콘서트홀에는 최대 80명이 들어가는데”. 또는 내가 “작년 로마의 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생전 처음이었어. 맹세컨대, 어느 날은 그늘에서 60도 이더라고!” “60도? 그거 좀 의심스러운데, 로마는 제일 더운 날에도 45도 이상은 넘지 않을 텐데!”라고 상대방은 객관적으로 반박을 한다. 난 “나 참, 나도 안다고!”라고 혼자 생각한 후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사람아, 물론 내가 과장한 거지.” 이는 당황스럽거나 어리둥절한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된다.

이해하기 – 이해시키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이렇다. 나의 많은 대화 속에서 내 말이 항상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언어적 소통이라는 사람들 간 특별한 접촉에서, 반어적으로 혹은 단순하게 다른 것을 표현하는 과장법을 방해 요소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회나 친근함의 표시라고 느낀다. 나는 마치 상호 이해의 가치가 이상적으로는 잘 알아듣거나 미리 눈치껏 알아채는 데 있는 것처럼 내용을 한껏 과장하여 말한다. 반대로 나의 많은 독일 친구들은 의사소통이 우선적으로 명확성의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상호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이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대상을 가능하면 모호하지 않게 표현하는 암묵적 합의이다. 뮌헨 출신의 친한 친구와 이 주제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에게도 방금 내가 과장해서 말했다고 설명을 해야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물론 그 친구의 질문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면서 왜 그 내용을 다르게 이야기하지?” 나는 반문한다.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나처럼 다른 나라에서 왔거나 독일어 이외에 다른 언어의 영향을 일찍 경험했던 많은 지인들은 비슷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소위 사회언어적 현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어가 인간을 만든다

잘 모르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는 결국 수많은 화자의 개인적 의사소통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각각의 설명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설명은 일반화의 과정 즉 과장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과장 뒤에는 (적어도 반쪽의) 진실이 존재하므로 몇 가지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세비야의 대주교 이시도르는 6세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Ex linguis gentes, non ex gentibus linguae exortae sunt” 대략 이런 뜻이다. “민족이 언어에서 발생된 것이지, 언어가 민족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단일한 ‘민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혹은 이것이 값싼 일반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언어가 인간을 만들었고 우리가 언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면, 사실은 이럴 수 있겠다. 나의 첫 칼럼 “생동하는 현실”에서 몇몇 예시들이 보여주듯 독일어가 일정한 구체성과 정확성을 허용하기 때문에, 독일어 또한 화자에게 이러한 구체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모토에 따라서 말이다.

이중적 의미

아니면 그 반대일까? 말하자면 이렇다. 독일과 같이 역사적 또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생각이나 입장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중요했던 나라나 언어권에서는 명확성에 대한 이와 같은 요구가 오늘날까지 의사소통의 방식을 특징짓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이유로 정확성이 아닌, 사안이 다르게 이해될 수도 있게 표현하는 ‘영리한 방식’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오히려 이중성과 일종의 위트나 장난기가 언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누가 알겠는가? 진실은 분명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이다. 바로 생각의 영역,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황금 저울에 올리지 말라’라는 독일어 표현이 의미하듯,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그런 영역에 말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의 존재야말로 사람들이 기꺼이 과장의 방식을 택한다는,절대로 반박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도 분명한 증거 아닐까?
 

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본 칼럼 ‘언어를 말하다’는 4주마다 언어를 주제로 다룬다. 언어의 발전사, 언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언어의 사회적 영향력 등 문화적, 사회적 현상인 언어를 주제로 한다. 언어 전문가나 다른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관심 주제에 대해 6개의 기고문을 연재한다.